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증류소 투어를 시작하는 첫 날. 우리는 2일차에 쿨일라 비지터센터 - 아드나호 증류소 - 부나하벤 증류소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다. 첫 게시글에서 사진 상 섬 북동쪽에 위치해있어, 접근성이 가장 좋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고 버스 노선도 없으며 가장 길이 험한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기 자전거를 대여했고, 아침에 보모어 시내에 위치한 바이크 렌탈샵으로 이동했다.
렌탈샵 사장님이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고, 비도 조금씩 오기 시작해 조금은 짜증이 나려 했으나 사장님네 강아지가 세상 이쁘고 귀여워서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헬멧과 충전기, 그리고 충전과 사용 설명 간단히 들은 뒤 우리는 짐을 챙겨 섬의 북동쪽으로 향했다.
흔한 보모어 동네 배경이다. 가장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조용하다.
차가 오지 않을 때 천천히 달리며 찍어본 동영상. 어딜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잊지 못할 풍경이다.
스코틀랜드는 양이 정말 많다. 그래서 그런 지 양털로 만든 기념품도 상당히 많다. 어느 증류소를 방문하더라도 목도리는 항상 있다. 여자 친구가 뜨개질을 좋아하여 실을 부탁했지만, 여기는 실을 파는 곳은 아니고 방직을 하는 공장 겸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한국은 여름이지만 너무 추운 겨울을 대비해 목도리 두 개를 사서 나왔다. 같이 동행했던 동생은 귀여운 양 인형을 하나 샀다.
방직 공장에서 약 30분을 더 달려 공식적인 첫 일정의 첫 증류소 쿨일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나 언덕에 위치한 표지판과 다르게 자전거로 한참을 내려가 바닷가 바로 앞에 증류소가 위치해 있었다. 서둘러 건물 내 3층에 위치한 비지터 센터로 들어섰다.
비지터 센터를 들어가면 웰컴 드링크로 쿨일라 15년 cs, 그리고 라가불린 디스틸러리 에디션을 한 잔 씩 준다. 우리는 두 명이었기에, 한 잔 씩 나눠받아 서로 맛을 보았다. 비를 조금 맞아 꽤 쌀쌀했지만 금세 위스키 한 모금으로 몸을 데울 수 있었다.
쿨일라도 라가불린과 마찬가지로 디아지오 소속에 있는 그룹이라, 여기 저기서 디아지오 관련 굿즈들과 디아지오 소속 바틀들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자리 구석에 앉아 한 잔 씩 맛을 보고 있었는데, 한 남자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맛있냐고, 어디서 왔냐는 등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첫 증류소를 쿨일라를 선택했으며 웰컴 드링크로 마신 두 병이 상당히 맛있다고 극찬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며 한 보틀을 더 들고 왔다.
가져온 첫 바틀은 쿨일라 14년 four coners of scotland collection 이었다. 처음 보는 바틀이었고,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쿨일라를 처음 접하고 있어 모든 맛이 새로웠다. 특히 이번 14년 바틀은 흙맛이 신선하게 느껴지면서 53도 같지 않은 도수감과 함께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테이스팅 노트를 적지는 않았기에 간략한 느낌만 전달해 죄송할 뿐이다.
한 잔을 주고 어떠냐는 직원의 말에 엄지 척 들면서 정말 신기한 맛이라고, 그리고 쿨일라를 처음 접해보는데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맛있다고 하니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잠시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 들고 온 바틀. 쿨일라 13년 2024 feis ila 버전이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바틀이라고 마셔보라고 한 잔 씩 나누어 주었다.
마시자마자 입에 쫙 달라붙는 단맛과 함께 도수감이 크게 안느껴지는, 그리고 입에 풍성한 포도향이 가득 남으며 너무 맛있게 마셨다. 순간 눈이 돌아가 한 병을 사고 싶었으나, 계획했던 바틀들이 있었기에 포기했다. 물론 옆에 있는 동생도 첫 증류소부터 눈이 돌아가면 어떡하냐면서 나를 뜯어 말리기도 했었다. (한국 돌아와 보니 정말 아쉬운 바틀이었다. 가격은 기억 상으로 175 파운드였던 것 같다.)
다시 그 직원이 다가와 어떻냐는 질문에 너무 맛있어서 드라이버 드램을 한 잔 포장해 가겠다고 했었다. 그러니 활짝 웃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며 옆에 있는 바에 가 바이알을 담아 줄 준비를 하였다. 두 개를 가져갈 것이냐는 물음에, 나만 구매한다 했길래 아 그러냐면서, 네 개를 준비한 바이알에서 두 개에 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하나만 시켰다고 하니, 눈을 찡긋이며 '쉿' 하는 모습으로 넉넉히 바이알 두 개를 담아주었다. 동생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니, 한국에 남아 같이 못 온 위스키 친구들에게 맛 보여주라면서 내게 자신의 바이알까지 넘겼다.
그러고 난 뒤, 우리는 간단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증류기 앞에 있는 조그마한 벤치로 이동했다. 부나하벤을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는 마땅히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동생이 스페인에서 가져온 하몽과 치즈, 그리고 바게트로 점심용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라 섬이 보이는 쿨일라 내 벤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아마 내가 도시락을 먹으며 봤었던 경치 중 가장 예뻤지 않을까 싶다.
서둘러 우리는 페달을 밟아 부나하벤 가기 전 아드나호 증류소를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그런가 마침 아드나호 증류소는 휴무일이었다. 입구 어귀에서 잔디를 깎고 있는 한 직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2시 반에 예정된 웨어하우스 no.9 테이스팅 투어를 하러 부나하벤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달려 부나하벤 증류소에 약 1시 40분 경에 도착을 하였다. (현장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보정은 따로 하지 않으려 한다.)
자전거를 대고 비지터센터를 들어가 굿즈와 바틀을 구경했다. 참고로 부나하벤 시음은 거의 대부분 공짜이다. 추운 몸을 데우기 위해 들어가서 가방을 풀고 난 뒤 직원에게 한 잔을 부탁했으나, 테이스팅 코스를 예약한 사람들에게는 투어 전 시음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핸드필 제품을 시음하려 했으나, 핸드필 제품들이 테이스팅 코스에 그대로 껴있어서 그런 것 같다. (향후 브룩라디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시음을 미리 제공하지 않았는데 투어 전 취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시간을 기다리며 굿즈 구경을 하고 나는 미니잔과 잠옷으로 입을 부나하벤 티셔츠, 그리고 친동생 선물 용으로 부나하벤 검은 목도리를 구매했다.
대망의 웨어하우스 입장. 총 네 잔을 시음할 예정이고 한국에서 온 우리 둘과 런던에서 온 부부, 총 네 명만이 시음에 참여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고 천천히, 그리고 질문들이 오가며 시음을 했다.
아무래도 참여 인원이 적고 자전거를 타고 왔는 지라 피곤해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함께 참여한 부부가 완전한 브리티시 잉글리시였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를 위해 천천히 이야기를 해주며 말 속도가 괜찮냐고 중간에 물어보는 센스까지 보여주셨다. (괜찮다고 하니 그럼 더 빨리 설명하겠다며 농담도 쳐 주시며 분위기 전환을 해주시더라.)
총 네 잔을 받았으니 첫 번째 잔은 찍지 못했다. 시음 목록은 총 네 가지였다.
1. 2007 muscat finish, 53.7%
2. 2014 canasta, 58.4%
3. 2011 moine cognac, 55.9%
4. 2013 moine bordeaux, 57.9%
참고로, moine는 부나하벤에서 사용하는 피트 처리 제품을 뜻한다.
뻔하지 않은 캐스크들을 맛볼 수 있는 경험이다. 그나마 들어본 캐스크가 꼬냑 캐스크였는데, 뭔가 킬커란 헤빌리 피티드 같은 맛이 났다. (시음기를 생활화 합시다... 정말 죄송합니다..) 와인 캐스크 피니시는 호불호가 많이 갈렸지만, 뭔가 다들 독특하고 꽤나 신선한 맛이 나 모두가 맛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조절을 하며 마시기 위해 바이알을 하나 달라고 했지만, 다 담아줄테니 준 거 다 마시라는 가이드 아저씨의 말에 빠르게 들이켜 나왔다.
같이 동행한 동생은 3번 꼬냑 캐스크를 가장 최고로 뽑았고, 나도 피트 애호가라 3번이 맛있었지만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맛보여주기 위해 나는 4번 핸드필 제품을 구매했다. (나중에 시음기 올릴게요!)
테이스팅 투어 코스가 마무리 되고 나서 우리는 다시 비지터 센터로 돌아와 그 동안 궁금했던 위스키들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투어에서 준 코피타 잔, 그리고 테이스팅 투어에서 나눠 담아준 바이알, 그리고 네 잔 모두 무료이다. 받아 마셨던 네 잔은 부나하벤 12 cs, 핸드필 럼캐스크 피티시, 아몬티야도 피니시, 올로로소 1996 피니시 였다. 이 모든게 다시 한 번 놀랍게도 무료. (기억 상으로 아몬티야도는 300 파운드, 올로로소는 400 파운드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받은 위스키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셨다. 멀리 보이는 주라 섬과 함께 맛있는 술을 마시니 매우 기분 좋게, 그리고 평화로웠다.
마신 잔들 중에서 동생은 원래부터 가장 좋아하는 캐스크인 아몬티야도를 베스트로 꼽았고, 나는 올로로소 1996을 꼽았다. 둘 다 피트를 좋아하고 모든 위스키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매번 세세하게 디테일이 다른 것이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다. 이래서 함께 오는 사람 입맛도 서로 다르면 그 만큼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증류소가 문을 닫을 무렵인 5시까지 천천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중간 중간에 자주 쉬면서, 그리고 최대한 안전하게 숙소로 복귀해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하루종일 자전거 안장으로 아픈 엉덩이를 부여 잡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지쳤고, 다음 날 있을 킬호만 증류소와 브룩라디 증류소 투어를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행복한 첫 날이 그렇게 지났다.
다음 글은 아일라 3일 차, 킬호만과 브룩라디, 그리고 또 다른 후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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