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23전 23승의 경이적인 신화를 남긴 이순신 장군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승리할 시기와 장소를 주도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는 적군의 동향과 지형, 심지어 바닷물의 흐름까지 면밀하게 분석한 후 승산이 있을 때 비로소 진군나팔을 불게 했다.

임금이 출전하라고 해도 승산이 없으면 나서지 않았다. 후임 원균 장군이 칠천량해전에서 궤멸된 뒤 백의종군으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불과 12척만 남은 전선으로 200여척의 왜선 함대를 맞아 또다시 승전고를 울린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이다. 그가 지략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멀티플레이어이자 미래의 진정한 CEO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신흥증권 인수 소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지금은 신차 제네시스 출시를 계기로 힘을 모아 ‘전공’인 자동차에서 사느냐 죽는냐의 승부를 내야 할 때다. 하필 이 시기에 낯선 업종으로의 진출은 어둠이 깔린 칠천량 앞바다만큼 위험해 보인다.

현대차는 기아와 합쳐야 고작 세계 6위권이다. 글로벌 빅4로 진입해야 승산이 있다. 세계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78%가 도요타 제품이다. 머지않아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등 첨단기술 특허를 독차지할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 등 주력 수출시장에서 판매정체를 해소해야 하고 갈수록 떨어지는 수익성도 발등의 불이다.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제조원가 비중은 83.8%(2006년 기준)로 도요타(70%)보다 훨씬 높다. 고급차시장 진입 성공과 미래형 자동차의 조기 상용화에 사활이 달려있다.

물론 현대자동차의 신흥증권 인수로 금융 부문 성장축이 다변화되고 그룹 총 부가가치가 증대될 수 있다. 인수 금액도 그룹 매출액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그러나 인수 금액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 캐피털과 카드 사업을 연계해서 자동차 관련 금융 사업을 발전시킨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증권업은 아니다.

증권업으로 재미 본 재벌이 별로 없다. LG는 증권업을 하다 두 손 들었고 SK, 동양그룹도 계열 증권사의 부실로 그룹이 어려움을 겪다 겨우 회생했다. CJ는 자산운용회사를 처분하고 증권만 남았다. 일등주의를 표방하는 삼성도 증권에서만은 유독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펀드시장에서는 박현주 회장이 이끄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이 발군의 선두다. 두뇌산업인 증권업은 재벌의 관료주의적 의사결정 행태로는 한계가 있는 업종이다. 증권사 인수할 돈이 있으면 한 푼이라도 기술 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에 써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현대자동차 그룹이 국내총생산(GDP)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1%에 이른다. 현대차에 좋은 일이면 한국에 좋은 일일 정도로 국가 경제의 견인차다. 이런 기업이 세계를 겨냥해야지 국내 시장을 기웃거리면 곤란하다. 레저 산업에 이어 고작 그룹 물량을 노리고 증권업을 한다면 세계 경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현대차는 한국인의 애국심에 힘입어 성장해온 기업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현대차의 고질적인 노사분규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총수의 비자금 사건은 아직 국민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현대차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싸늘하게 식으면 내수시장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어올지 모른다.

‘Think about it(생각해 보세요).’ 현대차가 북미 시장에서 벌이는 차별화된 광고 캠페인이다. ‘자동차가 컵 홀더 대신에 더 많은 에어백을 가지면 안 되나요?’ 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자동차의 진정한 가치와 품질을 제공하는 차가 현대차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차 스스로에게 더 필요한 카피가 아닐까. 진정 현대차가 잘되길 바라니 하는 말이다.

[윤영걸 주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