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시간

올해도 여름 고교 야구가 열려서 가끔 TV로 보고 있었다. 

방금 결승전이 열렸는데, 도쿄와 교토가 맞붙어 교토가 이겼다.

문득 고시엔 구장의 흙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승 학교는 흙을 가져가는 걸까?

진 팀은 이번 대회에서 고시엔에 다시 올 일이 없기 때문에

패배 시점에 흙을 가져가는 것이 흔하다.

대체로 흙 모으기는 패배와 세트로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결승전은 이겨도 이후 시합이 없어서

이긴 팀도 흙을 가져갈 기회가 이때밖에 없다.

졌든 이겼든 기념으로 흙은 갖고 싶을 텐데

승리의 기쁨과 함께 흙을 모으는 장면은

별로 본 기억이 없다.

패자는 경기마다 한 학교씩 있지만

우승 학교는 그 대회마다 한 학교밖에 없어서

단순히 희소하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흙을 모으는 장면을 꼭 TV 중계에서 보여주는 것도 아닐 테고.

우승하면 상장이나 기념품 같은 것을 받을 테니

흙은 뭐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 심리는 우승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갖고 싶냐 아니냐로 따지면 갖고 싶지 않을까?

우승했지만 흙이 갖고 싶다고 생각하며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는데

감독이 "우승했으니 흙은 괜찮잖아"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때는 "그것도 그렇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냉정히 생각해보니 흙을 가져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운동화에 묻은 흙을 이쑤시개로 파내어 수거하고

그걸로 만족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교가를 부르고 시상식을 한 후에 기념사진을 찍는 등의

어느 시점에 흙을 가져갈 시간도 마련해 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중계는 이미 끝나 있었다.

내년에 만약 기억난다면 주목해 봐야겠다.

8/23/2024 공지 ,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