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찾아갔던 충남 아산시청 지역경제과는 분주했다. 한쪽에선 몇 명의 공무원이 "꼭 도로변 부지에 공장을 세우고 싶다"는 기업인과 상담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상담이 끝나자 이번엔 \'충남 디스플레이 센터\'에 입주한 기업들을 만나야 한다며 바삐 사무실을 나섰다. 그야말로 활력이 넘쳤다. 모두 탕정면에 LCD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라고 했다. 임창빈 지역경제과장은 "기업들이 몰려와 할 일도 많아졌고 보람도 커졌다"며 웃었다.

\'기업하기 좋은\'이란 말이 지방자치단체들의 단골 수식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자체들이 그만큼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기업이 몰려드는 지자체는 많지 않다. 본지가 \'기업이 도시를 만든다\' 시리즈를 통해 소개한 파주.당진.아산.사천은 그중 성공을 거둔 사례였다.

이 도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나 공적 부문이 아니라 기업이 도시의 발전을 주도하는 \'자생 도시\'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기업도시\'로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게 아니다. 다만 공장이 들어서자 인구가 늘고 아파트가 들어서며 도시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변변한 쇼핑센터나 대형 아파드 단지가 없던 아산시는 삼성전자 LCD 사업장이 들어서면서 신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진군도 최근 철강업체의 직원들이 당진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교육과 의료시설 등 주거 환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하나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파주시의 경우 공장부지의 묘지 이장과 문화재 발굴에 공무원들이 나서서 단지 조성 기간을 대폭 줄였다. 아산시와 당진군은 \'삼성지원팀\'과 \'현대제철 지원팀\'을 운영했다.

이는 현재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기업도시\'와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지정한 6곳(태안, 무안, 영암.해남, 무주, 원주, 충주)의 기업도시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미미하다. 영업 실적이 거의 없는 기업들이 구색 맞추기로 참여한 경우도 있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 따라 지역을 선정하다 보니 기업들의 요구를 충족해 주지 못한 것이다. 기업 없는 기업도시의 장래가 걱정스러울 정도다.

"(기업도시라는) 명칭만 갖다 붙이면 저절로 흥하는 게 아니다. 지방에 인프라를 확보해 주고 규제를 풀어 주면 기업이 스스로 온다." 이번 시리즈를 본 독자 권명진씨의 지적이다. 정부가 앞장서 지원하는 \'기업도시\'라는 문패 없이도 기업과 함께 커 가고 있는 4개 도시는 이 같은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준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