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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님을 위한 시 한편 올려드림앱에서 작성

순정(182.231) 2024.10.21 00:48:51
조회 27 추천 0 댓글 5

                         부고 

                                                      차도하 


 여름이 죽었다. 그 부고는 날이 선선해져서 이제 슬슬 여름이 끝나가는구나, 하며 얇은 카디건을 챙겨 입는 도중, 오래 연락하지 않던 지인이 문자를 보내주어 알게 되었다. 끝나간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죽을 줄이야. 하긴 누군가 신도 죽었다고 했고 재작년 이맘때쯤 김희지도 죽었는 데 계절이라고 못 죽을 거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김희지는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이름이며 그가 죽어 있는 현재까지도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가장 친한 친구의 기준이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김희지는 내가 말랑한 복숭아를 좋아하는지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지부터 나의 취향을 나보다 더 잘 꿰고 있다. 

 여름이 죽었으니 복숭아는 이제 어느 계절에 먹나.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서 봄이랑 가을이 없어진다고들 하던데 여름이 먼저 죽어버릴 줄이야.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은 거라면 역시 자살인가, 자살이겠지, 그러나 나는 여름이 왜 죽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런 게 예의라고 배워서. 

 가을이 왔으니 슬슬 여름옷을 정리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연락을 들은 후 여름옷을 정리하자니 유품을 정리하는 것 같아서 손이 느리게 움직여졌다. 그나저나 여름옷과 여름옷이 아닌 건 어떻게 구분하나? 나는 옷이 별로 없고 여름에 입던 옷에 날씨에 맞추어 얇거나 두꺼운 겉옷을 더 입는 방식으로 가을을 보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건 확실히, 여름 것이지. 휴양지에서 입어보려고 마음먹고 산 흰 비키니를 들어보았다. 

 여름의 사체를 발견한 것은 아마도 가을이려나. 가을이 여름과 왕래할 거라는 추측은 그저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와서, 라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을 뿐이다. 연이어 불린다고 친한 사이가 되지는 않겠지. 나도 나란히 앉았던 짝꿍들과 늘 친했던 건 아니었다. 걔네들은 요즘 뭐 하고 살려나. 매일매일 옆자리에 앉는다는 게 생각보다 더 특별한 일이었다는 건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고. 

내가 겨울에 종종 여름 생각을 하듯이 겨울도 여름 생각을 하려나. 겨울은 여름의 부고를 겨울이 되어서야 듣게 되려나. 그런 순서라면 봄이 가장 늦게 들을 텐데. 봄은 초록을 꺼내면서 자신 다음에 초록을 더 맹렬하게 하는 여름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 것이고 

 아. 없구나. 진짜로 없는 거구나. 영영. 
 걔가 있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이미 없었구나. 

 그런 걸 깨달을 때는 정말, 정말이지 너무 슬픈데. 슬프다는 말 말고 다른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슬픈 데. 나는 봄이 늦은 부고를 받게 되지 않도록 급하게 필기구와 편지지를 찾아 봄에게 편지를 썼다. 쓰고 나니 편지지는 언젠가 김희지한테 선물 받았던 사진엽서였고 꽃도 과일도 열려 있지 않아 무슨 나무인지는 짐작하기 힘든 나무를 찍은 풍경이 뒷면에 프린팅되어 있었다. 

 나는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고 여름 과일들이 저번주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마지막 복숭아여, 다음주만 돼도 못 먹어. 
 과일 파는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홀린 듯이 샀다. 

집에 돌아와서는 옷 정리를 다시 할까 하다가 드러누워서 복숭아를 먹었다. 
복숭아는 나의 취향보다 조금 더 물렁하고 달았다. 
아, 이제는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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