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당초 20일로 예정됐던 첫 후륜구동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의 출시행사를 16일 전격 취소했다. 현대차 노조의 계속된 파업으로울산공장에서 신차가 출고되지 못한 탓이다. 제네시스 쿠페를 생산하는 울산 4공장 관계자는 “7월부터 계속된 파업 때문에 영업소에보낼 차는 고사하고 출시행사에 쓸 차량 조달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현대차의 한 고위임원은 16일 "신차가 제때 나오지 못하는 것은 자동차회사에 가장 치명적인 일"이라며 "다른 부서였다면 담당자 목이 날아갔겠지만 노조가 차를 안 만들어 생긴 일이니 속만 탄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 들어 10차례에 걸친 파업으로 약 7000억원의 매출손실을 입고 있다. 기아차파업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9000억원. 협력업체 피해까지 합치면 2조 원 이상 피해를 봤다. 아반떼·i30·베르나 같은중소형차는 전 세계의 고유가·경기침체로 10만 대 이상 해외주문이 밀려 있지만, 생산이 안 되는 탓에 해외 딜러들의 불만이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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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문제가 국내 산업 전반에 치명타

현대차 노사문제는 개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산업연구원에따르면 2006년 자동차 4개사가 국내 전체 노사분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산차질에서는 94.7%, 수출차질액에서는98.3%였다. 자동차가 국내 노사관계 개선에 결정적인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부문은 완성차 10만9000명,부품회사 15만6000명, 생산·자재부문 13만1000명을 비롯, 판매·정비·유통·운수 등 관련산업에 총 120만7000명이종사하는 국내최대 고용 산업이다.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6.7%, 사업장 취업자의 10.4%를 차지한다. 현대차의 노사갈등이 이들사업장에 차례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치판보다 더 복잡한 현장… 협상해도 끝이 없어

현대차 기획실 정병문 상무는 "노사협상은 노조 지도부가 대표성을 갖고 사측과 협상해야 하는데, 현장의 각 계파들이 전부 제 목소리를 내고, 지도부가 사측과 합의해도 무력으로 엎어버리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1987년 결성된 현대차 노조는 정치판을 능가할 만큼 조직 간 암투가 치열하다. 윤해모 현 노조위원장(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 이상욱전임 위원장을 배출, 현재 현대차 노조를 이끌고 있는 \'민투위\' 외에 박유기 전전임 위원장이 소속된 \'민노회\'와 하부영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장이 속한 \'민혁투\', 정갑득 현 금속노조위원장이 속한 \'민주현장\' 등 7개 조직이 서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있다.

한 노조원은 "다른 계파를 설득해 협상타결을 이끌어야 할 집행부 조직(민투위)조차 3개 계파로 갈라져싸우고 있다"며 "이달 대의원(노조원 100명당 1명꼴로 뽑는 일종의 현장 리더) 선거, 내년 9월 현대차 노조위원장·금속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계파 간 권력 싸움이 극에 달해 있다"고 전했다.

내년 9월 실시할 예정인\'주간연속 2교대제\'는 현 노조 집행부의 공약사항이지만, 반대파들의 집행부 흠집내기로 실시 여부조차 불투명해지고 있다.울산공장의 작업반장 A씨는 "주변에서 파업 끌길 원하는 노조원들은 없다"며 "현장 조직끼리 타협이 안 되고 각각 목소리를 내니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돈으로 메워 온\' 노사안정…신뢰·원칙 세워야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노조가 된 것은 회사 경영진이 노조를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고 신뢰·원칙을 바탕으로 노무전략을 짜기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노조측에 돈을 쥐어주며 봉합해온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현대차가 돈으로 노사안정을 유지해온 것은 그게 더 쉽고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차의 인건비 비중은 2000년대 초까지 일본·미국보다 낮아,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우선 공장을 돌리는 게 이익이었다. 그러나 현대차 내부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2004년 9.58%에서, 2005년 10.95%, 2006년 11.41%로 상승 중이다. 반면 2006년 도요타와 혼다 차의인건비 비중은 각각 7.25%, 8.02%였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차 사측이 노조의 잘못된 관행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며 "노사의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면 남은 것은 미국 \'빅3\'의 길뿐"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노사가 협상 타결을 못하면 노사가 합의한 주간연속 2교대제라는 큰 틀이 깨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준비하지 않으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