때는

2008년 3월 xx일

비가 주룩주룩 오는날 이 형은 입대를 했다. 부모님과의 춘천닭갈비 외식을 끝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지금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나와 빡빡머리 동기들이 확실해 보였더랬지...
비가 와서 큰 강당에서 입소식을 행했는데, 환영하러 나왔다는 군악대놈들 중에 한 병장놈이
지가 일주일 뒤에 이제 전역이라며 개우라질 자랑질을 늘어났었지. 죽도록 미웠고 죽도록 부러웠었다.
입소식을 끝으로 부모님들이 퇴장할때 나는 봐버렸지... 아버지가 우시는거... 어머니는 애시당초 우셨고....
우산도 안쓰시고 저벅저벅 걸어가시는데... 진짜 다시는 영영 못볼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
그런데 난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그때부터 바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간단히 신분검사와 거주지조사와 물품검사를 끝내고 각 배정받은 생활관으로 기어 들어갔다.
생활관에는 동일구역에 사는 거주자들끼리 모아놨더라고.. 초등학교때 앙숙이었던 쇼키랑도 만났는데
서로 흠칫 놀라긴 했는데 걍 아저씨처럼 쌩깠어.... 그외에도 18명중에 내가 아는얼굴이 3명이나 있더라..
지금생각하면 조또 아닌 상병 개나부랭이 조교시키가 꽥꽥 고함지르면서 놀려왔냐고 지뢀을 해대는데..
그땐 조교가 왜캐 무서웠는지ㅋㅋ이등병 조교도 거의 간부급으로 보이더라구....그리고 저녁식사후에
병무청 신검때 봤었던 심리검사를 또 보라지 뭐야.... 졸라 짜증났지만 하라니까 해야지 뭐... 끝나고 나니
집에다 보낼 자신의 옷을 담으라고 상자와 편지를 받았어....갑자기 편지에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걱정하지 말라는둥 건강하셔야 된다는둥 형식적이긴 하지만 정말 진심어린 편지를 썼었지...
근데 그땐 몰랐어...정작 걱정받아야 할 사람은 내 몸뚱이라는걸 말야... 난 그때까지도 군대에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어...취침시간이 가까워오자 조교 나부랭이 새키가 불침번 순번표를 확인하래..
헐;멍미... 훈련소도 아닌데 불침번 근무를 서라고? 게다가 순번도 어중간하게 3시~4시 타임을??
내 동기들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매트릭스 깔고 모포깔고 차렷자세로 일제히 누웠는데....
이야...진짜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기절할거 같은데 막상 잠은 안오는 모순을 겪게 되더라구..
그리고 평소에 새벽에 자던 습관때문에 10시에 불을꺼도 잠이 올리가 없을테지.... 그렇게 뜬눈으로
별의별생각 다하며 손목시계 라이트 수시로 확인하면서 새벽 2시쯤? 잠들었어... 근데 시방 개같은
누군가 날 흔들어 깨우는거야...불침번 순번이래..진짜 서럽고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뒤질거 같았어..
생활관 출입구 바깥쪽에서 짝대기 하나 들고 목욕탕의자 같은거 깔고 앉아 있는데 복도 끝 저 너머로
나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간들이 10명이 보였어... 중간에 조교새끼 책상에 엎드려 퍼져있고..
그때부터 느껴지더라..내가 있는 이곳이 군대라는게... 이 새벽에 잠을 자고 싶어도 잘수가 없는...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 남자들의 세계에 왔다는게... 그때만큼 사회에 있을때 무심코 허비했던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수가 없더라....  동기들이랑 휴가얘기로 꽃을 피우려고 해도 그건 어차피 별나라
꿈나라여행에나 나올법한 머나먼 훗날의 일이라서 스스로 내 목을 조르는 기분이 들더라고...
아침기상 빵빠레가 상콤하게 울리고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연병장에서 아침체조를 마친뒤
아침밥 먹고 반나절이나 걸려 신체 정밀검사를 받고 간단히 군대에서의 예절과 걸음걸이와 일반수칙 등등
쉬게 내버려두질 않더라고...다음날은 전투모와 전투복, 전투화를 배급 받는데 본인이 직접 착용하고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게 해주는건 좋았었어.. 그 뒤로 조교들이 전투복 착용법과 전투화 끈매는 방법을
알려주지...어디서 줏어들었는지 전투화 길들인다고 발로 수시로 밟는 애들이 있던데 전부 덧없는 짓이야
행군하다 족발 씹챵날 놈은 전투화에 뭔짓을 해도 씹챵나게 되어 있어... 그리고 생활관 건물 뒷편에
커다란 돌로 만든 계단이 있는데 거기에 전부 모아놓고 정신교육을 시키지... 군대에서 자살하면 개죽음이다,
나중에 전문하사 지원하면 죤나 좋다, 여러분은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이다 등등 전부 개소리뿐이야..
정밀신체검사가 끝나면 종종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이가 있는데... 그 중에는 재입대해야 하는 불운아도
있지만, 공익으로 전환되거나 면제로 바뀌는 득템 새키들도 종종있어... 짐을 싸면서 거들먹대던 그 ㅅㅋ...
지금은 하나도 안부럽네...장애인 ㅅㅋ... 하지만 그때만큼은 진짜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놈과 바꾸고 싶었어..
보충대 3일쯤 지나면 본인이 배정받을 훈련소가 윤곽이 잡히기 시작해.. 21사단 11사단 17사단 22사단 23사단
나 때는 이렇게 있었는데... 메이커부대 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꼴이 아주 가관들이지... 뺑뺑이 랜덤으로
돌린다는 희대의 개사기극을 끝으로 나는 23사단으로 배정받아 다음날 버스를 타고 삼척으로 향하는데.....



















반응 좋으면

훈련소편 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