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참전한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을 막아서서 전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1600년 일본에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나자 이시다 미츠나라의 서군 측에 서서 고작 15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동군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상대로 싸우게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의 승리였고, 시마즈는 궁지에빠진 쥐 신세처럼 되었다. 포위한 동군의 병력은 자신의 10배를 넘는 절망적인 상황.
당시 시마즈 요시히로의 군대는 이대로 항복하거나 도망치면 잡혀서 죽고, 싸워도 죽을 운명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기력하게 포기하면 자기 가족과 고향도 박살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적진을 돌파해서 이세로(路)를 통해 퇴각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명 "적진으로의 퇴각"
이 때 시마즈 요시히로의 군대가 쓴 전술이 바로 시마즈 가문 고유의 진법 '스테가마리'(捨て奸)였다.
본진이 도주하는 동안 수 명의 팀으로 나눈 저격수가 후미에 남아 추격해오는 적 부대의 지휘관을 저격하고, 저격 후에는 총을 버리고 적진에 뛰어들어 시간을 버는 진법이며, 이를 무한반복 했다.
당연히 참가자는 100% 죽는 말도 안 되는 전법이었는데, 동군은 이판사판으로 덤벼드는 시마즈 군에게 기가 질렸으며. 이이 나오마사 등 주요 지휘관들도 당해버리자 결국 시마즈 군을 막아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퇴로상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진지에 있어서 자칫 도쿠가와도 죽을 판이었다.
이 후퇴전으로 약 1500명의 시마즈 군 중 80명만 살아남았으나 오사카 성에 갇힌 포로까지 풀어주는 등 전설적인 업적을 세우게 된다. 질려버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시마즈 가문을 도자마 다이묘로 놔둬버리고 영지를 그대로 인정해준다.
후퇴 시 보여준 처절한 무용과 광(狂)적인 모습 때문인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벌인 집요한 숙청과 개역의 마수로부터 시마즈 가문은 온전히 세력을 보존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시마즈 가문은 시간이 흘러 자기들 손으로 직접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의 선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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