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깎아 팔아도 안 산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내수 자동차 시장의 위기감은 별로 크지 않았다. 미국에 이어 유럽·일본 자동차 시장이 사상 최악의 판매로 고전하고 있는 와중에도, 지난달 국내 완성차 회사의 내수 판매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0.3% 감소하는 데 그쳤다.

국내 영업 일선에서는 현재 파격적인 조건으로 할인하는데도 판매가 급감하는 것에 대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달의 경우, 올 9월까지 현대·기아차 노조 파업으로 공급이 안 됐던 차량수요가 풀리면서 판매가 일시 늘어난 \'착시(錯視)현상\'이었다는 것이다.

판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그동안 할인폭이 적었던 현대차마저 싼타페·투싼과 제네시스 재고차량에 대해 20% 안팎의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에쿠스는 최대 1000만원, 베라크루즈는 550만원까지 값을 깎아준다. GM대우의 윈스톰은 300만원까지 할인해준다. 쌍용차는 36개월 무이자 할부판매를 하고 있는데도, 이달 10일까지 판매가 46%나 감소했다. 쌍용차의 한 영업소장은 "이런 식으로 몇 달 더 가면 문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판매가 하락하는 것도 자동차 내수침체 본격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달 1~10일 현대차의 판매는 전월 같은 기간보다 28%, 신차를 계속 내놓았던 기아차는 36%가 각각 떨어졌다. GM대우·르노삼성의 하락률은 각각 52%, 45%나 된다.

◆불황에 잘 팔리는 경차도 안나가

이달 들어 내수 판매의 또 다른 특징은 불황기에 잘 팔리는 경차·소형차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것이다.

이달 1~10일까지의 차급(車級)별 내수 시장 증감 추이를 보면, 전월 같은 기간보다 경차(모닝·마티즈급)가 38%, 소형차(베르나·프라이드급)는 45% 판매가 줄었다. 반면 대형차(제네시스·오피러스·체어맨급)는 19% 감소에 그쳤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이 경차·소형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구입을 중단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수입차의 판매 부진도 이달 들어 가속화되고 있다. 올여름까지만 해도 전년보다 월 평균 30%씩 증가해온 수입차 시장은 지난달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 넘게 줄면서 판매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번 달은 지난달보다도 판매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수입차 판매 1위인 혼다가 지난달 수입차 판매 하락률 1위(-47%)를 기록한 것은, 수입차 시장에서도 중산층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특히 지난 7월 한 달 동안 1103대나 팔렸던 혼다의 중형세단 어코드는 지난달 377대에 그쳐 석 달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판매량이 격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