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울제 복약 후기 - 우울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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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울제 복약 후기앱에서 작성

ㅇㅇ(211.36) 2023.05.31 11:17:57

조회 71 추천 5 댓글 3

우리 남매는 아주 어릴 때 부터 부모님들이 다른 어른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10살 아동의 눈으로 보기에도 어른이라기엔 뭔가 지나치게 유치하고 독특한 욕망들과 감정선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아도 '뭔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풍기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둘 다 또라이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나와 누나 또한 어딘가 고장난 어른이 되고 말았다.

지난 수 십년간 부모님한테 화 내지 말아야지, 저 못 배운 노인네들 몰라서 그런거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못 본 척 넘어가야지

수 십번 다짐해도 결국 눈 앞에서 신경 긁는 짓거리들 하는게 보이면 참다참다 결국 터트리곤 했다.

그리고 혼자 후회하고 잠 못자고. 빈 말로도 훌륭한 부모였다곤 못하지만 그래도 낳은 자식 책임은 져 보겠다고 비루한 삶을 살면서도 아둥바둥 노력했던 것은 알기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런데 2년 전 항울제 복용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변화가 시작됐다.

아무리 못 배운 행동, 이해 못할 고집, 어린 시절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언동들을 보아도

어? 또 저러네?

... 잘 몰라서 그랬나보다ㅎ;

하고 무던히 넘길 수 있게된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다짐하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반복하던 것들이 호르몬 조절 한 방에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 깨달았다. 아, 병이었구나

어린 시절의 분노가 영구적 인격 손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 동안 마음 공부랍시고, 정신을 다스리겠다고 했던 수 많은 노력들은

마치 인대가 끊어진 사람이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았다.

내 정신의 인대는 끊어져 있었다.

인대를 이어 붙이거나 목발을 짚는 대신 그저 무작정 남들 처럼 달리려고만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울제는 치료제가 아니다.

물이 새는 바가지에 잠시 휴지를 틀어막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 있어야할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오르막길이라도 꾸준히 나아갈 순 있지만 낭떠러지를 맨 손으로 기어올라갈 순 없다

나는 이제 인대가 끊어진 채로 목발을 짚으며 낭떠러지에 계단을 놓아보려고 한다

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노력이라는 것을 해 볼 수는 있는 곳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정닉 3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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