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그거줘 하는 할아버지들 화나지? 한 번만 읽어줘라

담배 그거줘 하는 할아버지들 화나지? 한 번만 읽어줘라앱에서 작성

ㅇㅇ

2022.11.10 23:25:51

조회 49 추천 1 댓글 0

내겐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애연가시다. 이틀에 한 갑 정도는 꼭 태우시거든.

담배 중에서도 디스플러스를 좋아하셔서 그것만 피시는데, 그런 할아버지께서는 작년 말 쯤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초기 정도였던 치매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고, 이제는 친자식도 잘 못 알아보실 정도로 병세가 깊어지셨다. 제대로 된 문장도 구사하기 힘들어하신다. 전쟁도 겪으셔서, 가끔은 빨갱이들이 집으로 쳐들어온다는 환청을 들으시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담배를 다 피셔서 산다고 나가시는 걸 내가 대신 간다고 했고, 무슨 담배 사다드리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을 잘 못 하시더라. 하얀색, 영어.. 그렇게 몇 번을 더 되묻고, '고래'라는 말을 듣고서야 디스플러스인 줄 알았다.

그렇게 편의점으로 가는데, 눈물이 나오더라.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며 만났던, 답답하고 짜증나 진상이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욕했던 할아버지들이 떠올라서. 그 모습이 순간 우리 할아버지와 똑같아서. 우리 할아버지도 나 없을 때 그러지 않으셨을까 해서.

반 말 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할아버지들을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겪어봤고, 충분히 화날만한 것들이거든.

그냥,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해서 써본다. 너희에게 피해를 주려고 그러는 것보단 안 그런 게 더 많을 거니까.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께서도 겪으실 수 있는 일이니까.

잠 잘 자고, 하려는 일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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