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아! 밥솥에 밥 있으니까, 점심 때 동생이랑 꼭 밥 챙겨먹어야 돼!"
"네."
"왜에?"
"그냥 엄마가 회사 그만두면 안 돼요?"
매달 둘째, 넷째 \'노는 토요일\' 일명 \'놀토\'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아침 풍경이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도 먹을까 말까한 10살짜리 아이에게 점심까지 차려먹으라니, 그것도 밥이 아닌 다른 걸 먹게 되면 여지없이 아토피 발진이 생겨 밤잠을 설치는 동생까지 챙기라니, 얼마나 귀찮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굶게 할 수는 없으니, 팥쥐엄마를 자처할 수밖에.
"밥 있고, 반찬 있고, 꺼내서 먹기만 하는데 10살이나 돼서 그것도 못 해?"
"알았어요."
마지못해 입을 뗀 아이의 대답에는 아기 주먹만 한 제 가슴팍도 이해 못해주는 것에 대한 원망이 배어 있다.
그랬다. 난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두 아이를 둔 \'직장맘\'이다.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놀토\'가 만들어졌지만, 내가 다니는 사무실은 남들처럼 주5일 근무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작은 곳이기에 노는 토요일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물론 남들 놀 때 일해야 하는 억울함도 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일을 하면서도 적은 월급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 아이의 점심식사 때문이다.
놀토만 되면 \'모나리자\' 돼서 출근하는 직장맘
주변에 아이를 챙겨줄 만한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2주에 한 번 돌아오는 놀토 때문에 어렵게 구한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특히나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는 한 푼이 아쉽다. 물론 받은 지 5분도 안 돼 대출금과 아이들 학원비, 밥값, 특기적성비 등으로 월급이 모두 빠져나가지만, 그마저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여, 놀토만 되면 너무 바빠 눈썹도 그리지 못하고 \'모나리자\'가 돼 출근을 해야 한다.
"가스 불 만지면 안 돼! 저번에 달걀프라이 해 먹는다고 하다가 데였지?"
"네."
"토스터기도 만지면 안 돼, 오븐도!"
"네."
"불나면 죽어, 안 죽어?"
"죽어요."
"그러니까 가스, 전기 만지면 돼? 안 돼?"
"안 돼요."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사고가 날까 싶어서 엄하게 했지만 아이들 점심도 못 챙겨주는 엄마의 미안함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짠한 마음에 점심 먹은 뒤 동생이랑 텀블링장에 가라며 식탁 위에 2000원을 올려놓고 나오는데, 내려놓은 2000원이 무색하게 발걸음은 납덩이를 단 듯 무겁기만 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건망증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해진 탓인지 아침에 분명히 잠그고 나온 가스밸브가 시간이 지날수록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결국 안절부절못하다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가스 불 만지면 안 돼!"
"알았다니까요. 안 만져요."
누가 우리 아이들 점심만 챙겨줄 수 없을까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아이가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씩씩한 대답과는 달리, 아이들은 화재와 사고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호기심이 충만해 예상치 못한 사고로 번번이 나의 애간장을 녹였다. 점심으로 달걀 프라이를 해먹다가 데이고 빵을 굽다가 데이고 라면을 끓이다가 엎어서 놀라고. 얼마 전에도 아주 큰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점심 무렵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큰 아이 건이가 당황함이 역력한 목소리로 "엄마 민이가 칼로 오이를 깎다가 손을 베어서 피가 나요. 어떻게 해요?"라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땐 \'많이 다쳤냐\'고 물어봐야 하는 게 이론적으로 맞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걱정스런 마음은 우선 접고 자초지종부터 먼저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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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초등학생이 학교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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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왜 만졌어?"
"엄마가 칼은 만지지 말라고 안 했잖아요."
아이가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길 바란 내가 바보였던 것일까? \'위험한 물건\'이 어찌 가스, 전기만 있을까만은 아이는 엄마가 \'칼\'을 꼭 집어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칼을 만졌던 것이다.
"그걸 말로 해야 알아? 당연한 거지! 근데 오이는 왜 깎았어?"
"먹으려고요."
전화기 너머에선 "피!"를 외치며 우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약 발라서, 반창고 붙여주고, 칼, 가스, 전기 아무 것도 만지지 마!"
침착한 척, 그까짓 상처, 약 바르고 돌아서면 낫는 거라고 짐짓 태연한 척 말은 했지만 당장에 뛰어가서 약 발라주고 싶고, 약 발라준 뒤 깎다 만 오이 깎아서 따뜻밥 차려 먹이고 싶은 마음까지는 달래지지 않았다. 퇴근 무렵까지 좌불안석으로 있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불이 나게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보니, 둘째 아이가 반창고를 둘둘 말아 놓은 손가락으로 나에게 와락 안기며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니까 왜 칼을 만졌어? 왜?"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막상 우는 아이를 보니 애써 달래놓은 마음이 해면처럼 풀어져버렸다. 속상한 마음에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주고 나니 얼얼해진 손바닥보다 가슴이 더 아파왔다.
"배 고파서요."
<
엄마 없는 하늘아래 > 보다 더 슬픈 영화가 상영되는 \'놀토\'였다. 칭칭 감긴 반창고를 풀어 다시 약을 바르고, 물에 닿지 않게 씻겨서 재우고 나니 두 아이 잘 키워 보겠다고, 피곤한 몸 이끌고 다니는 직장생활에 회의가 밀려왔다.
\'이럴 때 챙겨줄 사람이라도 있다면….\'
놀토가 지나니 긴긴 여름방학이 씻기고 재우고 키워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점심 한 끼 챙겨주는 사람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만 먹여준다면 아이들이 칼을 만져서 다치는 일도, 가스나 전기로 인해 여린 팔뚝을 데이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사방천지를 둘러봐도 바쁜 사람 뿐이다. 할머니도 바쁘고, 고모도 바쁘고, 아빠도 바쁘고, 엄마까지 바쁘니 아이들도 참 안 됐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울고 싶은 사람 뺌 때리는 격이라더니, 놀토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 주부터 긴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긴긴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지\'라는 생각 말미에, 놀토가 올 때마가 갖았던 \'퇴사\'에 대한 생각이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거실로 나와 남편에게 물었다.
"방학 때 애들 어떡하지?"
대답이 없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챙기는 게 당연하지만, 아이들보다 더 눈앞에 있는 또 다른 현실 역시 나를 두 아이의 엄마로만 두진 않는다.
"내가 그만 둘까?"
"방법이 있겠지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냐?"
나 하나 직장 생활 안 한다고 네 식구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건지 방학 동안 점심 한 끼 굶는다고 두 아이가 굶어죽는 건 아니라는 건지 남편의 대답은 긴긴 메아리만 남긴 채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질척거리는 여름밤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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