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 2나 유메닛키를 더 이전 세대의 게임들
어둠의 씨앗, 어둠 속에 나 홀로 등과 구분짓는 특징은
공간적 배경이 일종의 심상으로 기능한다는 점 같다.
공포 체험이 주가 되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전 세대의 게임들에서 주인공들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을 겪는다.
어둠 속에 나 홀로에서 주인공이 탐정인 것처럼 이런 게임은 진상을 추리하는 어드벤처 요소가 짙다.
사일런트 힐 2는 동세대의 바이오하자드와 달리 이런 전통을 빗겨 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억을 잃고 정신병동을 탐험하는 Sanitarium이라는 게임도 있다고 하고
전작인 사일런트 힐도 내면이 투영된 공간을 다루었지만
이런 게임에서 사일런트 힐, 사일런트 힐 2로 갈수록
플레이어가 밝혀야 하는 대상은 사태의 배후보다는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축소되는 것 같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전체가 실제로는 누군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세계의 탐험은 사건의 설명보다는 그 근원에 있는 사람(대체로 주인공)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이런 형식은 여러 게임에 영향을 남겼는데,
(여기서부터는 억지가 많지만 그냥 재미로 가정해 보면...) 다음 세대로 갈수록
안개 낀 외딴 휴양지나 폐쇄된 병동보다
인물이 일상적으로 지내는 장소가 더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이전의 게임에서도 심상과 현실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뒤섞여 있었으니 이런 차이는 모호해 보이지만
내면세계가 더 이상 '어딘가 동떨어진 곳'을 방문함으로써 나타나지 않고
현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들여보낸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유메닛키에 이르면 두 곳의 간극은 자기 방의 문 하나 정도로 좁혀져 있고
대강의 줄거리조차 희미해진다.
이제는 거기에 밝힐 수 있는 진상이 존재하는지도 알기 어렵고
몇 가지 단서를 제외하면 순수한 내면세계가 묘사된다.
코즈믹 호러 장르에서는 미지의 공포를 접한다 해도 신화나 로어에서 충분히 그 내적 논리를 찾을 수 있지만
이런 게임에서는 눈앞에 있는 것들이 왜 존재하는지를 좀처럼 알기 어렵다.
어떻든 한 내면을 돌아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리사: 더 퍼스트나 오모리는 많은 점에서 유메닛키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현실과 내면세계의 간극이 상대적으로 더 좁아 보인다.
유메닛키에서는 적어도 꿈꾸기가 방해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망상은 자주 중단되고 위협받는다.
또 현실의 인물들이 상징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내면세계에 나타난다.
이런 게임들에서는 망상 속에서도 제대로 분리할 수 없을 만큼 현실의 영향력이 커져 있다.
시그널리스에서는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명백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주인공이 겪는 공포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Still Wakes the Deep 같은 게임처럼 은유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로어를 쌓아올리고 설득력 있는 세계를 제시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내면세계나 환각이 아닌 답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듯한 인상을 주지만
어느 쪽도 분명하지 않고,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듯하다.
정석적으로 고립된 장소를 방문하는가 싶더니 시점이 자주 바뀌고
실제와 내면세계, 내면세계의 주체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데
안개처럼 경계를 알려주는 명확한 표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여러 개의 진상이 물감처럼 섞이고 서로 침범한다.
더 비기너스 가이드는 공포 게임은 아니지만
플레이어가 탐험하는 공간 전체가 누군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같은 계통으로 볼 수 있겠다.
여기서 내면세계는 친구의 습작이라는 또 다른 게임으로 나타나고, 개발자 본인이 주인공이므로 일종의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현실에 끼어든다.
플레이어는 제3자의 내면을 주인공의 안내를 따라 읽어나가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주인공의 내면 읽기로 돌아온다.
다층적인 구조와 실명 사용, 내래이션으로 자꾸만 이야기의 경계를 흐리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어느 정도는 논픽션일 테니)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려고 복잡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개발자 스스로가 어려운 고백을 주저하고, 에두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사일런트 힐 2, 그리고 유메닛키 이후로 내면세계를 다루는 게임에서는
어드벤처 요소가 다시 강화되고
현실이 내면세계에 더 간섭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시대상이나 개발 환경의 반영일 수도 (사일런트 힐 시리즈와 유메닛키는 일본, 이후의 예시는 전부 서양의 게임이다)
그저 익숙해진 형식을 새롭게 변용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내면세계 게임은 단순히 밝혀내야 할 목표가 인물의 사연으로 좁혀질 뿐 유사한 게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 마음을 걸어서 돌아본다는 건 여전히 특별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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