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에서 시작해 양주, 도봉산, 그리고 서울과 부천, 인천, 수원, 천안 등을 잇는 이 노선의 이름은 다들 알다 싶이 1호선이다.
온갖 빌런들을 다 볼수 있다는 그 노선이 맞다. ㅇㅇ 이 노선이 청량리 ~ 서울역 구간 개업의 시작으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지하철 시대를 열었고 오늘 기준으로 50주년이 된 노선중 하나다.
사실 서울 지하철은 한국이 광복되기 이전 일제 강점기 부터 계획이 있었다.
당시 계획을 살펴보면 1930년대에 동대문에서 성동역 (현 서울 1호선 제기동역 인근) 까지 지하철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착공을 하려고 했으나
이때 당시 일본 제국 새끼들이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제 2차 세계대전때 온갖걸 다 긴빠이 쳐서 이때 지하철은 샆도 뜨지 못했었다. 이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 정부를 수립 하였으나 부카니스탄의 왠 좆돼지새끼가 제대로 분탕을 친 바람에 국토가 초토화 되어버려 당시에는 지하철 계획은 꿈도 못꾸고 국토 복구가 제일 시급한 과제였음 그러나 이후에 1968년...
서울 전차가 없어졌다.
물론 전차가 없어졌으니 당시의 대중교통 수단은 어떤 것이었냐?
버스였음
그런데 서울의 인구는 늘어나면서 버스는 어떤 상황이되었다?
말 그대로 개지옥이 펼쳐졌던 것임 그래서 이때 서울의 버스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온게 지하철이라는 물건이 나왔었고 이때 부터 본격적인 지하철 계획이 수립되었음
근데 수립이 되었고 이제 삽을 뜨려면 뭐가 필요하나? 돈이 있어야겠지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각종 건설 사업 때문에 당시 서울시의 재정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었음 당시 한국의 기술수준을 보면 지하철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도 회의감도 있었고 당시 중앙정부 관료들은 지하철 건설을 하게 되면 서울에 인구 집중이 된다고 오히려 지하철 건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었음
그러다가 1970년대 서울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가 나버린 상황에서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물러나고 철도청장 출신인 양택식 시장이 부임 했음
이 당시 양 시장의 의견은 무엇이냐? 철도와 지하철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서울의 대중교통난을 해소하려면 지하철을 건설을 해야한다고 끝까지 밀어 붙였음
그런데도 당시 정부 관료들은 '촌놈 쉐리가 알지도 못하고 건방지게..' 라고 말할 정도로 폭언을 쏟아 가면서 반대 했었음 오죽하면 당시에는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 망한다.' 라는 말도 남겼을 정도
그러나 당시 이후락 주일대사가 '지하철의 건설은 세계적인 추세다' 라고 당시 서울시장인 양 시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도 지하철 건설에 지지해줬음 이후 부터 1호선을 시작으로 2,3,4,5호선의 계획도 함께 나왔음
당시의 서울 지하철 계획은 이랬음
1호선은 우리가 아는 그 1호선이 맞고 당시에는 국철과 노선을 잇는 방식으로 건설 되었고
2호선은 순환선이 아닌 마포에서 왕십리로 관통하는 노선
3호선은 수유동에서 서울역을 거쳐 불광동으로
4호선은 포이동에서 안국동을 거쳐 다시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는 방식
5호선이 천호에서 1호선과 만나면서 서대문으로 빠지는 방식으로 계획 되었음
그러나 당시 한국은 지하철을 지을 돈이랑 운영 경험이 1도 없었음 그래서 당시 일본 OECF의 차관을 받으면서 일본 기술자들을 한국에 초청을 하고 계획, 공사, 운영에 대한 자문을 얻었다고 함 그래서 당시 일본에서는 신호, 통신 분야는 일본이 기술제공을 해주고 지하철 공사는 한국 기술진들이 하는 것으로 지었다고 함
그리고 1호선 보면 전구간이 좌측통행이고 2호선 부터는 우측통행인데 이렇게 된 이유가 당시 국철은 좌측통행으로 운행하고 있어 국철과의 직통을 연계해서 좌측통행으로 통행방식이 결정되었다고 함 전류는 다른데 당시 국철은 교류 25000V를 사용하고 있었고 지하철 건설할때도 이 전류를 사용하기 원했었다고 함, 그러나 당시 서울시에서는 교류 전력을 쓰면 전화선에 전류가 흘러들어서 통신장애가 난다는 이유로 직류 1500V를 밀어 붙였다고 함
그래서 나온 결론이 좌측통행에 직류 1500V 사용하기로
그래서 1호선타면 남영 ~ 서울역 구간과 회기 ~ 청량리 구간에 전력이 잠깐 안들어오는 구간이 있는데 전력공급방식을 변경하려고 일부러 전기가 나가는 것임
그래서 어지저찌 공사는 시작 했는데 의외로 공사하기 쉽지 않았다고 함
지금의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인근을 지나가는데 문화재 보호 때문에 숭례문과 흥인지문에서 멀리 통과 한다고
열차 운행을 할때 발생하는 진동 때문에 당시 문화재였던 흥인지문과 숭례문이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방진벽과 장대레일을 깔았다고함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가 건설기술력이 많이 부족해서 청계천과 정릉천을 지나갈때에는 당시의 가수로를 만들어서 하천 물길을 우회시키고 터널을 팠다고 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청 ~ 종각 구간 지나갈때 차가 느리게 가고 존나 시끄러운데
광화문역 5번출구에서 바로 나오면 일민미술관 (당시 동아일보 사옥)이 있는데 이 밑을 통과하려고 했었고 건물을 매입해서 철거하고 나서 공사하려고 했으나 그냥 거의 90도 가까이 되는 길을 만들었다고 함
그래서 1971년 4월에 시작했던 공사는 1974년 8월 15일에 완공된 서울 지하철 노선은 한국 최초의 노선 답게 성대하게 치뤄질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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