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촬영 날이였거든. 아.. 새벽이니 어제구나.

이쁘게 화장하고 미용실 가서 돈 들여 머리 한걸
그냥 다 씻고 풀어 버리려니 너무 아까운거야.

남자친구는 응급실 당직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갔어.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놈이 쑥 나와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환자랑
얘기를 하더라. 난 순간 놀래서 편지지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내리고 환자 보는 걔 모습을 지켜봤지.

환자랑 얘기 끝나고 응급실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한번은 눈이 마주칠 줄 알았는데 안 쳐다보고 가더라구.

그래서 "뒤한번만 돌아봐주지 쌤~" 이렇게 문자를 보냈더니
20분쯤 후에 답문이 왔나.. 너무 바빠서 응급실 환자 다 보면
수술장으로 환자 하나 보내야 한다고 미안하다고..

얼굴 봤으니 괜찮다고 답문 보내면서도 슬펐어.
밥도 못먹고 일 했을게 뻔해서 사갔던 특 싸이즈 생선초밥, 빵
그대로 손에 들고 돌아오면서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어.

집에 와서, 이거 내가 다 먹어버리고 잊을테다.
하면서 꾸역 꾸역 입에 넣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건지..

나 한번도 남자한테 이래본 적이 없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내 자신이 너무 못나서 화가 나.

나 원래 의사란 직업 정말 싫어했고 (난 칙칙하고 딱딱한 직업 안 좋아함)
얜 키도 거의 나만큼 작고 특별하게 매력이 있는 애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는건지..

힘드니까 그만 잊어야지 잊어야지 바,보짓 그만 해야지
백번도 더 넘게 생각했는데 그게 맘대로 안된다.

머리론 벌써 잊고, 버리고 내친지 오랜데 마음이 그게 안돼.

먹고 다 토하더라도 이 초밥 다 먹어버리고 다 잊을꺼야 오늘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