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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특집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수상
2년만에 모더니스트들에 관한, 특히나 지금 한국의 가장 핫이슈인 노벨상 특집이다당연히 모더니즘은 20세기 가장 근본이므로 수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가장 완벽한 문학사조다수많은 모더니스트들의 수상 일화를 일일히 다루기엔 여백이 없으므로 대충 몇 사람만 간략하게 알아보자1949년, 정작 당시 미국에선 잊혀져가며 상당수 작품은 절판되어서 구하기 힘들지만, 유럽, 특히 프랑스 등지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던 윌리엄 포크너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수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스웨덴으로 가서 상 받고 연설하는게 관례였고, 당대에도 이미 노벨상 수상은 작가로서 영광이었기에 다들 포크너에게 열광한다사소한 문제를 제외하면"아니, 근데 내가 상 받기 싫다는 건 아닌데....꼭 스웨덴 가야 해? 나는 미시시피가 너무 좋은걸"그랬다.안 그래도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요크파토나파군이라는 가상의 지역까지 만들며 모든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 포크너는 고향성애자였고,자신이 훗날 전기에서 '미시시피에서 평생 자라고, 평생 미시시피에서 작가로 살았다,' 라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스웨덴으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방 밖으로 좀 나가!!!"아쉽게도 포크너의 편집자와 출판사 직원들은 수많은 애원 끝에 포크너를 설득했고, 다행히 포크너는 설득을 받아들여서 딸과 함께 스웨덴으로 가서 무사히 상을 받게 된다.아무래도 노벨문학상 자체가 권위가 있고, 작품이 아닌 한 작가의 전체 작품을 조명하며 주는 상이다보니까 수상자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늙어서 수상하는 경우도 많다보니 자조적으로 자신이 이제 작가로서 끝났음을 알리는 상징이라며 자조하며 받는 작가들도 있는 만큼 사실 노벨상 수상 이후에 대작을 쓰는 작가들은 드물다.하지만 그러한 가장 유명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영문학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 중 하나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다.당장, 1923년 수상자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유명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가 수록된 그의 후기 대표작 시집 <탑>의 경우 1928년에 나왔으니까.애초에 꾸준히, 오히려 나이 먹을 수록 더 좋은 시를 써서 이례적으로 평가받는게 예이츠라서 가능한 일이지만.사실 예이츠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느 정도 정치적인 요소도 고려된 점이 있었다.이제 막 아일랜드가 독립하면서, 안 그래도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당대의 거장 예이츠를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예이츠 본인도 이러한 '사명'을 잘 알았기에 개인보다는 아일랜드 자체를 대표하며 받는다 식의 답신을 남기기도 했다.물론 이건 공적인 모습이고"그래서 상금이 대체 얼마냐?"인간 예이츠가 처음 노벨상 수상 소식을 가져온 출판사 관계자에게 물은 것은 상금 액수였다고 한다.당연히 작가도 사람이지만, 사실 예이츠 본인에게도 슬픈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돌아가신지 얼마 안된 화가 아버지가 물려주신 빚, 출판사 운영비, 그리고 여동생의 빚 등 돈이 급하던 상황이었다.예이츠 입장에선 정말로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덤으로 당시엔 독립 직후 북아일랜드 문제로 아일랜드 내전 중이라 예이츠 본인의 집으로도 총알이 날아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예이츠 본인 또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로 여러모로 기묘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고, 노벨상 수상이 그나마 몇 안 되는 기쁨이었을 거다.스웨덴으로 끌려간 포크너와 달리, 상은 받았지만, 스웨덴으로 안 가고, 수상강연도 다 조까라고 한 사뮈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한 수많은 대작과 패러다임을 바꾼 그의 수상은 너무나도 당연해보인다.하지만 노벨위원회는 수상 관련 내역을 대충 50년 후에야 공개하고, 최근 공개된 베케트 관련 수상 논의에서 흥미로운 점들이 있었다. 후보에 오를 때마다 베케트를 반대하던 위원들이 있었고, 수상한 1969년 노벨상 회의조차 엄대엄으로 반대하며 수상이 결정된 이후에도 하마터면 수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비화가 밝혀졌다."그....그치만 노벨이 이상적인 문학에 주라고 했는데, 베...베케트는 너무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고 새..생각해요!"라는 이유에서였다.과연 집에 온 손님에게 밥도 안 주는 놈들답다
작성자 : JHALOFFREX고정닉
<프라이드 치킨>이 생겨난 배경
현재 한국에는 많은 치킨 브랜드가 있지만,그 원조는 어디일까, 오늘 이야기는 <치킨>의 원조와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자.대부분 생각해보면 치킨의 원조라고 한다면 'KFC'를 떠올렸을것이다.왜? KFC 치킨이 역사가 가장 기니까.하지만 KFC 치킨은 '프라이드 치킨'을 대중화 시킨 주역이긴 하지만 , "치킨의 원조"는 아니다.그렇다면... '치킨의 원조'는 누가 만들었을까?치킨의 원조는 미국 켄터키주의 흑인노예들로 부터 나왔다.그리고 재료가 잠길정도로 기름에 넣고 튀기는 조리법은중세시대의 지중해 유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튀기는 조리법이 아라비아 상인등에 의해 아프리카 까지 전해졌다.원래 미국에서 닭을 요리하는 방식은 오븐에 굽는 '로스트 치킨'이 전부였다.구우면 육즙이 빠져들기에 먹을 부위가 없는 날개,발,목 등 살이 없는 부위는 버리곤 했다.이 버린 부위를 흑인 노예들이 주워서 기름에 튀겨먹은것이 프라이드 치킨의 유래이다.이미 아프리카 에서 튀기는 조리법이 익숙했던 흑인노예들이었고미국 켄터키주는 "돼지고기의 고향"이라고 불릴정도로 양돈업이 발달해 버려지는 돼지 기름이 풍족했기에,노예들도 쉽게 조리할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한다.통째로 담가 튀기면 뼈째로 먹을수 있다는 장점, 튀겼기에 고열량을 지닌 좋은 영양 공급원이 되었다.그리고 이렇게 튀기면 골수가 녹아 감칠맛도 올라간다고 한다.프라이드 치킨이 본격적으로 알려진것은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이 활발할 때였다.미국의 흑인들이 그들만의 음식에 독자성을 부여하고자 "소울푸드"라는 이름을 붙였다.이후 흑인들의 문화에는 "소울"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했다고 한다.소울푸드로 부를만한 이유는 흑인들이 프라이드 치킨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노예제도가 합법이었던 때에, 흑인들에게 유일하게 사육,조리가 가능했던 동물은 닭이었다.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흑인들은 재산이 없었기에 소를 키우기 위한 초지도 없고 돼지를 키우기 위한 사료를 구할수도 없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먹을수 있고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인 닭고기를 정성을 위해 튀겼고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게 조리했다고 한다.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당시 백인들은 입맛만 다시며 쳐다 볼수 밖에 없었는데 흑인들이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널리 퍼진것은 KFC할아버지 라고도 불리는 '커널 할랜드 샌더스' 덕분이다.커널 샌더스 할아버지는 당시 유행하던 기름에 푹담궈 조리하는 '딥 프라잉'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갖은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프라이드 치킨 조리법을 발명해냈다.KFC에는 11가지의 비밀양념이 있다는데 기업 1급 비밀 이었다고 한다.2017년에 우연히 밝혀져 큰 파장이 있었다.카낼 샌더스를 모티브로한 프랜차이즈가 설립되어 전세계에 퍼져흑인노예의 소울푸드가 전 세계인이 즐겨먹는 음식이 된것이다.한편, 이러한 배경을 지니고 있기에미국에서는 간혹 프라이드 치킨을 언급하며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조롱을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한다.이 프라이드 치킨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많은 변모를 겪었는데 처음에 '치킨'은전기구이 통닭으로 시작했다.이후 1971년 https://youtu.be/P6Gd4Akdvqg해표식용류가 등장함으로서,닭은 통째로 튀긴 통닭이 인기를 끌고 1984년, 종로에 kfc 치킨이 한국에 상륙하게 되면서 조각 내 튀긴 닭이 대중화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후라이드 치킨은 종류도 워낙 많고한국인 입맛에 맞게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해왔다.신기한건 프라이드 치킨의 원조라고 할수있는 미국에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이 먹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 또는 튀김옷이 얇고 바삭바삭해 캔디 치킨 이라 칭하며한국 스타일의 프라이드 치킨을 칭송하며 독립적인 음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끝-
작성자 : 또또장금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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