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서민교 기자] ‘해운대 호랑이’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상대는 ‘농구대통령’이다. 은근한 부러움의 눈치도 감출 수 없다.

프로농구 부산 KT 전창진 감독이 전주 KCC 허재 감독을 만나기 위해 11일 오후 잠실학생체육관을 찾았다. 하지만 전 감독이 정작 보고 싶은 사람은 허 감독이 아니었다. 허 감독을 그대로 빼다 닮은 둘째 아들 허훈(용산고 2년)이었다.

전 감독은 평소 아마농구대회 현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코치들이 직접 찾아 스카우트 리포트를 제출하면 믿고 가는 스타일이다. 그런 전 감독이 대학리그도 아닌 고교대회에 나타났다. 요즘 뜨는 허 감독의 아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허훈이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고 있는 용산고는 제48회 쌍용기 전국남녀농구대회 결승전에서 계성고와 붙었다. 결과는 아쉬운 역전패. 69-61로 크게 앞선 경기 종료 3분11초. 용산고는 30점으로 맹공을 퍼부은 허훈이 5반칙 퇴장을 당한 뒤 급격히 무너져 69점에 묶인 채 무려 13점을 내주고 석패했다.

전 감독은 허 감독을 보자마자 “확실히 허재가 운이 좋아”라고 운을 뗀 뒤 “말년에 아들 덕을 제대로 보네”라고 농을 던졌다. 하승진과 전태풍의 드래프트 특수를 얻어낸 허 감독의 ‘운’을 빗댄 것. 전 감독은 이어 “진짜 허재보다 아들이 낫네”라고 덧붙였다.

최근 성장세가 두드러진 허훈 얘기다. 허 감독도 싫지 않다. 허 감독은 “그니까요, 아들이 더 잘하면 좋죠. 제가 말년에 아들 덕 좀 봅니다”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허 감독은 경기 내내 전 감독에게 결승전 해설가로 돌변했다. 고교선수들의 특성을 잘 모르는 전 감독에게 선수들의 장단점을 설명하느라 정신없다. 허 감독은 아들 때문에 대회마다 출석 도장을 찍어 이미 고교농구 전문가가 다 됐다.

허 감독의 눈에야 아들이 최고겠지만, 전 감독이 바라본 허훈의 실력은 어떨까. ‘허재의 아들’이 아닌 객관적인 고교농구선수 허훈의 평가다.

전 감독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잘한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라며 “지금 2학년밖에 안됐는데 저렇게 리듬을 타면서 코트를 다보고 패스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극찬했다.

전 감독은 프로농구 대표 ‘기러기 아빠’다. 아내와 아들, 딸 세 가족을 캐나다로 보낸 지 10년째다. 허 감독의 아들 사랑이 부러울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모두 갖췄다. 하지만 농구선수 아들에 대한 아쉬움이 없단다. 전 감독은 “아들을 농구선수로 시킬 마음은 전혀 없었다”라며 “허재 아들처럼 저렇게 잘하면 시킬 수 있겠지만, 그런 보장이 어디 있나? 벤치에 앉아 있는 걸 볼 순 없다”고 웃었다.

대신 전 감독은 허 감독에게 엄포를 놨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 허훈을 뽑겠다는 것. 전 감독은 “우리 가드도 부족한데 너 아들이나 드래프트에 나오라고 해서 뽑아야겠다”고 소리쳤다. 물론 농이다. 하지만 ‘승부사’ 전 감독 눈에 비친 허훈의 성공 가능성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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