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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압) 거란족과 선비족은 몽골 계통 동북아 인종이다...fact
일단 거란족, 선비족 등의 북방민족을 당연히 동북아 인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함 ㅈㅅ다름이 아니라 요즘 인터넷 커뮤를 중심으로 "거란족, 선비족 등의 북방 유목민족들이 사실은 백인이었다?! 뿌슝빠슝" ㅇㅈㄹ 하는 조잡한 날조 글이 돌아다니길래 팩트체크해보려고 함문제되는 글은 아래와 같음저런 식으로 출처 한줄 없는 전형적인 인터넷 개똥글이니까 찾아볼 생각도 하지 마시길. 조금이라도 역사 지식 있으면 빡쳐서 대가리 핏줄 터질 수도 있음.자 그럼 왜 저 개똥글 캡쳐본이 날조인지에 대해 하나하나 팩트 체크해보도록 하자.1. 옛날 벽화에서 선비족은 백인의 형질이 강해 보인다?위 벽화의 오른쪽 인물을 보고 백인의 형질이 강한 것 같으니 선비족은 다 저런 생김새였던 것처럼 선동하지만...그냥 저 한 사람이 특이했던 거지 다른 3명의 얼굴은 전형적인 동아시아인의 범주에 속하는 얼굴을 하고 있음그리고 선비족들을 묘사한 다른 그림들도 살펴볼까?위는 모두 선비족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들인데, 다들 몽골 계통 민족의 형질이 두드러진다는 걸 알 수 있음.출처: A Study on Costume in Mural Painting of Xu Xianxiu Tomb in Northern Qi period, 2016그리고 6세기 중국 선비족 황제의 모습도 유골을 통해 복원된 바 있음.남북조 시대 북주 무제의 얼굴을 복원한 결과임. 그냥 전형적인 몽골인, 중국인처럼 생겼음.출처: Ancient genome of the Chinese Emperor Wu of Northern Zhou, 20242. 백인 당나라 황제 안록산?이 사람이 안록산(안녹산)인데... 일단 당나라 황제였던 적이 없음. 안녹산은 페르시아계 소그드인 아버지를 둔 혼혈이었는데, 당나라 현종 시기에 중용받는 장군이었다가 현종 뒤통수치고 기습 반란 일으킨 사람임.그 때문에 현종이 쓰촨으로 피신했고 당나라 조정은 '안녹산의 난'에 대응했음. 반란 이후 안녹산은 낙양에서 칭제하여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라를 건국했는데 그게 오늘날 위연(僞燕, 가짜 연나라)이라 불리는 국가임.그러나 버젓이 당나라 황실이 존속 중이었고 명분도 없던 반란이었기에 민심도 따라주지 않아 초반 기세에 비해 반란 성과가 지지부진해졌고 결국 당나라 숙종한테 진압당해서 건국 8년만에 위연은 멸망했음. 아무튼 중요한 점은 안록산은 절대 당나라 황제였던 적이 없었고, 중국사에 존재했던 실패한 반란자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는 거임.출처: 저잣거리에서도 불도를 닦을 수 있다 - 왕유의 시를 읽는 이유, 2020중요한 건 아니지만 안녹산의 어머니는 돌궐인이었는데, 그 글에서는 안녹산의 어머니를 갈족이라 적고 오늘날의 카자흐, 우즈벡이라고 적어놓았음. 동돌궐 = 갈족 = 카자흐 = 우즈벡은 너무 많은 걸 뛰어넘은 거 아님?그리고 '중국 드라마에 묘사된 안록산'이라면서 아래처럼 자기 입맛에 맞는 안록산만 들고 오는데...다른 중국 사극에서 묘사된 안록산의 모습을 볼까?중국 사극 <大唐荣耀>에서 묘사된 안록산. 백인의 형질은 손톱 만큼도 보이지 않는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중국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의 모습으로 안록산의 모습을 증명하려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감. 그냥 아버지가 페르시아계였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깔끔한데 뭐하러...3. 과거 선비족, 거란족 등의 북방민족이 모두 우즈벡인 같은 외모였다?위의 우즈벡 권투선수 짤 올려놓고 과거 선비족, 거란족 등의 북방민족이 위와 같은 생김새였다고 하는데... 과거 선비족의 모습이 전형적인 몽골 계통이었다는 건 당대 그림으로 증명했으니 거란족도 그림으로 증명해봄위 사진은 그림은 아니고 거란 공주의 무덤 모습임. 동아시아인의 얼굴을 묘사한 황금 가면을 쓰고 있음.당대 그림상 거란족도 전형적인 몽골 계통의 외모로 묘사됨옛날 거란족이든 옛날 선비족이든 다 만주와 내몽골에서 기원하여 그곳들을 거점으로 활동한 동일 계통 민족들이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도 현대 몽골인과 거의 똑같았고, 문화적으로도 매우 유사했었음거란족의 발원지선비족의 발원지(3세기 세력권)당장 선비족과 거란족의 직계 후손으로 여겨지는 현대의 다우르족(Daur)이 현대 몽골인 및 몽골 계통의 민족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움.다우르족(Daur)의 게놈을 분석해보면 동아시아 계통(초록색 계열)인 걸 알 수 있음. 한편, 유럽 백인 계통(빨간색 계통)과는 거리가 한참 먼 걸 알 수 있음.출처: Quantitating and Dating Recent Gene Flow between European and East Asian Populations, 2015그리고 이 다우르족은 고대 거란족과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음.DNA Match Solves Ancient Mystery거란족과 선비족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을 때 사실상 선비족과 다우르족의 유전자도 거의 일치한다는 거임.현대 다우르족의 모습. 출처: Our story - the Daur nationality, CCTV English애초에 학계에선 일반적으로 거란족과 선비족을 몽골-퉁구스계 민족으로 분류하는데, 뜬금없이 선비족도 아니었던 안녹산 1명 들고와서 북방민족을 죄다 백인화시키는 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음. 한국도 통일신라~고려 때 페르시아, 아랍 상인들 들어왔는데, 그럼 그때 한민족들도 사실 다 코카소이드였던 건가?다시 우즈벡인의 외모로 넘어가자면...저렇게 우즈벡인들 중 백인과 동양인의 혼혈처럼 생긴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아주 간단함우즈벡(빨간색)이 유럽과 동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임. 서양 세력과 동양 세력의 중간에 위치했으니 당연히 혼혈적인 느낌이 있을 수밖에 없지(물론 페르시아의 영향도 컸고 소련 시절의 영향도 있었음). 사실 그 덕분에 과거 중국과 유럽 사이의 실크로드 거점으로서 부를 축적하며 번성했었던 나라이기도 함.우즈벡인들의 혼혈 같은 생김새는 몽골-만주를 기원으로 하는 동아시아계 유목민족들이 우즈벡으로 유입된 결과라고 보아야 하는 거지, 애초에 동아시아계 유목민족들이 우즈벡인들과 같은 생김새였다고 주장하는 건 주객전도된 망상임.실제로 거란족이 세운 국가였던 요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망해버리자 거란족들이 중앙아시아 쪽으로 도망쳐 세운 '서요'라는 국가도 있었음.거란의 요나라요나라 멸망 후 거란족이 서쪽으로 도망쳐 건국한 서요(西遼). 현대의 우즈벡도 서요의 세력권에 속했다.선비족과 거란족의 발원지는 엄연히 몽골-만주 지역이었고, 유전적으로도 현대 몽골인과 유사하고, 언어적으로도 몽골어와 유사했으며, 문화적으로도 몽골족과 매우 유사했음. 서역에서 유입된 백인 형질을 지닌 사람들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혼혈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엄연히 절대다수는 전형적인 몽골 계통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는 거임. 이건 현대 다우르족의 존재로 인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고 있음.애초에 선비족, 거란족, 동호 등의 북방민족이 백인 계통이었다고 주장할 거면, 당연히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었던 몽골족 및 그들의 선조들도 백인 계통이었어야 함. 결국 "와! 몽골인이 백인이었대요! 신기해요! 칭기즈칸, 쿠빌라이도 다 백인이었나봐요!" << 이러고 있는 거랑 똑같은 거임. 그냥 전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거.1줄 요약선비족, 거란족, 동호 등 북방민족은 유전적으로 동아시아 몽골 계통이었고, 백인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현대의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과 가까웠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아직도 처칠이 독립 반대했다는 날조 선동 믿는 빡대가리들 봐라
커뮤 밈으로 역사를 배우니까 조선족 선동질에 놀아나지 ㅋㅋ대표적으로 ㄹ이나 여초에서 자주 올라오는 이 짤먼저 이 글의 출처이 기사에서 문장이랑 회담 기록 날짜까지 그대로 긁어옴기사 작성자 "이상철" 뒤에 다시 설명할거니까 잘 봐둬라이기https://shindonga.donga.com/3/all/13/113033/5 신동아 신동아shindonga.donga.com그런데 정작 이 기사에서도 제목에서 어그로만 잔뜩 끌어놓고 정작 처칠이 "한국 독립을 반대한다고 발언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음왜냐고? 처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당시 회담에 대한 팩트만 나열하자면1. 카이로 회담은 미국, 중국, 영국 3국이 공동으로 작성한 공식적인 회의록이 없음2. 위 회담에서 마지막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선언문 외에는 각각 미국 정부의 기록과 당시 장제스 및 중국 측 인사들의 비밀 기록만 각각 남아있음3. 처칠이 인도와 홍콩을 계속 식민지배하고 싶어서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 반대 -> 이건 사실임4. 하지만 처칠이 저 카이로 회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한국 얘기가 나오자 그때 안된다고 반대??? -> 그런 기록은 미국과 중국 양쪽 기록 전부 존재하지 않음5. 카이로 회담의 초안 -> 미국에서 작성함- 미국에서 작성한 홉킨스 초안 내용:우리는 우리의 잔인한 적(brutal enemy)에게 바다, 육지, 상공에서 무자비한 공격을 가할 결의를 가지고 있다. 이 압력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이 지역에서 우리가 공동공격을 개시할 때, 장소와 규모는 지금 밝힐 수 없지만 일본은 그 힘을 알게 될 것이다.우리는 일본이 점령해 온 태평양의 여러 섬은 일본에서 영구히 빼앗고 일본이 중국에게 신뢰를 저버리고 훔친(so treacherously stolen) 만주, 대만과 같은 영토는 당연히 중화민국에게 반환되어야 한다고 결단했다. 우리는 한국 인민들을 기만하는 예속(treacherous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에 유의하고 일본의 항복 후 최대한 빠른 시점에 한국이 독립하고 자유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결단했다.우리는 일본을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격렬하고 결연한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우리 세 나라는 일본의 무조건 항목을 얻어내기까지 함께 싸워나갈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6. 한국 얘기가 구체적으로 회담에서 나온 것은 회의의 11월 23일과 24일, 카이로 회담 선언문 초안이 거의 작성된건 11월 25일지금부터 가져오는 링크의 문서들은 (history.state.gov) 미국 정부에서 공식으로 공개한 회담 기록들임이 기록들 중에는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동의를 받아서 회담 내용에 대한 중국 측의 기록도 보충자료로 있음11월 23일에는 (미국-소련 회의 후에) 미국과 중국이 먼저 만나서 대화했고 그 다음 본회의에서 3개국이 만남오전 회의: Patrick J. Hurley와 장제스의 대화 -> 대화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54 Historical Documents - Office of the Historian Historical Documents - Office of the Historianhistory.state.gov본회의 Plenary meeting, 11 a.m. (루즈벨트, 장개석, 처칠 모두 참석)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ch5subsubch9본회의 내용 -> 미국 측 합동참모회의록에서 기록한 회의 내용 전체를 읽어봤지만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55이후에 이어진 루즈벨트-처칠 미팅 ->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56그 다음 오후 2시 30분 합동참모 장군들 회의 ->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57오후 8시 루즈벨트 - 장개석 저녁 만찬 -> 여기서 처음으로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 Dr. Hollington Tong 기록으로 번역문에 한국 언급이 나옴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59"루즈벨트는 중국과 미국이 태국뿐만 아니라 한국, 인도차이나 및 기타 식민지 지역의 미래 상황에 대해 상호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장개석은 이에 동의하면서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또한 전후 인도차이나의 독립을 위해 중국과 미국이 함께 노력해야 하고, 태국의 독립지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도 그의 견해였다"이후에 이어진 미국 영국 참모총장 회담 ->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0그리고 11월 23일 마지막 일정인 미국 마셜 장군과 처칠의 회담 ->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1이제 11월 24일로 넘어감11월 24일 오전 9시 30분 첫 일전 합동참모회의 ->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211월 24일 오전 11시 두 번째 일정인 루즈벨트 - 처칠 회의 -> 여기서 루즈벨트의 한국 언급The President said that he shared the views expressed by Mr. Molotov that the defeat of Japan would follow that of Germany and more rapidly than at present was generally thought possible. It seemed that the Generalissimo had been well satisfied with the discussion held the previous day. "There was no doubt that China had wide aspirations which included the re-occupation of Manchuria and Korea.""중국이 만주와 한국 재점령을 포함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3 Historical Documents - Office of the Historian Historical Documents - Office of the Historianhistory.state.gov그 다음 일정은 24일 오후 마샬 장군과 장개석의 회담 ->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No official record of the substance of this meeting has been found)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4오후 2시 30분 장군들 회의 ->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524일 마지막 일정 루즈벨트 대통령과 이집트, 그리스, 영국, 유고슬라비아의 대화 ->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6그리고나서 11월 24일 오후부터 카이로 회담의 초안이 미국 측에 의해 본격적으로 작성되기 시작함루즈벨트가 직접 수정해가며 만든 초안: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pg_39911월 24일 미국 대통령 특별 보좌관 홉킨스를 거쳐 수정된 내용: 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pg_401 Historical Documents - Office of the Historian Historical Documents - Office of the Historianhistory.state.gov포인트 1. 초록색 부분 만주와 대만은 중국에게 돌려줘야한다고 쓴 것포인트 2. 한국의 독립에 관해서는 "가능한 가장 빠른 순간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적혀있음이에 대한 앞 문장에는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의 기만적인 노예화 (treacherous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by Japan) 이라는 문구가 있음초안이 전달되고 오전에 루즈벨트와 영국 외교관 캐도건 Alexander Cadogan의 대화가 있었음 ->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No official record of the substance of this meeting has been found)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d267이후 11월 25일 다른 회담들도 내용에 대한 기록 없음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ch5subch4그리고 11월 25일 미국한테 초안 건네받은 당일에 영국 외교관 캐도건에 의해 수정된 영국의 초안 버전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pg_404페이지 주석에 따르면 손글씨 첨삭은 처칠의 것으로 보인다고함위의 루즈벨트 버전과 비교해보겠음-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지들도 식민지에서 수탈했던 과거가 찔렸는지 "일본이 기만적으로 훔친(so treacherously stolen)"을 그냥 stolen으로 바꿈- 일본이 폭력과 탐욕(violence and greed)으로 취한 모든 영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덧붙여짐- 한국의 독립에 대해 "가능한 가장 빠른 순간에" 문구가 사라지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in due course)" 라는 문구가 생김위에서 이미 말했지만 이것은 캐도건이 작성한 초안이고 처칠이 한국 부분에 대해서 캐도건과 상의했는지에 관해서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음그리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free and independent)" 문구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 자체에 대한 반대를 했다는 증거는 없음위의 초안에 처칠이 친필로 첨삭한 부분은 한국과 전혀 관련 없는 부분이고무엇보다도 11월 25일에 처칠이 미국과 대립하고 있던 부분은 유럽 이슈임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3CairoTehran/pg_407처칠한테는 지금 나치 조지는 문제만 중요하다고 ㅋㅋㅋ장제스한테는 김구가 있었고 루즈벨트한테는 머한 초대 주딱이 있었지만처칠한테는 아무도 없고 한국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알못 노상관이라고 ㅋㅋ7. 그래서 최종적인 선언문https://en.wikipedia.org/wiki/1943_Cairo_Declaration"The several military missions have agreed upon future military operations against Japan. The Three Great Allies expressed their resolve to bring unrelenting pressure against their brutal enemies by sea, land, and air. This pressure is already rising.""The Three Great Allies are fighting this war to restrain and punish the aggression of Japan. They covet no gain for themselves and have no thought of territorial expansion. It is their purpose that Japan shall be stripped of all the islands in the Pacific which she has seized or occupi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first World War in 1914, and that all the territories Japan has stolen from the Chinese, such as Manchuria, Formosa, and The Pescadores, shall be restored to the Republic of China.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With these objects in view the three Allies, in harmony with those of the United Nations at war with Japan, will continue to persevere in the serious and prolonged operations necessary to procure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Japan."11월 25일 버전 영국쪽 초안에서 거의 달라진게 없음8. 당시 "한국" 문제에 대한 영국의 의견최영호. (2013). 카이로선언의 국제정치적 의미. 영토해양연구, 5(), 56-85.영국이 제국주의 국가고 지가 갖고있던 아시아 식민지를 2차대전 후에도 유지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였던 것은 사실임영국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식민지배가 스스로 생각해도 양심에 존나 찔렸고이 문장들이 다른 식민지에 영향줄거 생각해서 일제의 제국주의를 강력하게 패는 문구를 뜯어고친것도 사실임하지만 조선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국은 한국의 독립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저때 상황에서 영국 입장에서 더 경계하고 있던 것은 오히려 중국이 한국을 흡수하고 아시아에서 패권을 되찾는 것이었음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도 영국은 아직 홍콩을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거든그러니까 한국에 대한 영국의 입장은"짱깨새끼가 한국 독립하자마자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집어삼키는 꼬라지는 절대 못본다절차에 따라 나중에 독립시키되 일단은 신탁통치로 보호하자" 였던거임결론: 처칠이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에 반대 -> 그런 말은 기록에도 없고 당시 영국의 이해관계에도 맞지 않는 일임그러면 지금 커뮤에 떠도는 저 짤의 원 출처 기사는 증거 제시도 못하는 주장을 왜 저렇게 어그로끌기 좋게 제목에만 써놨을까?저 기사의 작성자, 일본 류코쿠 대학 교수 리 소테츠(이상철)"조선족 출신""일본으로 귀화""우익 입맛에 맞는 말만 해줌"혐한질 때문에 불매운동 일어났던 쪽본 DHC tv채널 출연해서한국에 이런 한국 비하글이 있다고 책에서 통계도 제시한다고 한국인 국내 여론을 사칭함조선족 출신 + 중국에서 기자활동 하다가 일본으로 귀화 + 한국인을 사칭하며 혐한 날조자료로 좆본 우익들 입맛에 맞춰주는 말만 해주는 방송 패널다른 어지간한 매국노들도 따라하기 힘든 역대급 씨발 3관왕 달성사실 매국노도 아니고 애초에 한국인이 아니었던 중국계 일본인한국인인척하는 중국계 일본인ㅋㅋㅋ날조 아니라도 어차피 갈리폴리좌 깔거 많은데 국민 여론이나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는 날조 선동글을 이렇게? 싶었는데 ㅋㅋㅋㅋ그러니까 1. 저 기사는 짱깨석이 한국 독립에 크게 기여했다고 장제스 찬양을 위해 처칠이 하지도 않은 말로 한국인들 선동하는 글을 쓴거고2. 영국 혐성밈에 환장하는 근첩찐따들이 저 기사 출처를 숨기고 문장 짜집기해서 역사 지식인 것처럼 커뮤에 뿌리고다닌거임아직도 처칠이 독립 반대했다는 조선족 날조 선동 믿는 빡대가리들 능지 수준ㅋㅋㅋ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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