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종사는 아랫것들이나 하는 일”
상류층을 형성하는 영국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업으로 하던 기사, 즉 무인(武人)이고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토가 부의 기반이 되는 지주(地主)다. 이들에게 있어 정상적이고 가장 고상한 생업은 봉토를 농노를 이용해 경작해 수입을 얻든가, 소작농에게 땅을 빌려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혹은 대도시에서 자신의 것이거나 왕에게서 빌린 땅에 건물을 지어 그 세를 받아 먹는 것이 최고의 생업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존경받지 못하는 이 직업관이 아직도 영국 상류층을 지배한다. 그들에게는 고급의 전문직이건 아니건 직장에 얽매여서 생업에 종사하거나 무엇을 만들거나 혹은 판매해서 먹고사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중산층이나 하류층이 하는 일이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영국을 이끌고 있는 것은 상류층의 자제들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오른 중산층의 자녀들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흔드는 동안 상류층은 시골에서 취미로 양이나 키우고 농사나 지으면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 투자나 하며 부유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굳이 밤을 새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매달리는 것은 영국 상류층이 할 일이 아니다.
귀족은 태어날 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전통이 없는 한국 상류사회의 구성원들은 영국 기준으로는 영원한 중산층이다. 판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전문직종을 비롯해 당대에 부를 이룬 자수성가형 부호,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인 고위 공무원, 바람 한번 잘 일으켜 선출된 정치인, 그리고 세상을 쥐었다 놨다 하는 유명 사회문화 지도층 모두가 영국 사회 기준으로 보면 중산층에 불과하다.
당대의 성취로는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상류층은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영국 귀족은 피가 푸르다고 해서 블루 블러드(blue blood)라 하기도 하고 태어날 때 은수저(silver spoon)를 물고 태어난다고 이르기도 한다.
영국에는 “젠틀맨을 만드는 데 삼대가 걸린다”는 말이 있다. 돈 많은 하류층 부모가 자식이 모든 것을 갖추도록 키워도 그 자식은 결코 신분 상승이 되지 않고, 손자대에 가서야 비로소 그 비원(悲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분 상승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고 계급 사이의 간격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 사회를 바꿔 놓아 전 세계에서 존경을 받았던 대처도 총리를 그만두고 상당한 기간이 흐른 뒤에야 고급 사교클럽의 멤버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계급의 벽을 뛰어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왕족과 귀족 이외의 상류층 멤버는 누구인가. 오래된 고위 성직자 가문, 시작은 평민 출신이었으나 여러 대에 걸쳐 고위직을 배출한 정치인 가문, 오래된 지식인 가문을 예로 들 수 있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앞의 예에서 등장하는 ‘오래된’ ‘여러 대’라는 말을 이미 주목했을 것이다. 상류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예로 들어 보자. 중간 정도의 재산을 가진 층이라는 경제적 의미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 아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류층 말을 쓰거나 교육 수준이 낮거나 교양이 모자라면 결코 중산층에 낄 수 없다. 돈, 교육, 교양, 언어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도덕성, 예의에서 모자라면 이 또한 중산층의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중산층으로 살아가기는 상류층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시간과 돈이 풍부한 상류층과는 달리 모든 것이 여유롭지 못하다. 반면에 중산층은 하류층처럼 내키는 대로 살 수도 없다. 자식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교양 있는 행동도 해야 하고 문화 수준에 맞는 활동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도 하류층과는 달리 봉사와 자선을 해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영국 중산층들도 수입과 시간을 십일조 하는 식으로 각종 자선과 봉사를 해야 한다. 그런 것들 중 한두 개만 소홀히 해도 바로 신분 하락의 모욕을 당하게 된다. 영국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 살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영국 하류층의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 결여다.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신분 유지 혹은 상승에 대한 욕구나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한 역동적인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영국은 사회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 주어진 틀 안에 안존하는 체념과 패배주의로 점철된 사회다.
솔직히 말해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영국인에게는 우리처럼 금방 신분 유지가 가능하지 않게 되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초조감이나, 잘된 이웃을 볼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고통은 크게 없는 것 같다. 비슷한 동네에서 태어나 함께 교육 받은 같은 여건의 친구가 장가를 잘 가서, 혹은 부동산 투기를 잘해서, 아니면 줄을 잘 서서 졸지에 출세를 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하류층은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어도 종전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그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 여기선 돈이 있다고 신분이 상승되는 것도 아니고 부촌으로 옮겨 간다고 당장 그 부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낯선 곳에서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는 영국인은 아무리 돈이 많이 생겨도 잘 이사하지 않는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계급을 떠나 신분 상승을 해 봐야 그것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 의식도 없고 아메리칸 드림도 없다. 그냥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기본 교육만 받고 고만고만한 배우자와 결혼해 지방 기업에서 만만한 직업을 가지고 같이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살다가 자식 낳고 어쩌고 저쩌고 사는 것이 하류층의 꿈이다. 단조롭고 무료한 삶 같아도 이것이 영국인들이 가장 꿈꾸는 ‘예측이 가능한, 그리고 안정된 삶(predictable and secured life)’이다.
영국인은 믿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지도층 일부이면 족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바로 그것이 이들이 얘기하는 체제 안의 계급에 충실한 삶이라는 것이다.
씨발 존나 미개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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