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성별정정 신청자에게 성전환수술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서류 제출을 선택적으로 요구해왔던 예규 일부 내용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법원에서 해당 예규에 근거해 성전환수술 여부를 기준으로 성별정정 허가를 내려 왔는데 이 과정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침이 개정될 경우 재판부 재량에 달려있던 성별정정 허가 기준이 일관성을 갖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7일 법률신문 취재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현행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50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의 내용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검토 내용에는 성별정정 신청인에게 ‘성전환증’ 환자 진단서와 성전환 수술 여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한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들어있다.대법원이 검토에 나선 까닭은 ‘법원이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 신청사건을 처리하며 성전환수술 여부 등을 참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 예규 일부 조항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법률신문에 “예규가 성별정정허가 신청의 전제요건이나 법원의 재판사항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예규 내용 등에 대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쟁점이 된 조항은 제6조(참고사항)다. 해당 조항은 법원이 △신청인이 성전환수술의 결과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한지 여부 △신청인에게 미성년인 자녀가 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제3조(참고서면)는 성별정정 신청인이 △성전환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갖고 있고 △생식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의사 소견서를 선택적으로 제출하도록 한다.이들 규정은 사건 처리에서 ‘필수’가 아닌 ‘참고사항’이지만 일부 법원에서 이를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활용해 수술을 요구받은 성전환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 예규의 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예규 제6조 등 일부 조항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대법원에 예규를 전반적으로 개정하고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재판에서 인격권 침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지금까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사건에서 성전환 수술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 재량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성별정정을 위해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해석과 성전환수술이 성별정정에 여러 고려사항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혼재했다. 법원 판단이 들쑥날쑥한 탓에 성별정정 신청이 기각된 일부 트랜스젠더는 주소지를 다른 법원 관할 지역으로 옮겨 다시 신청하기도 했다. 각급 법원이 지침으로 삼는 예규가 개정될 경우, 재판 실무가 일관성을 갖추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46·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성전환수술을 요건으로 둔 조항이 폐지된다면 각급 법원의 성별정정 결정이 일관적으로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만, 예규는 강제력이 없는 만큼 이제는 법적 성별정정 기준을 법률로 정할 때”라고 말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39·변호사시험 6회) 변호사는 “법원의 사건처리 실무에 절차적 통일성을 준다는 점에서 해당 예규 자체를 유지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외부 성기 변형을 위한 외과수술을 요건으로 정한 조항은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는 성별정정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2022년 나온 만큼, 관련 조항도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국 추세는해외에서는 생식능력을 없애거나 외부 성기를 바꾸는 성전환수술 없이 법적 성별정정이 가능한 나라가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0월 트랜스젠더 등 ‘성 정체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 호적상 성별을 바꾸기 위해 생식 능력을 없애는 수술을 받도록 한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일 후생노동성과 법무성은 해당 판결에 근거해 지난해 12월 ‘성 정체성 장애가 있는 사람이 법적 성별을 바꿀 때 생식 능력 유무를 기재한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고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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