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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신경 다 끊어졌다" 아파트 천장서 조명등 떨어져 날벼락
아파트 천장 조명등 떨어져 인테리어 작업자 중상…아파트 측 "업체 과실 있어"• 경기 김포 아파트 복도 천장에서 조명등 유리가 떨어져 인테리어 작업자인 40대 남성이 크게 다쳤다.• 작업자는 팔 부위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도 손과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는 동맥, 신경, 인대, 근육이 모두 끊어졌지만 다행히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 측은 사고 이후 작업자를 피하고 있으며, 관리소장과 연결이 되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니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작업자는 현재 일상생활이 어렵고 퇴원해도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몰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5837887 "동맥·신경 다 끊어졌다" 아파트 천장서 조명등 떨어져 '날벼락'경기 김포 아파트 복도 천장에서 조명등 유리가 떨어져 인테리어 작업자인 40대 남성이 크게 다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타일 시공자 40대 A씨가 김포 한 아파트에서 유리등이 떨어져 부상을 당했다고 전했다. 사진=n.news.naver.com억까 제대로 당했네 남은 인생 어쩌냐 진짜
작성자 : ㅇㅇ고정닉
현실 중국사와 함께 보는 무협 세계관.jpg
1. 상, 은(상), 주 시대- 중국의 신화 시대(황제, 서왕모, 구천현녀, 적송자, 자부선인, 치우 등 신선, 천신들이 활동한 시대.)- 무공이 아닌 무술/선술의 시대.- 황제는 헌원검이라는 검이 있었지만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에서 싸웠으며, 황제는 치우에게 밀리다가 죽음의 여신 서왕모가 보낸 무의 여신 구천현녀에게 병법과 선술, 무술을 배우고서야 비로소 치우를 이김.- 황제의 이복형 염제 신농이 중의학을 창시함.- 은(상)나라-주나라 교체기에 신(선)들의 전쟁인 봉신연의가 진행됨.- 장르적으로는 무협보다는 선협에 더 많이 등장함.2. 춘추전국시대- 전란의 시대이자 아직 신비가 지상에서 온전히 떠나지 않은 과도기.- 최초의 무공이라 할 수 있는 전설이 나타남.- 구천현녀의 화신인 월녀는 원숭이와 어울리며 검법을 즐겼는데, 대나무 가지로 장군을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고 하며, 월왕 구천은 그녀를 초청해 월나라 군대에게 검법을 가르쳤다고 함.- 신선을 찾아다니면서 불사약을 찾는 심선파 도사들이 나타나고, 스스로 수련해서 연단술로 금단을 만들어 신선이 되고자 한 수선파 도사들이 나타나면서 약술과 연단술이 발전함.- 전설의 명의 편작이 의술을 정리함.3. 진한 시대- 최초의 협객들이 나타남. 진시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형가 등의 협객들이 목숨을 대의를 위해 버리기 시작함.- 진시황제때 문자가 전서체로 통합되면서 부적이 전서체로 쓰이기 시작함.- 한나라의 체계화된 조직이 도교에 영향을 미침. 도교의 신들이 한나라 조직 체계로 정립이 되고 서열이 나뉨. 도사들은 높은 격의 신들의 이름을 빌린 부적으로 하위 신들에게 명령을 내림.- 도사들이 자주 쓰는 주문인 급급여율령은 한나라때 공문에 쓰이던 말로 '법령이 행해지는 것처럼 빨리 처리하라'고 하위 신들에게 재촉하는 말.- 전한이 무너지고 후한이 세워지기 전의 혼란기에 녹림산에서 일어난 산적들을 녹림이라고 불렀고, 우리가 아는 그 녹림의 기원이 됨. 다른 버전으로 평림도 있었다고 함.- 한나라 말, 사천의 청성산에서 장도릉이 오두미교(=천사도)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도교가 생겨나고 도사들도 체계가 잡힘.- 영향력은 장각이 창건한 태평도와 황건적들이 더 강력했지만 토벌당하고 천사도로 흡수됨.- 화타가 관우 뼈를 긁어서 계집아이 같은 소리가 나게 함. 의술 만렙.4. 5호 16국 - 위진남북조 시대기존 중화의 중심지였던 화북은 5개 오랑캐(흉노족, 갈족, 선비족, 강족, 저족)들에게 유린되어 말그대로 씹창남.이때를 분기로 고대 중국과 중세 중국이 나뉜다고 보기도 함, 이민족과 기존 한족의 혼혈이 크게 진행되어 북중국인의 혈통, 인종 구성까지 바뀜.중국의 흑역사 시대로 보며 보통 이 시대를 무협 장르의 배경으로 삼지 않음.아무튼 화북이 박살나는 동안 장강 이남, 강남 지방의 남조에서는- 내부로는 정치투쟁과 부패가 성행하고, 외부로는 이민족, 북조의 침공이 도사리는 어지러운 정세에 지친 나머지 부자들이 누릴건 다 누리면서 어려운 말로 세상을 정의하고 '난 청정하고 고요한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거야~' 하는 현학이라는 도교적 철학사상이 발달.(현학적인 소리 어쩌고 할때 그 현학 맞음)- 이때 유명한 인물들이 죽림칠현이고 이자들은 오석산이라는 납, 수은, 비소 덩어리인 마약을 먹고 방탕하게 살았음.- 문제는 이렇게 누릴거 다 누리면서 세상에 초탈한 척하는 게 이상적인 도사의 모습이라 여겨저 후대 도사들의 이미지가 이걸로 굳어버림.- 모산파(=상청파)가 개창되고 도교 이론과 연단술이 발전함. 흔히 말하는 영약, 환단은 다 이때 개발됨.- 영약 중에 하급은 병 치료용, 중급은 보약으로 짐승의 장기나 약초로 만들었음. 상급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질인 수은, 납 등 금속재질로 만들었음.흔히들 구정환단이라고 해서 단사를 9번 정제해서 거의 순수한 수은 덩어리를 만들어서 먹었는데 이걸 먹고 죽는 걸 '아 내가 약을 잘못 만들어서 죽는구나', '아 내가 잘못 먹어서 죽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죽어버림.- 이 먹는 방법을 복식/복이라 해서 아예 수련방법 중 하나로 정함.- 때문에 훗날 무협소설에서 영약이나 환단 먹을때 조심해서 먹으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 불교가 중국 대륙에 들어옴.5. 수당시대- 달마가 중국에서 불교 선종을 퍼뜨려 조금씩 정착시킴.- 모산파가 수나라 황실과 접촉해 도교가 국교가 됨.- 소림파 무승 13명이 당태종 이세민을 도와 수나라 멸망에 힘을 보탬.- 숭산과 종남산이 관직에 들어가고자 하는 도사들의 중심지가 됨. 때문에 도관들이 많이 들어섬.- 도사 소현랑이 먹고 죽는 외단이 아닌 몸속에 키우는 내단 수련법을 주장. 이때부터 내단 수련법이 점점 퍼져나가 무협소설에서 말하는 단전의 기원이 됨.- 그래도 아직 모산파의 외단을 중시하는 단정파가 우세했음.- 당나라 초기에 도교와 불교가 심하게 경쟁했고 당 고종 때 현장법사가 이끄는 불교파가 우세해짐. 측천무후가 불교를 지원함.- 당 현종은 이를 못마땅히 여겨 다시 도교를 크게 지원해 도교가 번성함.(현종의 두 딸이 아예 출가해서 여자 도사인 여관이 되었을 정도.)- 도사+검법의 원조인 검선 여동빈의 전설이 이때. 여동빈을 포함해서 8명의 유명한 신선을 8선이라고 부름.6. 송~원 시대- 드디어 무협 장르의 주배경시대가 도래함.- 송나라 때 유교와 성리학이 슬슬 올라오면서 도교가 쇠퇴함. 그 전에 5대10국 시대에 이미 많이 무너졌었음.- 이제 국교로서 통치이념으로서의 도교가 아니라 친민중적인 도교가 성행함.- 성리학의 발전이 도교에 영향을 미쳐서 차분하게 명상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도교 계파, 전진파가 탄생함.(무협지에서 전진교는 잊혀진 은자들의 문파 정도로 묘사되지만 이때는 그냥 이때는 일반적인 도사들의 문파였음.)- 당나라때는 군벌들의 반란이 문제가 컸고 송나라 자체도 군벌쿠데타로 일어난 나라라서 군사력을 억제하게 됨. 그 때문에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큰 발전이 있었지만 군사력은 자연스레 약해짐.- 금나라의 침공으로 민족의식이 고취되면서 일반 백성들도 힘을 길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짐.- 또 팍팍해진 생활에 산적들이 들끓어 양산박 같은 산적 단체들이 생겨남. 여기서 무협소설의 조상인 수호지가 등장함.- 결국 금나라 송나라 다 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섬, 몽골인들은 한족을 많이 핍박했고 한족 민중은 구심점이 필요했음.- 대부분 사찰 아니면 도관이었고 관은 이를 탄압했고 민중은 더 이를 악물고 일어남.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무협소설의 배경이 되는 문파들이 많이 창작됨.(일부 무림 비슷한 세력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았음.)- 불교의 미륵신앙과 마니교(대충 조로 아스터교의 분파)의 영지주의가 합쳐져 백련교라는 종교가 송나라때 처음 생김.- 주원장은 백련교에 가입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홍건적을 자기 편으로 삼아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움. 그후에 백련교와 홍건적을 토사구팽함.- 백련교와 마니교를 모델로 김용이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명교를 창작함. 부조리한 관부에 대항하고 민중을 위해 칼을 들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사공을 써서 마교라고 오해받는 종교의 클리셰가 여기서 나옴.- 즉 우리가 천마, 마교라고 부르는 모든게 백련교-마니교-명교-마교에서 파생됨.- 그리고 이 명교가 나중에 동방불패나 규화보전으로 유명한 일월신교가 됨.7. 명청시대- 원나라때 탄압받고 결정적으로 주원장의 토사구팽으로 제거 당하면서 무림은 완전히 황폐해짐. 대표적인 구파일방 중 하나인 소림사는 잿더미가 되었다가 명나라 군대의 무술을 이식해서야 겨우 다시 무승들을 길러낼 수 있었음.- 본격적으로 유교가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떠오른데다가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도교나 불교에 대한 대중적 신앙과 경외가 많이 옅어지면서 관련 세력들이 극도로 약화됨.- 명나라 초기에는 화포가 등장하고 중반부터는 화승총이 전래됨. 현실엔 호신강기 같은게 없으므로 날고 기어봤자 다 총맞아 죽음.- 무협지에선 명나라 배경이 많이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현실 역사에선 무림은 거의 소멸했다고 추측됨.- 이후로 무협은 그냥 애들 동화로 전락함.- 청나라 말기에 의화단 운동 당시 무공을 연마하면 서양인들의 총알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잠깐 다시 역사에 등장했지만, 그런건 없었고 다 총맞아 죽어버림.서양인들은 의화단원들이 무공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의화단 운동을 "Boxer Rebellion", 권투 선수들의 반란이라고 조롱했을 정도.이후로는 청나라 말기에 개발된 홍가권, 태극권, 영춘권 등이 지금까지 심신단련과 호신술 정도로 명맥을 잇고 있으며(ex: 중국군 입대 가산점을 받기 위해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우는게 유행한적도 있다고 함.)대중문화 창작물의 장르로서 부흥해 우리가 이 글을 보는 이유가 됨.
작성자 : 카프카스-튀르키예-여행고정닉
제야의 종에 도쿄 죠죠지에서 사람 압박파티한 이야기
이날은 여행 첫날인 12월 31일.첫 개인여행이자 첫 일본여행이라 기대와 의욕에 가득차 있었다.이때 나는 새해를 의미있게 맞이하기 위해 무조건 제야의 종을 보겠다고 마음먹고약 2주간 여행 중 단 첫 날만 묵을 숙소를 도쿄 유명 절(이라고 들은) '조조지' 가 있는 '하마마쓰초'에 잡았다.체크인하고 짐을 풀고 나니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긴장이 싹 풀려,근처 이자카야에서 인생 첫 오토시도 내 보고여유롭게 조조지로 향했는데...다른 절인 센소지가 그렇듯이,여기도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부터 대문을 세워 놓고거기부터 북적이는 분위기가 흥을 돋구는 게 좋았다.엄청난 인파를 보기 전까진..횡단보도에서 5분간, 사람 사이에서 신음하며 걸으니 어느새 윗 사진의 위치까지 도달했다.저기가 배전이면 가서 참배하고 동전 던지면 되나..? 라고 생각이 드는 위치지만(한 시간 전에 한 번 미리 와 봤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아 실제로 해 볼 수 있었다)지금은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느낌상 종을 치는 곳은 여기.앞의 아마사케 홍보 깃발이 뷰를 다 이지러뜨리긴 하지만내 앞의 사람들도 다 제야의 종을 보러 나보다 일찍 온 사람들이라비집고 들어갈 상황은 아니고..그냥 기다리기로 했다.이때 핸드폰 배터리는 15퍼시각은 11시 35분약 25분간 .. 일본인이 된 기분을 느껴보기로 했다(이 날의 충격은 이후 1월 1일 아키하바라에 갔을 때 다시 느끼게 된다)박스에 올라선 테레비 카메라맨이 이쪽을 보면 환호하고..저기 뒤에 보라색 천으로 둘러싸인 곳에 종이 있는데 거기에 주자가 등판할 때까지는이런 식으로 하염없이 기다렸다.다음 날 아침 찾은 사람 줄어든 깔끔한 조조지는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었으나, 사람 사이에 낑긴 이 때 당시에는상황이 즐겁다기보다 약간 우스웠다.구글 리뷰로는 진행자가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퀴즈쇼도 한댔는대?그게 재밌댔는데?하지만 진행자는 없고, 대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오신 경찰이 무척 많았다.오후 11시 44분. 스님이 등장하신다.일본의 제야의 종(원조)은 108번뇌를 씻기 위해 스님이 종을 108번 친다고 한다.지금부터 치는 거는 아니고, 약 11시 59분 30초부터 치기 시작하셨다.아나운서의 퀴즈쇼는 커녕, 공포 분위기 브금 삘 나는 삑사리 리코더 소리였지만..그래도 새해를 곧 여기서,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맞는다는 생각에 분명 들떴던 것 같다.스님끼리 법전인지 대본인지를 주고받고, 더 읽고, 또 인사하고, 들어갔다 나오다가종을 치고, 옆의 공원에서 벌룬을 확 풀어 버렸는데종을 보려고 모였을 사람들의 이목이 다 하늘의 풍선으로 쏠렸다.이때가 108번 중 5번째 타종이었을 즈음인데, 딱 새해 정각에 맞춰 풍선이 하늘로 쏟아지는 게 상징성이 대단해서 나도 좀 기뻤다.스님이 9번째 종을 칠 때쯤 인파가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나가야겠지?이 때 잠시, 타종이라는 메인 퍼포먼스를 맡은 스님이, 벌룬에 이목도 빼앗기고 이윽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갈 때 어떤 기분을 느낄지를 잠깐 생각해 보게 됐다.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계속 있어도 피곤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푹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본 조조지는 이 때의 모습보다 몇 배는 아름다웠으니 잘 된 선택이었다)이때가 한국에서 이태원 사건이 터진 지 1년밖에 안된 시점이라 진짜 여기서 죽을순 없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에 심혈을 기울이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니,사람이 너무 몰려 오히려 사먹으러 줄을 설 수가 없는 가게들이 여럿 보였다.제야의 종을 치기 전까지는 많이 들떴지만'종을 쳤으니 뭐 어쩔건데? 나가자!'의 흐름이 되어 금세 흥이 식어 버리니약간 체념감이 올라왔다.다음 날 아침 긴자의 백화점이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과 달리 거의 하나도 열지 않은 것과 더불어, 첫 일본여행에서 느꼈던'도쿄는 속 빈 강정인가' 하는 체념감은1월 2일 센소지에서 느꼈던 활기참과 그날 밤 아키하바라 돈키호테의 쾌적함 (사람 때문에 길을 돌아가야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을 맛보기 전까지는꽤 깊게 마음을 우울하게 했기에웬만해선 제야의 종은 다른 검증된 데서 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돌아온 호텔 방은 70년대풍의 캡슐 호텔이었다.내부 시설은 미약하게 소리가 나오는 테레비와, 잘 작동 안하는 붙박이 라디오.https://livejapan.com/ko/in-tokyo/in-pref-tokyo/in-akihabara/article-a0000181/ 이 링크에 있는 시설과 똑같았다.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마마쓰초를 걷다가..방문한 조조지는 훨씬 쾌적했다.참배하고, 오미쿠지도 사고, 이후 도쿄 여행에서 한 두번 더 마주치게 되는 원숭이 쇼 아저씨도 봤다.아저씨가 블럭을 쌓으면, 원숭이가 뛰어넘고지금 아저씨가 들고 있는 폴로 스틱같은 걸로 원숭이가 걷는다.쇼를 재미있게 보고 나면, 아저씨가 수금 타임을 가진 뒤, 조금 쉬었다가 다시 공연을 반복한다.은은한 분위기에 이끌려, 어젯밤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도쿄 타워를 방문한다.전날밤 9시 반경 조조지에서 볼 수 있었던 그 강렬한 야경은참 아름다웠다.방문한 4개의 전망대 - 도쿄타워, 도쿄도청, 스카이트리, 시부야 스카이 - 중 전체적인 경험에서 가장 만족했던 전망대였다.(나열한 순서대로 좋았다)전망대에서 유럽인 아재한테, 혹시 후지산이 보이도록 가능한지 물으며 사진을 부탁하니카메라를 내 몸 바로 옆에 밀착시키고 기적의 각도로 후지산을 나와 같은 샷에 넣어주셨던 친절함이 기억에 남는다.1월 1일은 아키바만 붐비고, 긴자는 하염없이 한산한 그런 날이었다.마지막으로, 12월 31일의 추억..홍백에 홍팀 최다 출연횟수 아깝게 못채우셨다던 와다 아키코 여사 (나무위키에서 읽었던 거라 잘 모름)근데 최다 출연횟수를 정말 아깝게 못채웠다! 라고 읽은 게 최소 작년이었는데2023 홍백에 나왔으면 갱신한거 아닌가? 잘 모르겠다사이버펑크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온 일본이 정말 푸르래서 놀랐던 기억을 실은 사진다녀보니 하마마쓰초만 유독 아침이나 밤이나, 창을 통해 보든 직접 밖에서 보든 파란 색깔이 있었다.이 푸르스름한 빛... 청량감까지 주던 이 푸른빛이 도시에 띄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그 때 먹었던 거. 지지난주에 토리키조쿠 갔다오니까 이게 약간 창렬처럼 느껴지긴 하는데 (꼬치만 990엔)그래도 이땐 한국가격이랑 비교했었으니까 괜찮았다.오토시는 조금 쓰렸지만..이외 이야기- 1월 1일 아키바 멜론북스 들어갈려고 일본오타쿠들이랑 2열종대로 줄서서 그룹별로 손들고 입장한 이야기- 1월 2일 천황이랑 안면틀려고 갔다가 못 본 이야기- 1월 2일 고쿄, 마루노우치, 쓰키지시장 다 허탕치고 센소지에서 마리오카트 아재한테 땡큐받은 이야기- 긴자 일루미 아래에서 자전거 뒤 졸졸따라다니며 킥보드탄 이야기- 스톱! 히바리군 전시 방문
작성자 : 뉴비의몸짓발짓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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