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정말 말도 못할 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받은 한 달이었다.
야근도 며칠씩 무리해서 하다보니,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는 크게 지쳐있었다.
8월 말 토요일에 디씨앱에 접속했을 때 그냥 여기 일여갤에 무의식적으로 들어왔는데, 첫 글에 "다캬아마 지금 에어서X 개싸네ㅋㅋㅋ" 같은 제목이 올라와 있었다.
다카야마?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미 두어번 가본 동네. 다만 두 번 다 기차여행으로 들렀을 뿐, 리츠린 공원마저 가보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관광은 해보지 않은 곳이었다.
가격을 검색해보았다. 토일월해서, 월요일 하루 연차 내고 가는 비용이 10만 6천원이었다.
홀린듯 결제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아버지와 6월 말 일본 알펜루트를 여름휴가로 다녀왔다. 지금은 두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일본여행을 참 자주 간다. 1년에 보통 서너차례는 가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일본은 외국여행으로 이제 와닿지 않는다. 그냥, 2박 3일간 가는 국내여행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는 일본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여행은 자주 간다. 비행기로 2시간 내외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은 정말 큰 것이다.
아무튼, 토요일에 가격을 보고 고민했던 나는 일요일에 결국 그 다음주 토요일 다카마츠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리고 월요일에 결국 취소했다. 이유는 결국 비용이었다.
나는 일본여행에서 매력을 크게 네 가지 포인트에서 느낀다.
첫 번째는 교통이 편리하여 내가 짠 여행계획을 100%로 클리어했을 때 느껴지는 그 만족감.
두 번째는 비용 절약.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고속열차(신칸센) 기차여행, 노천 온천이다.
여기서 두 번재 이유 비용 절약.
나는 일본여행의 만족감을 비용을 절약하는 것에서 크게 느낀다.
남들은 이해를 잘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검소한 생활을 해왔다.
내가 일본여행을 가서 돈을 덜 쓰면, 나는 그 다음번 일본여행을 한 번 더 갈 수 있다.
내가 20대에는 저가항공도 없고 일본여행이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30대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일본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끼면 여행을 한 번 더 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돈을 아끼고 일본 가서 펑펑 쓴다는 사람이 이 갤에 있던데, 사실 현실적으로 사회인들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
돈을 쓰지 않아도 사회에서 타인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는 이상, 평생 혼자 아무도 만날 생각이 아니라면 돈을 안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조금 비싼 것을 사먹어도, 일본에선 싸게 먹거나 오히려 굶거나 했다.
별로 정치적으로 한국과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는 네가지 없는 나라에 돈 쓰기가 싫다는 것이 내 조그만 저항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여행은 그간 많이 다녔다. 20회 넘은 것은 분명하고, 아마 30회 근처에 갔을 수도 있다.
가족과 함께 갔을 때야 그렇게 아끼지 못했지만, 나 홀로 갔을 때에는 정말 저렴한 여행을 많이 다니고는 했다.
내 여행경비 기록은 코로나 전 오사카 2박 3일 35만원이었다. 이 35만원은 3.5만원의 선물값과, 당연히 인천공항 왕복교통비도 포함이다.
많은 대학생 일붕이들은 사회생활하고 돈 벌면 일본여행가서 더 많이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 밑에서 행복했던 그 시절처럼 행동할 수 없다.
그 때가 되면 돈은 여행 가지 않고 모아야 하는 것이고, 여행 계획을 세우던 즐거운 시간은 청약홈과 LH 공고를 확인하는데 쓰여진다.
나이 먹어서 돈은 벌어도, 여행 가서 그 시절처럼 행복하게 지르지 못한다. 내가 질 책임은 늘어가고, 돈은 필요하기에 더더욱 아껴야 한다.
그래서 돈을 생각하면 여행을 가면 안되었다. 다카마츠는 생각보다 호텔비가 비싼 동네였다.
두 달 전에 여행가서 돈 많이 썼는데, 어떻게 두 달만에 일본 또 가겠는가. 수십만원 쓰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취소했으나, 막상 비행기표를 취소했다는 찜찜함은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마츠야마를 가보면 어떨까?
마츠야마는 사실 이미 가본적이 있는 동네였다. 첫 여행은 2019년, 오사카에서 세토우치 관광패스로 도책해서 무려 20분(...)이라는 내 여행에서 전무후무할지도 모르는 여행시간을 기록했다.
오사카 - 히로시마 - 페리타고 마츠야마 - 이마바리에 가서 오노미치로 가는 세토우치 버스인가를 탈 생각이었는데, 이마바리에서 출발하는 세토우치 버스가 4시 반이 막차였다. 오후 3시에 마츠야마에 당시 도착했던 나는 3시 20분에 마츠야마를 떠나야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츠야마는 나에게 꼭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였다. 그리고 결국 작년 2023년, 아버지와 함께 일본 jr 전국패스로 마츠야마를 가서 제대로 관광하게 되었다.
가성비충인 나는 jr전국패스를 최소 3배이상 뽑아먹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후쿠오카 - 오카야마 - 마츠야마(7시간) - 3시간 관광 후 다카마츠로 출발, 밤에 다카마츠 도착 후 1박이라는 미친 일정을 소화했다.
다카마츠냐 마츠야마냐. 둘 다 시코쿠 넘버 1,2의 도시.
2박 3일은 애초에 관광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며, 우동이나 실컷 처먹고 오자가 당초의 계획이었으나 놀랍게도 금액은 마츠야마가 들어가는 게 적어보였다.
다카마츠 - 공항까지 왕복 2천엔, 호텔은 주말 기준 가장 저렴한 곳이 6,7만원.
마츠야마 - 공항까지 왕복 무료, 호텔은 주말 기준 4만원.
수요일 아침까지 기다리며 땡처리를 기다리다, 결국 마츠야마 제주항공 수화물 포함 티켓을 12만원에 예약했다.
꽤 급하게 잡은 일본여행이지만, 일본은 솔직히 국내여행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준비할 것도, 기대할 것도 그닥 없었다.
금요일까지 일한 후 쓰러지고,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정리했다.
돈은 3만 5천엔 챙겼다. 물론 다 쓰진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간만에 혼자 쉬러가니 만큼, 예전 오사카 2박 3일 35만원의 기록을 깨보려 시도하는 여행이기도 했다.
그러려면 아껴야 한다. 아껴야 한다.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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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에어만 타는 진천지로서, 1공항 터미널에 온 것 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2터미널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1터미널이 훨씬 좋다.
어머니 화장품을 사려했는데 쿠팡보다 더 비싸게 팔아서 결국 사진 못했다.
이 일여갤에 보면 십몇만원 더 주고 김네다를 타는게 인리타보다 낫냐 안낫냐 라는 질문 꽤 자주 올라오는 편인데,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인리타 선택하고 두세시간 손해보고 십몇만원 아껴라. 그리고 그 돈으로 어머니 화장품 좋은 걸로 하나 사드려라. 어머니 행복해 하시는 거 보는게 김네다로 몸 편한 것보다 더 낫지 않겠냐. 물론 내 생각이다. 너네들 알아서 하라.
오후 1시 10분 비행기였나 그랬다.
제주항공은 정말 오랜만이다. 마지막 제주항공이 2020년인가 말에 인천-가오슝, 김포-오사카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특가 잡겠다고 노력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다.
특가 잡았다가 친척이나 직장동료 결혼식에 겹쳐서 참여하려 돈만 내고 놓치고...7개월 전에 잡은 일본여행이 회사 워크샵과 겹쳐서 돈내고 취소하고...
그냥 가고 싶을 때 땡처리로 잡는게 지금 와서는 최고인 것 같다.
에어서울도 출발시간이 똑같다.
에어서울 저 비행기는 다카마츠를 가게 될 것이다. 그러고보니 에어서울은 단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사막있는 돗토리 요나고를 가보고 싶었는데, 막상 거기가 하필 비행기가 비쌌다.
작은 공항이용 해본 경험은 모든 여행 중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예전 라오스의 비엔티안 공항이 아주 작긴했는데, 여기보다는 그래도 컸던 것 같다. 아니, 비슷했나? 글 쓰다 검색해봤는데 비엔티안 공항이 더 크긴 하다.
저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유일한 캐리어 찾는 곳이다.
이게 공항의 끝이었다.
찾아본 대로 투어리스트 센터에 가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쿠폰을 받았다.
아쉽게도 상단 세 장 사용이 끝일 것 같다.
그래도 공항 무료리무진이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마츠아먀 여행을 생각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안왔다...
이 때 태풍이 온 8월 마지막 주여서 긴장 좀 했는데, 막상 날씨가 너무 좋았다.
타카마쓰는 이 때 비 내렸겠지?
너무 기다려도 안오길래 투어리스트 센터 가서 다시 물어봤더니, 여기는 한국인 셔틀 타는 곳이 아니란다. 옘병...
다행히 버스 놓치기 전에 버스타는 곳을 찾아 탑승할 수 있었다.
작년 5월에 아버지와 마쓰야마를 왔을 때, 크고 화려한 건물이 있길래 지도를 봤더니 "민주화 운동 기념관"인가 그랬다. 사진의 건물이다.
일본은 사실 운동권 역사도 짧고 바로 피 흘린 것도 없이 민주주의 갖췄을텐데 무슨 민주화운동? 이라고 당시 생각했지만 그런 것까지 공부할 생각은 없어 넘어갔다.
아무튼 그 때 그 건물을 버스에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종점인 도고온천에 도착했다. 이 때가 오후 4시 10분.
호텔이 있는 오카이도에 내리려했으나, 도고온천 다시 가기가 힘들 것 같아 애초에 온천부터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800엔인가로 실제로 타볼 수도 있다는 봇짱 열차.
탈 수 있는거 맞..지?
올해도 작년에도 시계탑에서 인형들 튀어나오는 것은 못 봤다.
유튜브로 봤으니 뭐 눈으로 또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고 온천 상점가에 있는 10 팩토리.
에히메현의 자랑인 귤관련 상품들을 파는 곳이다.
저 수도꼭지에서 감귤주스가 나오겠지?
아쉽게도 저기에 돈을 쓸 수는 없었다.
점심을 먹지 않은 오후 4시 반. 시장하지만 따로 도고온천에서 이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봇짱"이라는 기차와 이름이 똑같은 음식점이 영업도 하고 구글 평점도 높길래 막상 문 앞까지 찾아가긴 했는데, 암만 봐도 닫은 것 같아서 들어갈지 말지 한참 고민했다. 저 상태는 열린 상황이었다.
들어가니 발음이 어눌한 노파 한 명이 나를 맞아준다. 매우 친절한 할머니였다. 테이블 없이 카운터석만 있는, 바(bar)에 가까운 곳이었다.
일본 가정식 식사를 매일 메뉴를 바꿔서 차려주는 곳 같았다. 할머니의 정인가.
저 음식의 가격은 5백엔이었다. 아마 내가 20대였으면 정이 담긴 음식에 무척 감동했을 식사였다.
나이 먹고 기쁨 감동을 쉽게 느끼지 못하게 된 지금,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며 씁쓸함을 곱씹게 되는 식사이기도 했다.
비용 500엔 (봇짱, 점심)
인력거도 가고 있더라. 15분에 한 5천엔 받겠지 아마.
무료쿠폰 온천을 찾았다.
도고 온천 본관을 작년 아버지와 갔는데, 수년간 공사를 해야 한다고 닫혀서 온천을 못했다...
들어가서 온천욕을 했다.
내가 온천을 무척 좋아해서 일본을 자주 가는데, 나는 일본 온천을 두 가지 이유에서 자주 간다.
첫 번째는 온도가 한국보다 보통 낮게 해준다는 것. (한국 목욕탕은 할배들 좋으라고 물 개뜨겁게 하는게 장난 아니다) 나는 뜨거운 물에 남들보다 못들어간다.
두 번째는 노천 온천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욕탕은 노천도 없고, 물은 개뜨거웠다...
하는 수없이 걍 샤워정도나 하고 나왔다.
비용 0엔 (도고온천 아스카노유, 원 610엔)
트램을 타고 숙소가 있는 오카이도 근처 가쓰야마초역까지 이동.
예약한 네스트 호텔 마츠야마를 찾아간다.
비용 200엔 (트램)
!!! 오!
그간 일본의 개코딱지만했던 호텔들보다 크다!
한 2,3제곱미터 큰 것 같은데, 와닿는 체감은 확 크다.
캐리어를 펼쳐 놓을 수 있는 비즈니스 호텔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호텔은 2박 3일 10만원에 결제했다.
주말이 낀 가격인데다, 조식 뷔페 이틀을 포함시킨 가격이니 실제로는 2박 8만원 수준.
거기다 한 5천원 두 달 뒤 캐쉬백도 받으면 7.5만원 수준이니 정말 만족스러운 가격이다.
돈을 아끼더라도 건강과 체력을 잃은 지금, 도미토리 같은 곳에서는 이제 못 묶는다. 40이 넘어갔는데도 젊은 사람처럼 자기는 어렵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 즐겁게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부대끼는 여행도 때가 있는 법이다.
이제는 무조건 호텔에서 잔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저녁에 오카이도 거리를 산책하러 나왔다.
가장 황금 상권에 저 음식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건데, 체인점이더라고.
맥주는 좋아하는 편이어서 형짱불고기 근처에 있던 이 가게를 가려했다.
그런데 이미 현지 사람들이 안쪽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있더라. 포기했다.
나는 여행 와서 맛집 등을 가기 위해 절대 줄 서지 않는다.
일여갤에서 추천이 많았던 긴타코. 여기도 체인점이란다.
둘째 날에 호프집에 갔는데, 후회하고 이 곳 생각이 났다. 여기를 갈걸...
아무튼 끝내 못 가봤다. 사람도 많았다.
일본여행을 가면 주로 슈퍼마켓에서 할인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편이다.
그냥 나는 일본 음식 중 도시락이 제일 맛있더라.
건강하지 못해서 싱겁게 먹는 편인 내게 일본음식 대다수는 매우 짜고 달다. 음식점은 더 그렇다. 라멘 같은 건 입에도 안댄다.
비용 1,992엔 (미쓰비시 백화점 슈퍼 코브, 저녁식사)
이게 할인가로 350엔인가 그랬다.
잘 먹었으니 첫날밤 잠든다.
자주 오는 일본여행. 이제는 기대도 설렘도 없다. 어떻게 보면 관성만 남은, 그럼에도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가고 싶은 나에게 최적의 여행지인 셈이다.
2박 3일이라는 일정. 관광도 하지 않을 거다. 그저 일에 지친 나에게 주는 작은 포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집이 아닌 곳은 호텔이라도 자기가 힘들다. 나는 새벽 2시까지 서너번씩 깨야했다.
이 날 사용 금액
도고온천 식사 봇짱 500엔
온천 아스카노유 0엔 (원 610엔)
트램 200엔
슈퍼 저녁식사 1992엔
총 2,692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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