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개막작 ‘집결호’ / 이창동 감독의 ‘밀양’ / 폐막작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序)’ / 김동호 집행위원장 (photo 부산국제영화제)
이 가을, 부산은 영화와 열두 번째 사랑에 빠진다.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 4~12일)가 열리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새로운 사랑의 서약을 한다. 이름하여 ‘비욘드 프레임(Beyond Frame)’. 중심과 주변부, 지역과 국가 간의 틀을 깨고 아시아 영화가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지난 9월 4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금까지 지향해왔던 ‘새로운 영화의 발견’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발굴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면서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는 틀 깨기와 비전 추구를 거듭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세계 64개국에서 온 275편이 상영된다. 그 중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 66편으로 역대 최대이고,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최초로 상영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도 26편이나 된다. 이는 부산 국제영화제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신설된 ‘갈라 프리젠테이션’은 세계적 거장의 신작과 화제작을 주로 소개하는 코너. 이번에는 한국의 이명세 감독과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신작이 상영된다.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는 지난 6월 타계한 대만 감독 에드워드 양의 특별전이 포함됐다. 그의 작품 8편을 모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개막작으로는 중국 펑샤오강 감독의 ‘집결호(Assembly)’가 선정됐다. 이 영화는 중국의 화이브라더스와 한국의 MK픽처스가 공동제작 파트너로 참여한 작품이다. 중국혁명기인 1948년 인민해방군과 국민당 군대가 벌인 ‘화해전투’를 소재로 삼았다. 실종자로 처리된 동료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담은 전쟁 휴먼드라마. ‘야연’ ‘일성탄식’ 등을 만든 펑샤오강 감독은 ‘중국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흥행감독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든 한국의 특수효과팀이 이 작품의 전쟁신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폐막작으로는 일본 안노 히데야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序)’가 상영될 예정이다. 이는 1995년 TV애니메이션으로 방송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리메이크 영화로 지난 9월 1일 일본에서 개봉했다. 해외에서는 부산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1997년 제작된 극장판에 이어 10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더해 4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더욱 화려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는 영화제의 장편 경쟁부문인 ‘새로운 물결(뉴 커런츠)’의 심사위원장에 이란 출신의 세계적 거장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을 기용했다. 그는 1970년작 ‘소’로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심사위원으로는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 세르비아의 고란 파스칼리에비치 감독, 중국 배우 위난, 한국의 이창동 감독 등이 선정됐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미성년 소녀의 낙태문제를 그린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고란 파스칼리에비치 감독은 1998년 ‘화양고’로 베니스영화제 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위난은 중국 왕취엔안 감독의 ‘월식’으로 데뷔한 뒤 ‘분노’ ‘얼메이 이야기’ ‘투야의 결혼’ 등 프랑스와 중국 영화계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박하사탕’ ‘밀양’ 등을 연출했다.
올해 신설되는 프로그램으로는 ‘한국영화 회고전’도 있다. 이번 주인공은 배우 김승호다. ‘김승호:아버지의 얼굴, 한국영화의 초상’이라는 이름 아래 ‘로맨스 빠빠’(1960) ‘박서방’(1960) ‘마부’(1961) 등이 상영된다. 김승호는 1950~1960년대 활동했던 국민배우다. 20세에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은 것은 30대 들어서부터였다. 말년에는 영화제작자로도 변신했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는 올해 새롭게 구성한 아시아영화펀드를 통해 제작 지원할 27편을 선정해서 발표했다. 9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기존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를 통해 지원하던 프로그램을 장편독립극영화까지 확대했다. 장편독립영화 개발비 지원, 후반 작업 지원,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장편독립영화 개발비 지원 부문 가운데 아시아 프로젝트에는 중국 리우하오 감독의 ‘사랑의 중독’, 필리핀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세르비스’ 등 4편이 선정됐다. 한국 프로젝트에는 조은희 감독의 ‘꽈리’, 양해훈 감독의 ‘도깨비’, 손영성 감독의 ‘월식’이 뽑혔다. 부산 프로젝트에는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의 소녀와’가 선택됐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아시아펀드는 아시아 영화에 더욱 폭넓은 지원을 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면서 “아시아 영화를 위한 네트워크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다큐멘터리 아시아 프로젝트 지원작 ‘원더풀타운’의 아딧야 아시랏(태국) 감독은 “태국에서 독립영화를 한다는 건 외로운 작업인데 이번 제작 지원을 통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 매우 감사하다”면서 “부산영화제의 리더십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는 동양의 대표 영화제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홍콩, 도쿄 등이 우세했지만 최근 국제 영화인들은 아시아 영화의 흐름을 알기 위해 홍콩이나 도쿄로 가지 않고 부산으로 몰려온다. 전략적인 면에서는 도쿄영화제와 달리 비경쟁영화제로 운영한 점이 결정적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지석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칸·베니스·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은 도쿄·상하이·카이로 등 경쟁영화제에는 초청될 수 없다”면서 “경쟁영화제로 운영한다면 이들을 빼고 ‘이삭줍기’를 해야 하므로 역작을 걸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성공요인은 관객들의 역동성이다. 부산 남포동의 ‘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광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객들로 매년 넘쳐난다. 반면 유럽의 국제영화제는 권위는 있지만 관객의 에너지가 부산보다 약하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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