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더 이상 \'월드카(world car)\' 전략을 고집하지 않을 겁니다. 세계 곳곳에서 똑같은 브랜드와 제품명을 달고 나가는 월드카는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같아도 각 시장 상황에 따라 약간씩 다른 겉모습, 디자인과 브랜드, 제품명으로 로컬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최근 방한한 닉 라일리(Rilley·사진) GM 아태지역 총괄사장은 "오늘날과 같이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황 속에서는 \'월드카\'의 개념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출신인 라일리 사장은 1975년 GM에 입사한 뒤 <U>벨기에</U>, <U>미국</U>, <U>멕시코 </U>지사 등을 두루 거쳤다. GM의 대우자동차 인수 과정을 총괄하고, 2002년 10월 GM대우 출범 이후 2005년까지 사장을 역임해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GM의 \'월드카\' 전략은 1970년대에 글로벌 자동차시장에 \'<U>일본</U> 태풍\'이 불면서 시작됐다. 대형차 중심의 서구 메이커와 달리 도요타 등 일본 업체들이 소형차를 중심으로 정교한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일본 소형차의 공략에 대응하기 위해 1970년대 말부터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는 대량생산·대량판매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월드카 전략에 몰두해 왔다.

그는 "월드카란 개념은 세계 곳곳에서 다른 얼굴의 소비자를 만나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입장에선 위험할 수 있다"며 "10년 전만 해도 모든 국가에서 똑같은 브랜드를 달고 차를 팔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메이커도 어느 지역에 어떤 얼굴(face)을 한 자동차를 내놓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월드카라는 개념 자체가 오늘날의 자동차산업에선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그는 자동차 생산 과정에선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월드카 개념이 위험할 수 있지만, 생산 부문에선 월드카의 개념이 오히려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출시된 GM의 신차 \'라세티 프리미어\'가 이 같은 전략으로 개발된 차량이다. 설계는 유럽에서, 기술 개발과 디자인 연구는 한국에서 이뤄졌다. 그는 "라세티는 세계 곳곳에 촘촘히 뻗어있는 GM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만든 차"라고 설명했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GM의 장래도 불투명하다. 라일리 사장은 "자동차업체들이 최소한 18개월 정도는 보수적인(conservative) 경영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씨가 실물경제로 옮겨 붙으면서, 자동차업계의 기초체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요. 특히 미국과 유럽의 시장 상황은 한마디로 위기(crisis)입니다. 자동차 메이커의 운명은 이곳에서의 손실을 어떻게 막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는 <U>중국</U> 시장에 대해선 낙관했다. 내년 중국 자동차시장의 성장률이 4~5%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8~9월에 중국도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회복 중인 것이 희망적이에요. 물론 지난 몇 년 간처럼 연 10%를 상회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는 아니지만, 요즘은 성장하는 시장이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죠. 특히 중국 정부가 최근 내년 경제성장률 8%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아주 고무적입니다. 현지 기업인들은 \'정부가 한다면 할 것\'이란 믿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