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던전앤파이터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던전앤파이터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싱글벙글 키 185cm 에 리치 198cm 비율 체감 ㅇㅇ
- 궁금한 이야기 Y 구제역 쯔양 협박사건 요약.jpg 감돌
- 싱글벙글 엄마가 스트레스 줘서 문자보낸 수험생 ㅇㅇ
- <밀림의 왕 레오> 89년판 더빙 비디오 발굴 (빙산 5층) 비디오변환
- 썰 1화 YONGGG
- 타갤펌)웹툰계 현실 한만붕이
- '출생통보제' 첫 날, 신생아 61명 정보 전달 .jpg 00000
- '한남일녀' 연애프로그램 생겨서 난리난 여초 ...ㅗㅜㅑ ㅇㅇ
- 이영호의 중국인 여자친구....JPG 주갤러
- 핸드폰으로 찍은 야한 영상이 유출된 에타녀들 ㅇㅇ
- 싱글벙글 스님들이 군대가서 고기반찬을 만나면 에지오아디토레
- '변우석 영상' 다 사라지고 tvN 드라마·티빙해킹 ㅇㅇ
- Y대 에타 포르노 검열 토론 ㅇㅇ
- 공동명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 부부.jpg 태아령
- 2024 피츠버그 전반기 결산 (타자편) 중요할때잘해요
밀양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받는 박정호입니다.
밀양 성폭행 가해자로 불리는 박정호 입니다.저의 진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1. 저에 대한 처분사유는 2004년 5월 3일 영남루 사건에 포함된 혐의이고, 그 외에는 다른 혐의가 없습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자료를 보면 2004년 5월 3일 영남루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제 이름은 없습니다. 저는 이 자료가 누구것인지는 모릅니다. 2. 저는 경남도민체전 참가로 인해 2004년 5월 2일부터 4일까지 김해에 있었습니다.1차 글에는 5월 3일부터 5일이라고 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5월 2일부터 4일까지 였습니다 댓글에서 선수로 출전한 걸 증명해줄 사람 없냐고 해서 저와 함께 참가했던 많은 학생 선수,코치님을찾았고 저와 2박 3일 동안 같이 있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5월 2일부터 4일까지 김해시에만 있었다는 진술과 녹취는 모두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유튜버와 댓글러들의 공격으로 신변보장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선뜻 나서서 신분을 밝히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분은 안계셨습니다. 믿을 만한 방송국이나 기관에서 연락이 오면 모든 자료 제공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난 이후에 테니스,정구,롤러 종목이 비로 순연되었다는 신문기사에 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찾은 신문기사입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조금 순연됐지만 도민체전은 진행됐다는 기사입니다. 3일자 기사에는 3개 종목이 순연되어18개 종목이 진행되었다고 나와있고 4일자 기사에는 3일에 21개 종목이 진행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경기시간이 조금 늦어진다고 제가 그 사이에 밀양에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경기일정표도 있고 김해시 선수가 묵는 숙소현황도 나와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테니스 대회에 어떻게 나갔냐는 댓글도 달렸습니다.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것 맞습니다. 아버지는 2002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하셔서 저는 교동에서 누나, 매형과 함께 거주했습니다. 제가 테니스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 당시 밀양에 있는 고등학교에 테니스부가 없었습니다.당시 학교 체육부장 선생님이 운동신경이 좋은 학생들을 선발했고, 저와 친구가 테니스 선수로 추천되어 출전했던겁니다. 학교 친구 아버지의 테니스채를 빌려 코치님한테 3일 정도 강습을 받고 시합에 나갔습니다.도민체육대회는 엄청난 선수들만 출전하는 그런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5월 2일 밀양에서 단체버스를 타고 김해로 이동했습니다. 버스 타기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모두 단체복을 나누어 주어서 단체복을 받고 버스에 탔습니다. 김해 시내에 있는 숙소에 배정 되었고 그방은 온돌방 이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그때 테니스부, 다른종목, 다른 학교 대표 선수들 5명 정도 함께 방을 사용 했습니다. 저는 5월 3일에 친구와 함께 복식으로 테니스 대회에 나갔지만, 잘하지는 못했고, 입상하지 못했습니다.3일 저녁에는 숙소 근처 식당에서 모두 함께 삼겹살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5월 4일에는 다른 종목 시합이 있어서 벤치에 앉아 시합을 보면서 응원했습니다. 저는 동료선수들과 함께 5월 4일에 밀양으로 돌아왔습니다. 3. 제가 검찰 조사 받을 때 5월에 도민체전에 테니스 대표로 나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학교 체육선생님이나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물어만 보더라도 바로 확인되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체포되고 조사받은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저는 몇몇의 친구와 함께 피해자들을 만나서 한 두 번 본 적은 있지만 그때 얘기하고 놀았던것만 기억나고, 언제 어디서 놀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제가 피해자에게 성폭행 성추행 폭언 폭행 강간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찰 조사받기 전까지는 피해자에게 집단 강간,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2004년 12월 6일 저녁 7시쯤에 친구집에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연락이 와서 집 앞에서 잠시 만나자고 했고, 그때 같이 나가보니 형사와 친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밀양 공설운동장에서 친구들 모두 버스를 타고 울산 남부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때 피해자를 만나 본 학생들을 전부 모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자들이 모두 와 있었고, 저는 경찰서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경찰 조사 받을 때만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조사를 받을 때, 경찰한테 쌍욕도 많이 듣고 뺨도 많이 맞았습니다.왜 맞았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때 제가 정말 벌벌 떨 정도로 무섭고 힘들었던 것만 기억납니다. 2004년 12월 6일 제가 집에 가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아서 큰누나가 집에서 계속 저를 기다렸고, 12월 7일 아침에 누나가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누나가 엄마에게 연락을 해 울산 남부경찰서로 가라고 했고, 그때 엄마가 울산 남부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은 엄마에게 저에게 혐의가 없다고 얘기하여, 당시 엄마와 누나는 제가 경찰 참고조사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은 엄마에게 저에대해 조사를 더 해야하니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얘기하였고 엄마는 조금 진정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은 조사를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과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으로 나누었는데, 저는 처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조사했던 경찰이 아닌 다른 경찰이 갑자기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 중 한명을 불러내 집으로 돌아가는 부류에 넣고 저를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 부류에 넣었고, 이걸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 부류에 넣었습니다. 그 경찰이 왜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4. 그 이후 1호 3호 처분을 받았습니다.법원 재판 같은 걸 받았고, 그때 1호 3호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왜 처분을 받는지, 1호와 3호 처분이 무엇인지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주변 어른들은 여론이 좋지 않다.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래야 빨리 끝난다고만 얘기를 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무섭고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밀양 성폭행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억울했지만, 저에게도 이 사건은 기억하기도 싫은 아픈 과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사람들은 진실에 집중하기보다는 44명이라는 숫자에 집중했기 때문에 저의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받은 판결문은 없습니다. 검찰이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장에게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한 서류만 있습니다.저는 이번 일로 제 사건을 확인했는데 거기에 1호 3호 처분이 적혀 있고, 위에서 보여드린 저에 대한 처분 사유가 적혀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벗어나려고 했던 제 과거에 대해 진실 밝히기를 해야 하는데, 처분사유를 확인하는 순간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해명하는게 막막하고 이미 20년이 지나버린 지금 제가 뭘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버들의 근거 없는 루머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더 막막합니다. 유튜버들은 제가 처분을 받은 사실만 공개하면서 저를 비난할 뿐이고, 제가 어떤 사유로 처분을 받았는지는 공개하거나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저에 대하여 얘기해 줄 수 있는 증인들이 있지만 본인들이 지켜야 할 가정이 있어, 막무가내로 비난을 받는게 두렵다고 합니다. 신변보호가 되는 정식절차를 통해서는 증언을 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5. 그 당시 가정형편상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저희 집은 밀양에서 카센터를 운영했는데 97년도에 IMF로 부도가 났고, 아버지는 98년도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병원생활로 저희 집의 형편은 더 안좋아졌고,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2년 7월에 돌아가셨습니다.그 이후에 어머니는 재가를 하셨고, 저는 이 사건 당시 누나 매형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밀양에 변호사도 한 두명 정도 밖에 없었고, 아는 변호사도 없었습니다.그때는 지금이랑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국선변호사 국선보조인을 둬야 한다고 하는데 이건 2007년도에 생긴 겁니다. 저때는 그런게 없었습니다. 정말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에 대한 혐의가 뭔지 친구들에 대한 혐의가 뭔지도 구체적으로 잘 몰랐습니다. 6. 그런데 최근 유튜버를 통해 신상이 공개되고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튜버가 가족들 신상 공개하겠다고 하면서 메일로 연락하라고 해서 연락달라고 해서 메일보낸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영상 공개사죄문을 보내달라 안보내면 누나들을 공개하겠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에는 누나들 전화번호와 가게가 나와 있었고 누나들의 사진에는 조카들의 운동회 사진과 졸업식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하지도 않은 일로 공개사죄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그랬더니 이렇게 저와 저희 가족들을 조롱하고 협박하는 메일을 다시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7. 저 포함 가족들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SNS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쌍욕이 적힌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저와 가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해촉처리 되었고 누나들은 가게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너무 가난하고 무지해서 보호처분 받고 이의를 안한 게,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애써 잊고 살려고 노력한게, 이렇게까지 저와 가족들을 힘들게 할지는 몰랐습니다. 댓글에서는 왜 재심청구 안하냐고 합니다. 재심청구 알아봤습니다. 소년보호사건은 재심청구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재심청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8. 지금까지 억울해도 참고 있었지만 진실을 밝히려고, 이렇게 다시 긴 글을 썼습니다. 언론이나 검증된 기관을 통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9. 위에 적은 내용과 첨부한 자료들은 절대 위조나 거짓 없음을 맹세합니다. 저희 이 억울함을 단 한분이라도 진심으로 들여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작성자 : 박정호입니다.고정닉
외사촌 현직 검사가 글 쓴 '임성근 구명' 수상한 카페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40487?sid=102 [단독] 외사촌 현직 검사가 글 쓴 '임성근 구명' 수상한 카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성격의 인터넷 카페 '채상병사건원인규명카페' 모습. <오마이뉴스>가 박철완 광주고검 검사(임 전 사단장의 외사촌동생)와 이 카페의 연관성에 대해 취재가 들어간 직후 이 카페는n.news.naver.com- [JTBC] 20살 해병대원의 죽음으로부터 1년…진상규명은 제자리오늘(19일)은 채 상병 순직 1주기입니다. 입대한 지 넉 달도 채 안 됐던 스무 살의 앳된 해병은 구명조끼도 없이 급류 속 수색 작업에 동원됐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책임이 어딨는지는 1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사 외압 의혹에 구명 로비 의혹까지, 의혹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공수처의 수사가 이어졌고 오늘은 국회에서 관련 청문회도 두 번째로 열렸지만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2023년 7월 19일, 경북 내성천에서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들이 급류에 휩쓸렸습니다.입대한 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20살의 채 상병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해병대원들은 구명 조끼 하나 없이 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부대 최고 지휘관인 임성근 1사단장을 비롯해 8명을 경찰에 이첩하려 했습니다.그런데 국방부는 돌연 이첩 보류를 지시하며 사건을 회수했고, 수사 책임자인 박정훈 대령은 '항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는 이른바 'VIP 격노설'이 터져 나오면서 수사 외압 의혹은 국방부를 넘어 대통령실로 번졌습니다.외압 의혹의 핵심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호주대사에 임명됐다 25일 만에 사임했습니다.공수처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녹음 파일과 통화 내역, 그리고 짙어져 가는 의혹들.1주기를 앞두고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에서 임성근 1사단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채 상병 특검법은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두 차례 통과했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402362채 상병이 복무했던 해병1사단에서는 오늘(19일) 추모식이 거행됐습니다. 늠름했던 채상병은 차가운 흉상이 돼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서울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오늘 하루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수색 임무 중 순직한 채 상병이 1년 만에 부대로 돌아왔습니다.늠름했던 표정은 차가운 청동 흉상 속에 새겨졌습니다.흉상 앞에 선 전우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경례를 합니다.입대 4개월이 채 안 됐던 채 상병은 1년 전 경북 내성천 수색 작전에 투입됐습니다.구명조끼도 없이 물살이 가장 거센지점에서 수색을 진행했습니다.다섯 명의 병사가 급류에 휩쓸렸고 채상병만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채 상병의 1주기 추모식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주관했습니다.김 사령관은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입니다.김 사령관은 추모식에서 "더 이상 소중한 생명과 전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해병대 측은 '유족의 뜻'이라며 추모식을 비공개로 진행했습니다.지난 17일부터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폭우와 무더위가 반복되는 날씨 속에도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오늘(19일) 저녁 광화문에선 채상병 1주기 추모 촛불 문화제도 열릴 예정입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402363채 상병이 순직한 경북 예천 주민들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백발의 노인들은 우리 때문에 손자 같은 젊은이를 잃었다며 채상병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토사가 밀려 내려왔던 흔적은 아직 남았습니다.1년 전, 산은 무너져 흘러내렸습니다.이 지역에서 15명이 숨졌고 2명은 아직 실종 상태입니다.덤덤해지기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아직 비가 오면 떨립니다.그만큼 공포는 강하게 몸에 남았습니다.아름답기로 소문났던 이 모래톱 강, 오래 마을 사람들 자랑거리였습니다.채 상병이 실종자를 수색하던 바로 그 곳입니다.이제 주민들은 이 강 보는 게 죄스럽습니다.우리 때문에 손자 같은 젊은이를 잃었구나,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누구 책임인지라도 밝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여든, 아흔 나이 노인들은 위패 앞에 고개 숙입니다.떠나간 주민 17명과 21살 군인을 위해서입니다.그리고 더 희생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아파도 삶은 계속됩니다.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402364- [SBS] 수중 수색한 그날 내성천…"수변도 움푹움푹"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173700?sid=102 수중 수색한 그날 내성천…"수변도 움푹움푹"오늘(19일)은 실종자를 수색하던 채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1년째 되는 날입니다. 당시 수색 직전에, 내성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저희가 확보했는데 당시 현장 지휘관들이 이 사진을 상부에 보고하면서 위험하다고n.news.naver.com<앵커>오늘(19일)은 실종자를 수색하던 채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지 1년째 되는 날입니다. 당시 수색 직전에, 내성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저희가 확보했는데 당시 현장 지휘관들이 이 사진을 상부에 보고하면서 위험하다고 했지만 작전이 강행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어떤 일이 있었는지 1년 전 그날을 편광현 기자가 재구성 해봤습니다.<기자>하천 일대에 안개가 자욱하고, 물살이 거세게 흐릅니다.하천변 수풀들은 물살에 휩쓸려 쓰러졌고, 물이 넘친 수변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습니다.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이 수색 현장에 도착해 촬영한 지난해 7월 18일 새벽 6시 무렵의 내성천 모습입니다.포병 7대대장은 이 사진을 선임대대장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사진을 받은 포병11대대장은 수색 작전을 총괄하던 7여단장에게 사진들을 재차 전송했는데, "바둑판식 수색을 하라"는 임성근 당시 1사단장의 전파 사항이 내려왔습니다.출동 날 아침 포병 간부들은 "속옷만 챙겨라", "전쟁이 난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긴박하게 출동했습니다.병사들은 로프 같은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수색에 투입됐습니다.수색 이틀째, 채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습니다.경찰은 지난 8일에야 채 해병 입수의 직접 원인은 임 전 사단장이 아닌 포병 대대장들의 지시였다고 결론 냈습니다.위험하다는 보고를 포함해 현장과 직접 소통한 7여단장은 함께 검찰에 송치했지만, 임 전 사단장의 혐의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검찰 수사도 같은 결론일지, 채 해병 사망 사건의 책임 규명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작성자 : 희망22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