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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의 거대한 사자
쿠릴 열도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를 잇는 호상열도(弧狀列島, 활 모양으로 휘어진 열도)로 북서태평양과 오호츠크해를 가르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들의 형성 과정이 대개 그렇듯이 쿠릴 열도의 형성 또한 해저의 화산활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쿠릴 열도 동쪽 해역에는 쿠릴-캄차카 해구가 있는데 최대수심이 무려 10,542m에 달하는 거대한 해구입니다 쿠릴-캄차카 해구는 불의 고리라 하는 환태평양 조산대의 일부로 태평양판이 오호츠크판(북미판의 일부)과 만나는 섭입대가 지나며 서쪽으로 일본 해구, 동쪽으로는 알류산 해구와 이어집니다 해양지각인 태평양판이 대륙지각인 오호츠크판의 아래로 섭입하는 과정에서 유발된 지각변동으로 호상열도가 형성된 것인데 이 때문에 쿠릴 열도는 현재도 지각변동이 매우 활발한 곳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쿠릴 열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원인인 쿠릴-캄차카 해구는 앞서 언급한대로 수심이 1만 미터를 넘는데 해구의 수심이 깊다는 것은 그만큼 해양지각이 섭입 과정에 있어 장애물 없이 계속해서 대륙지각 아래로 밀려들어간다는 뜻이고 이는 섭입대의 응력이 더욱 강하게 축적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죠 이투루프(Итуруп)섬은 쿠릴 열도 남부에 위치한 섬입니다 면적이 3,139㎢로 서울특별시 면적의 약 5배 크기에 달하며 쿠릴 열도를 일본이 점유했던 1945년까지는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에 이어 5번째로 큰 섬이었고 현재도 쿠릴 열도에서는 가장 큰 섬입니다 이투루프섬 남부를 보면 오호츠크해 쪽으로 숟가락으로 파먹은 듯한 모양의 만(灣)이 있습니다 이곳은 사자의 입(Львиная Пасть, Lvinaya Past)이라 합니다 만 입구에 튀어나온 작은 섬의 모습이 마치 누워있는 사자를 닮았다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일본은 이투르프섬을 에토로후토(択捉島)라 불렀고 '사자의 입'은 모이케시 만(萌消湾)이라 하였는데 이는 이 만을 아이누어로 '후미의 끝(入江の端)'을 뜻하는 'モイケㇱ(모이케시)'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서 '후미(inlet)'란 바다가 육지로 파고든 부분을 의미합니다 이 '사자의 입'은 고대에 활동했던 화산의 칼데라입니다 대분화로 화구가 함몰된 전형적인 칼데라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칼데라 북서편이 무너져 바닷물이 들어찬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름의 유래가 된 작은 섬 또한 무너진 칼데라의 흔적이죠 남-북이 9km 동-서가 7km에 이르는 이 칼데라는 수면 위로 드러난 칼데라 외곽의 최대 높이가 528m 오호츠크해 수면 아래 잠긴 하층부의 최저 수심이 550m로 전체 높이가 무려 1k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입니다 마지막 분출 기록은 홀로세인 기원전 7480년 전후로 추정되며 홀로세 이전 플라이스토세 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가면 13,000년 전과 12,300년 전에도 두 차례의 대분화가 있었습니다 홀로세 대분화는 화산 폭발 지수(VEI) 6급에 달하는 대분화였는데 이는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분화와 같은 수준이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폭발음을 낸 것으로 기록된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도 VEI 6급에 해당합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어떤 규모인지 짐작되지 않을 수 있겠죠 지난 2022년 1월 남태평양 통가에서 발생했던 해저화산의 폭발이 VEI 5급이었다고 하니 그것의 10배 규모가 VEI 6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특히 '사자의 입'을 포함한 섬 남부의 3개 화산은 홀로세 대분화 당시 연쇄 폭발을 일으켰는데 당시 발생한 화산쇄설류는 원래 본섬과 떨어져 있던 섬 남부를 본섬과 새로이 연결시켰을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홀로세 대분화 이후 '사자의 입'은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질학적으로 최근 1만 년 이내 활동이 있었던 화산을 활화산으로 분류하기에 이 화산 또한 엄연히 활화산에 해당합니다 또한, 이투루프섬에는 '사자의 입'을 제외하더라도 섬 최고봉인 보가티르산(Богатырь)을 비롯한 수많은 활화산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활동으로 연쇄적인 활동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자의 입' 이외에도 쿠릴 열도에 있었던 지각변동을 살펴보죠 바다 한가운데의 후지산을 연상하게 하는 이 산은 쿠릴 열도 최북단 아틀라소프섬(Атласов)에 위치한 해발 2,285m의 알라이드 화산(Vulkan Alaid)입니다 일본이 쿠릴 열도를 점유하던 시절에는 "홋카이도 최고봉"과 "일본 최북단"이라는 두 타이틀을 쥐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아라이도 후지(阿頼度富士)'라는 별칭도 있었다고 하죠 이 화산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활화산입니다 1981년 4월에는 VEI 4급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고 최근인 2022년에도 9~11월에 지속적인 분화가 관측되었습니다 거대한 칼데라 호수 위로 고고히 솟아오른 봉우리가 보입니다 쿠릴 열도 북부 오네코탄섬(Онекотан)에 위치한 타오-루시르 칼데라(Tao-Rusyr Caldera)입니다 울릉도의 나리분지와 알봉의 모습처럼 칼데라 내부에 화산체가 솟아오른 이중 화산 구조가 돋보입니다 최근의 분화는 1952년 11월로 VEI 3급의 규모였다고 하며 기원전 5550년 전후로 VEI 6급의 대분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타오-루시르 칼데라의 1952년 11월 분화는 쿠릴 열도는 물론 캄차카 반도와 북서태평양 전역을 강타했던 세베로쿠릴스크 지진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정확히는 지진 발생 일주일 후 분화) 1952년 11월 5일 쿠릴 열도 북동쪽, 즉 캄차카 반도 동부 해역에서 규모 9.0, 최대진도 11(수정 메르칼리 계급 기준)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이는 당시 기준으로는 20세기 이후의 최대 지진이자 2024년 현재로도 5번째로 강력했던 지진으로 꼽힙니다 이 지진으로 세베로쿠릴스크를 포함한 쿠릴 열도 전역과 캄차카 반도 동부 연안에 10~15m 안팎의 해일이 불어닥쳤고 태평양을 건너 미드웨이 환초와 하와이에도 피해를 입혔습니다 또한 2006년 11월과 2007년 1월에도 우르프 섬 근해에서 규모 8.3과 규모 8.1의 강진이 연이어 일어나 북서태평양과 오호츠크해 연안 일대에 지진해일이 발생하는 등 과연 "불의 고리"의 한 부분다운 강렬한 지각변동을 보여줍니다 빼어난 절경을 하나 보고 가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바로 우시시르섬의 크라테르나야 만(бухта Кратерная)으로 칼데라에 들어찬 석호가 마치 성채에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크라테르나야는 '분화구' 라는 뜻) 거대한 지각변동이 주는 두려움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하니 지구의 신비로움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성자 : 크로켓고정닉
러시아인들에게 힘(Сила)이란 무엇인가?(Ft. 브라뜨)
타타르의 멍에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던 1240년, 러시아의 민족영웅 알렉산드르 네프스키(Алекса́ндр Не́вский)는 네바강 전투를 앞두고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은 권세 안에 계시지 않는다. 그 분은 오직 진리 안에 계신다.(Не в силе Бог, а в правде)'중세 러시아의 가치관에서 힘은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말대로 신(힘)은 진리였고, 용기와 지혜, 온유함을 모두 아우르는 미덕으로 여겨졌다. 다만 이때까지는 힘 보다 진리가 먼저였다. 노브고로드의 공작이 했던 이 말은 이후 세월이 흐르며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격언으로서 러시아적 세계관(Русский мир)의 기초를 다졌다.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힘을 잃을 때마다 외세의 침략, 내부분열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 무너졌다. 그리고 무질서 속에서 속에서 민중들은 고통 받았다. 몽골의 침략, 폴란드의 간섭, 스웨덴과의 전쟁, 나폴레옹, 적백내전과 간섭군, 나치 독일과 히틀러, 더 나아가 페레스트로이카. 이런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러시아인들의 민족적 신념에는 한가지 고정관념이 자리 잡았다. '힘은 모든 것이다. 힘이 있어야만 질서가 존재한다. 질서가 없는 혼돈은 지옥이다. 그러므로 힘을 유지하는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 것이 설령 우리 자신들이라 할지라도.' 러시아 역사의 혼란기때마다 항상 신출난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강력한 권력으로 혼란을 평정하였다. 네프스키가 그리하였고 표트르 대제가 그리하였고 알렉산드르 2세와 스탈린이 그리하였다. 물론 그들 역시 통치를 하다보니 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좀 심하게 많이 안겨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오는 잊혀지고 업적만이 남게 됐다. 러시아인들은 10세기에 걸친 고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강력한 지도자가 있다면 우리는 힘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지도자를 잃는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고통 받고 굶주리는 것보다는 권력의 밑에서 억압 당하는 것이 안전하다' 네프스키가 말했던대로 러시아인들은 힘을 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힘이 진리 앞에 왔다. 사실 진리가 있던 없던 힘이 더 중요했다.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차르)를 신격화했고 무조건적인 신뢰와 믿음을 보냈다. 간혹 스테판 라진처럼 그 믿음을 의심하고 거스르는 규격외 인물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배신자들은 신속하게 처벌됐다. 러시아인들에게는 권력을 위해 개인의 안위를 신경쓰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다양성의 존중은 무시되고 오로지 전체가 우선시됐다. 무자비한 물리적 힘의 가치가 도덕적 이상보다 앞섰다.여기에 러시아 특유의 민족성인 '체념'이 더해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저 묵묵하게 견뎌내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 군복무(20년)의 문제 등등. 슬라브 문학의 특징인 '죽겠다'처럼 러시아인들은 인생의 고난을 견뎌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물론 정도가 지나치면 러시아 혁명처럼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을 안정시켜줄 새로운 권력을 찾아 숭배했다. 다른 나라라면 진즉에 들고 일어났을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구시대적 체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들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물론 장점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강한 인내력과 단결력을 보여주어 고난을 극복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2차례의 대조국 전쟁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렇게 극복한 고난은 이후 수백번도 넘게 서사시로 쓰여졌다.공산주의는 그저 허울 뿐이었고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강력한 힘을 원했다. 마르크스가 서유럽 도시 노동자들을 보며 꿈꿔온 사회주의 락원은 사실 러시아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세상이었다. 베를린을 점령하고 우주에 로켓을 쏘아올리고 아메리칸스키들과 세계를 양분하며 겨룬 소련의 모습은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힘의 실체화였다. 하지만 그런 힘도 결국 10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옐친이라는 머저리는 국가를 양아치들의 경합장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들을 지켜줄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각자 알아서 힘을 가져야만 했다. 힘의 논리는 사회와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골목길과 놀이터에서도 이어졌다. 10년의 혼란기를 끝맺은 것이 바로 푸틴이었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푸틴 역시 정적들을 물리치고 철권을 휘두르며 정국을 안정 시켰다. 비록 소련시절의 위상까진 못하더라도 러시아 민중들은 푸틴이 가져다준 '안정적인 질서'를 반가워했다. 그가 인권운동가들에게 방사능 홍차를 보내고 으리으리한 궁궐을 위해 부정축재를 하는것 정도는 그러려니 생각했다. 힘을 가진 자는 당연히 그런걸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그저 힘이 가져다주는 질서만 있으면 만족했다.가끔씩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족속들(체첸, 조지아)에게 힘자랑을 하여 찍어 눌러주는 모습은 러시아인들에게 공짜 서커스나 다름 없었다. 뭐 이웃집 누구 아들이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하지만 잠깐 눈물 좀 흘리고 끝내면 된다. 그들은 힘이 가져다주는 질서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 뿐이니까. 신생 러시아연방의 혼란이 끝날 무렵인 1997년과 2000년, 영화 2편이 개봉했다. 한 청년이 개판 5분전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믿는 신념을 설파하는 로드무비였다. 주인공 다닐라 바그로프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힘이란 진실에서 나오는 것이다.(Сила в правде.)'주인공 다닐라가 외친 이 대사는 수백년 전 네프스키의 연설에 대한 오마주 그 자체였다. 영화 속에서 내내 힘의 정의에 의문을 품었던 다닐라의 이 한마디는 러시아인들의 민족정신을 꿰뚫었다. 다닐라는 영화가 개봉한지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대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 정당의 슬로건, 러시아 국방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홍보포스터에도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분명히 힘(권력)을 가졌다. 하지만 진실(진리)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어쩌면 힘을 가진 자가 곧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리즈] 같이 보기 · 우크라이나의 정신, 볼랴(Воля) ·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성 차이 한줄 요약 - 러시아인들에게 힘이란 질서이자 모든 것이라서,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면서까지라도 안정을 얻으려고 함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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