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등 조폭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어김없이 흥행에 성공하고, 과거 ‘모래시계’를 비롯해 최근의 ‘연인’ 등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폭은 아픔을 간직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조양은, 신창원 등 잘생긴(?) 조폭들이 매스컴에 노출되었을 때는 장래 희망이 조폭이라는 청소년들이 급증해 어른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여전히 조폭과 연관된 사건들이 매일 매스컴을 장식하지만 정작 ‘조폭’이란 단어의 정확한 정의도, 규모나 성격, 어떤 일들을 하며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정구원(책임연구원 조병인, 공동연구자 김지선·김지영·박경래)이 펴낸 `조직폭력범죄의 실태에 관한 조사 연구’는 지난 5년 간의 조폭 관련 사건, 공소장, 검찰 및 경찰 인터뷰, 현재 수감 중인 조폭들의 개별면접 등을 통해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한국 조폭들의 세계를 파헤친 심층연구자료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조폭 세계의 현 주소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역대 정부가 ‘조직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만큼 조직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해악이다. 하지만 정작 그 ‘조직폭력’이란 단어의 사전적 개념조차 잘 모르는 이가 많다. 형법 제261조에 따르면 조직폭력은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하는 행위’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국제조직범죄에 대한 국제연합협약’에서는 조직범죄 자체에 대한 개념정의는 하지 않았지만 조직범죄단체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금전적 이익이나 기타의 물질적 이익을 얻기 위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중대범죄 또는 이 협약에 의해 규제의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유기적으로 행동하며 일정기간 존속하는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체계적인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돈 있는 곳에 폭력이 있다”
연구원들은 요즘 폭력조직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란 점에서 여러 면에서 일반기업과 공통점을 지닌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합법적 방법으로 이득을 취득하지만 폭력조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취한다는 차이가 있으나 경제적 이익을 취득해 조직의 규모와 사업범위를 확장하고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속성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크다.
과거엔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완벽한 위계질서와 목숨을 바치는 `의리’로 상징되는 것이 조폭의 세계였으나 실상은 다르다. 오늘날의 폭력조직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업 수익을 올린다.
우선 오래 전부터 있어온 고전적인 갈취수법으로 매춘업소나 유흥업소가 밀집된 지역에서 업소 보호, 혹은 자릿세를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받는 유형이 있다. 갈취대상은 길거리 영세노점상부터 대규모 호화시설을 갖추고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요식업소까지 제한이 없다. 또 야간무대에서 공연을 하거나 진행을 담당하는 연예인의 출연교섭을 중개하고 사례금을 챙기는 유형, 여종업원(쇼걸, 댄서, 호스티스 등)을 소개하며 소개비를 챙기는 유형도 있다. 노사분규나 종교분쟁에도 개입해 폭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 이들은 폭력과 협박을 기본으로 대형유흥업소나 사우나 등을 직접 경영하며 연예인의 무료출연을 강요하거나 출연을 거부한 연예인에게 폭력을 가해 물의를 빚은 사례도 있다.
대도시일수록 조직규모 슬림화
또 자금압박을 겪는 기업에 사채를 알선하거나 긴급자금을 조달하면서 운영에 개입, 결국 관리권을 취득해 기업을 탈취하기도 한다. 부채를 갚지 않는 채무자를 납치, 폭행해 강제로 돈을 받아주거나 돈을 받고 철거에 저항하는 재개발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하고 돈만 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조폭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고 어느 지역에서 가장 많이 활동할까. 형사정책연구원 연구팀들은 대검찰청 조직폭력 현황자료, 2001~2005년 사이의 조직폭력배가 관련되어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총 1664건), 관할지역 내 관리대상이 되고 있는 폭력조직의 동행관찰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총 35개 교도소에 수감된 655명의 기결수의 면접·설문 조사 등을 바탕으로 한국 조폭지도를 완성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폭들은 20대가 가장 많고 30~40대 순으로 나타났다. 20대 행동대원, 30대 행동대장, 40대 두목급 지위로 승진(?)하며 가정환경에 문제가 많은 청소년들이 수시로 가입해 20대가 가장 많은 것이다.
조사대상의 학력은 고졸이 44%로 가장 많고 중졸과 초졸의 비율은 44.12% 내외였다. 또 이들의 재학 중 불량서클 가입비율이 60% 이상으로 나타났고 성장과정과 관련해 고교졸업 시점까지 친부모와 생활을 한 경우는 57%였다.
폭력조직의 활동지역을 시와 도의 광역행정구역별로 볼 때 부산광역시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폭력조직이 39.6%(91개 조직)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서울 16.6%(62개 조직), 경기도 10.8%(38개 조직), 전라남도 5.7%(21개 조직), 경상남도 5.3%(19개 조직)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폭력조직 10개에 1개 조직꼴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셈이다. 한편 조직폭력사범에 대한 조사를 통해 본 결과로는 서울과 경기, 경북 지역에서 폭력조직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 55개 검찰청을 대상으로 한 관할지역 내 폭력조직 현황보고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총 383개파의 폭력조직이 있으며 조직원 총수는 1만2056명으로 나타났다. 계파 수와 조직원 수의 순위를 보면 서울지역은 계파 수에 비해 조직원 수가 적고 광주 지역은 계파 수에 비해 조직원 수가 많아 조직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균 조직원 수는 31.5명이다.
두목 직업도 다양, 돈 계산 철저
지역별로 활동성이 강한 폭력조직의 분포를 보면 맹활약(?)하는 폭력조직 중 33개파(37.9%)가 서울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음은 부산, 인천순이었다. 한편 대전, 울산, 충북, 경남, 강원 지역은 폭력조직이 활동은 하고 있으나 활동성이 강한 폭력조직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경우에는 계파의 70% 이상이 조직원 수가 20명 이하인 소규모 조직이 특징이다. ‘조폭과의 전쟁’ 선포 후 조폭을 전담하는 수사기관이 강력하게 감시하는데다 대부분 합법적 사업가로 변신했기 때무에 과거처럼 대규모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조직들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찾고 있기 때문에 ‘슬림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연구원들은 분석한다.
조직을 이끄는 ‘두목’의 직업을 살펴보면 ‘5인 이상 고용 기업체 경영주’라고 응답한 사람이 34.3%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5인 이상 고용 유흥업소 주인’이라는 응답이 26.7%였다. 또 음식점 숙박업소의 주인, 부동산 중개인, 소도매 상인 순으로 이어졌는데 부동산중개인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늘어난 것은 최근 폭력조직이 건축·건설 등의 분야로 진출이 활발해진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두목의 나이는 40대가 대부분이지만 50대 이후에도 두목이 아니라 ‘실세’인 총두목으로 올라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하거나 과거의 명성으로 외부에 세를 과시하거나 압력을 넣는 경우도 많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두목이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부하들에게 돈다발을 던져주거나 대신 감옥에 들어간 부하들의 가족까지 책임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조폭들의 증언에 따르면 ‘돈 계산은 철저히 하는 것’이 요즘 조폭들의 특징이다. 두목이 월급처럼 돈을 나눠주는 경우도 없고, 조직원 간에도 돈 계산은 철저해서 가게를 물려줄 때도 ‘사업해보라’고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업소에 걸린 보증금은 다 갚아야 한단다. 의리로 똘똘 뭉친 게 아니라 경제적 실리를 원칙으로 결성되며 수당 등은 철저히 개인의 능력에 따라 배분된다. 두목이 “이제 네가 맡으라”며 조직과 사업체를 유산처럼 물려주거나 두목을 대신해 목숨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것이 수감되어 면접에 응한 진짜 조폭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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