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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공업’에 묻힌 역사·문화의 빛깔을 찾아라

해울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2.04 01: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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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들의 도시

앞서 울산2편(본지 2008년 1월4일자)에서 옛 울산읍성 자리에 새겨진 식민도시화와 함께 역사의식 부재의 현실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독자들 중에는 “지난 이야기는 말해서 무엇해” “과거에 대한 이런 식의 평가는 쉽고도 간단할 수 있다” 등 언짢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취지를 밝혀두고자 한다. 잘못 형성된 울산의 인식틀을 재고하자는 뜻이었다. 흔히 울산은 “허허벌판에서 일궈낸 신도시”로 일컬어진다. 자주 듣는 말이고,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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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탑 로터리, 공업탑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건립을 기념해 세워졌다 |울산시제공

최근 울산시가 발간한 홍보용 사진집 ‘울산, 어제와 오늘’이나 ‘사진으로 보는 울산의 발전사’를 보자. 보잘 것 없던 황무지 도시가 공업도시로 바뀐 모습은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울산의 이미지는 한편으로 울산시민들에게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자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독의 위험성도 있다. 그것은 가시적 업적 홍보수단으로 동원된 울산의 이해방식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타고난 울산의 역사와 문화가 가려진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권침탈 이후 일제는 자신들의 시정 위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대도시에서 공진회, 품평회, 박람회 등을 개최하면서 식민통치 전의 전근대적 모습과 놀랍게 변모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비교하는 각종 전시물을 선보였다. 이 때 자주 활용된 매체가 바로 사진이었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시선과 왜곡이 담겨질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것이다. 마치 ‘성형수술 전과 후’의 비교 사진을 반복해서 봤을 때 유발되는 광고 효과처럼 조선인들의 인식틀에 제국의 시선과 식민지 근대화의 위업을 각인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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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공원, SK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울산시에 기부했다. |김민수
이 같은 이미지 학습과 설득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울산인들은 점차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열등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이로써 가꿔 나가야할 소중한 가치들이 사라지고 왜곡된다. 따라서 그동안 울산의 도시디자인은 역사와 문화로부터 우러나온 것이 아닌 식민주의 개발방식의 시선과 선택에 길들여진 ‘타자들의 도시화’였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치유되고 바로 잡히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서 먼저 해방 이후 울산은 어떤 도시개발의 단계를 거쳤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공업탑 교차로에서

울산 시민들 중에는 울산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는지 알지 못해도, 신정동 ‘공업탑 로터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이곳이 196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태화강 남쪽 신도심 개발의 중심축이었다.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시청과 태화교 너머 구도심과 해안도로 아산로를 거쳐 방어진에 이른다. 남쪽 방면은 온산산업단지와 부산 해운대로 향한다. 동쪽 길은 삼산로 신도심을 가로질러 울산역으로 이어지고, 남동쪽은 장생포와 석유화학단지로 이어진다. 서쪽은 월드컵구장, 언양, 경부고속도로로 향한다. 이처럼 울산의 모든 길은 공업탑 교차로에서 만나고 갈라진다.

공업탑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건립을 기념해 세워졌다. 당시 인구 10만의 울산에서 계획인구 50만을 꿈꿨던 염원이 이 탑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디자인의 측면에서 이 탑은 마치 5개의 젓가락을 붙여 지구본을 얹어 놓은 듯 조악한 형태와 구조로 이루어져 급조된 공업도시 이미지를 자아낸다. 나는 공업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수십년간 피와 땀으로 이룩한 공업도시의 위업과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된 용사의 상흔이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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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변의경관, 서울의 한강변과 다를 바 없다 |김민수

1960년대 공업기반 형성시기를 거쳐 울산에 도시기반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울산의 도시개발 변천사에 따르면, 이는 1970년대 초 해안가에 석유화학단지와 온산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조성된 데 기인했다. 1976년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울산은 도시개발 성숙단계를 거친다. 이 시기 자동차와 조선산업의 가동과 온산국가산업단지 개발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교통과 주택 등 각종 도시문제가 유발되고, 신·구시가지의 이원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도로망이 오늘날과 같은 틀을 갖춘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86년 이후 십년에 걸쳐 울산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고속성장을 거듭해 마침내 전국 7대도시로 성장했다. 이 무렵 남구 삼산 일대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확장 개발되고, 철도이설에 따라 울산역 역세권 개발이 추진되어 삼산평야의 계획적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1990년대 말에 신도심의 중심축이 기존 공업탑 교차로에서 현 롯데백화점 일대로 이동했던 것이다. 1995년 이후부터 울산은 새로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시가지가 확장된 1995년에 울산시는 울주군을 통합함으로써 천혜의 자연경관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됨에 따라 울산시는 자율적인 도시계획과 개발을 추진할 수 있게 자리 잡았던 것이다.

#공업도시가 남긴 것

이처럼 40여년에 걸친 울산의 도시변천은 한마디로 ‘태화강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속도전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울산인들은 공단개발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감내해야만 했다. 예컨대 그동안 울산의 1인당 도시공원면적은 전국 최하위였고, 사회복지시설 역시 광역시 중 최하위였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남구 신정동과 옥동 일원에 개장해 1인당 녹지공원 조성 면적을 부산 수준으로 끌어올린 ‘울산대공원’은 주목할 만하다. 공원에 들어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인공 연못과 풍차가 눈에 띈다. 이곳에는 수영장과 헬스장의 시민 체육시설뿐만 아니라 생태관과 자연학습원 등의 교양시설이 광활한 녹지공간에 펼쳐져있다. 이 공원은 1962년 정유공장 설립 이래 울산에서 성장한 기업 SK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울산시에 기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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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는 함월산 자락에 279만 7067㎡의 혁신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시제공

SK의 선행은 기업윤리 차원에서 귀감이 될 만한 미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환경오염을 삶의 일부로 감내하고 살아야만 했던 울산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자 치유였다. 특히 공단 쪽에서 남동풍을 타고 불어오는 냄새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초콜릿 냄새와는 성격이 달랐다. 더 큰 문제는 울산에 도시디자인을 위한 밑그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주로 기업이 뿌리고 거두는 식의 도시개발에 의존했던 것이다. 이는 도시계획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정책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은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센터 건립 등 문화 인프라 구축과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꾸준히 펼쳐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울산의 문화적 토양을 자체 배양해 생산하기 보다는 주로 서울 수준의 문화예술을 향유 내지는 소비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울산에서 문화예술은 공업생산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여가활동 차원의 오락적 볼거리인 셈이다.

#혁신도시 블루스

최근 울산시는 중구 우정동 외 10개 동 일원에서 ‘울산 혁신도시’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에너지 및 노동복지 기능군의 11개 공공기관과 연구소를 이전해 부산, 대구, 포항, 경주 지역의 대학, 기업체, 연구소 등과 연계하는 광역 에너지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있다. 울산시는 이 계획으로 “지역의 혁신역량을 제고하고 지방교육의 질적 향상 및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인구 8134세대 2만2000여명이 거주할 이 사업은 마치 함월산 자락을 동서로 썰어내 대규모 병풍을 세우는 일을 방불케 한다. 한국토지공사와 울산시가 발표한 ‘혁신도시 추진 현황’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혁신도시 테마와 함께 함월산 자락에 “도시국가 이미지인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개념을 도입해 랜드마크 형성”을 목표로 한다.

함월산은 울산의 주산으로 문수산, 무룡산과 함께 울산을 상징하는 성산에 해당한다. 울산 토박이들은 대대로 함월산에 조상의 묘를 쓰고, 봄이면 이 산에 위치한 백양사에 가서 쥐불놀이를 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름드리 노송들이 잘려 나가고 함월산의 맥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부터 당시 이 지역 출신 김태호 전 내무부장관의 진두지휘 아래 시작된 택지개발조성사업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2000년까지 산 정상 부위가 무려 37만평이 깎여 나갔고, 땅값이 치솟은 그 자리에 고급 빌라와 카페촌이 들어섰다. 울산에선 이곳을 두고 ‘울산의 베벌리힐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데 산자락에 또 다시 아크로폴리스를 흉내 낸 “도시국가풍의 랜드마크”가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울산의 도시 이름도 이에 맞춰 ‘LA-아테네 부설광역시’로 바꿔야 할 판이다. 이런 테마형 발상은 이미 삼산동 롯데백화점 놀이시설과 그 일대의 모텔·유흥가 풍경에 차고 넘친다.

혁신도시의 토지이용계획을 보면 의심쩍은 부분이 발견된다. 예컨대 공공청사가 들어설 혁신클러스터 용지의 구성비는 전체면적(279만7067㎡)의 14.7%를 차지하는데 반해 주택건설용지가 24.1%에 달한다. 울산시와 토지공사는 지형적 특성을 살려 지구 중심을 따라 7㎞에 달하는 긴 띠 모양의 녹색 가로수길을 조성한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엔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산자락을 병풍처럼 에워싸게 될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울산지역의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혁신도시를 빌미삼아 또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상이다. 해결책은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해 아파트 투기를 다시 부채질하는 방법밖에 없단다.

#‘당신’ 보다 먼저 ‘울산’을

설상가상으로 올해 말에 부산~울산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부산으로 울산지역 인구의 유출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울산의 일부 계층 중에는 부산 해운대 신도시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인구도 꽤 많이 있다. 앞으로 해운대까지 30분에 도달하는 새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울산의 정주성은 더 큰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내장재에 순금을 바른 3.3㎡당 4500만원짜리 초호화 아파트를 꿈꾸며 해운대로 빠져나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누군가는 울산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초초호화 아파트’를 짓자고 주장할지 모른다.

따라서 울산시는 건설회사와 유착해 아파트를 더 짓기 위한 구실로 혁신도시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 울산의 타고난 역사와 문화에 기초해 도시디자인을 총체적으로 새로 펼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울산에는 ‘당신을 위한 울산(Ulsan For You)’ 구호는 차고 넘쳐도 정작 ‘울산을 위한 도시디자인’의 지혜를 모은 청사진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태화강변의 경관을 바라보면 마치 서울의 한강변에 서있는 착각이 든다. 강변에 세워진 아파트와 주상복합의 모습이 마치 한강변 압구정과 용산을 한데 모아놓은 듯이 비쳐지기 때문이다. 만일 울산이 자신에게도 타고난 역사와 문화가 있다고 성찰했다면 경관이 이렇게 되었을까? 화이부동(和而不同). 울산의 도시 문화와 디자인의 빛깔은 다른 도시와 화합하면서도 같아지지 않을 때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지방자치의 목적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모색하는데 있지 않았던가.

〈김민수|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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