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오랜만에 다시 두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그동안은 남들 두는 대로 감 따라 두는 것에 바빴다면

지금은 내가 한 수 상대 한 수 둘 때마다 화면이 정지되면서

집 차이가 얼마 정도인지 계산이 되는 느낌이다.

바둑을 오래 한 고수들이라면 당연히 이런 느낌을 가졌겠지?

그들은 바둑을 짧게도 두고 길게도 두기 때문에...

한 수 한 수에 정성을 들이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귀찮아서 생각하지 않고 두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사실 그 귀찮음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좀 낭비라는 의미였다면

꼭 이 한 판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계속해서 둘 다음 판 다음 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절대 낭비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은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판이 정지된 것마냥 (봉수가 된 것마냥) 유불리를 따져 가며 아주 섬세하게 판단을 해 본다.

이러한 사고가 없는, 그저 관습을 따라 가는 바둑, 책에서 본 바둑을 답습한다면

매 수는 별 의미가 없고

빨리 두어 판을 이긴다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상대를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판에서 어떻게 하면 잘 둘 수 있느냐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더라도 괜찮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수읽기, 집계산 등을 하지 않고 막 두었다가 지는 것은 괜찮지 않다.

내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성심껏 두었을 때, 흔들림 없이 나의 바둑을 둘 때 져도 괜찮다.

이것은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장의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기보단, 그것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진실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는 발전에의 원동력이 되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된다면 현실의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