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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소설 감평좀 ㄷ앱에서 작성

칠사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12 17: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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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로판 속 용 조련사가 되었다





다를 것 없는 하루가 또다시 시작했다.


냉혹하지만 뜨거운 여름날이다. 마구간의 더러운 냄새는 도통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익숙하게 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들어 말들이 가지런히 서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밥은 아침에 줬으니 이제 말의 몸을 씻길 차례이다.


원래라면 기사의 말은 종자가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가 일하는 페스톤 백작가에서는 그런 일이 극히 드물었다.


영지 내에서 기사들을 육성하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페스톤 백작가는 이미 완성된 기사들을 용병처럼 고용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용병처럼 기사를 고용하면서 종자처럼 따로 챙겨야 할 게 없는 기사들만 고용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말을 관리할 종자가 없다.


가끔 종자를 데리고 다니는 기사가 있긴 한데, 그런 경우에는 기사의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나거나 종자가 귀족집 도련님인 경우이다.


“더러운 새끼.”


한참 늦게 들어온 주제에 내게 침을 찍 뱉는 백작가의 망나니 도련님, 부벨 페스톤처럼.


물론 이 정도의 욕설은 귀여운 수준이다. 아무것도 없이 소설 속으로 빙의한 지 17년이 넘어가는데 욕이라고 적게 들었을까.


이 백작가에서는 백작이 황제나 다름없는 것처럼, 부벨 페스톤은 황태자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욕지거리 몇 번 내뱉는다고 감히 반항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에, 난 바보같이 실실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물로 씻겨놓았으니 도련님은 수건으로 닦기만 하시면 될 겁니다. 도련님.”


사실, 저런 어설픈 손놀림으로 말을 닦는 것보다는 자연풍에 말리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건, 말의 관리가 잘못됐다고 도련님이 혼날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결국 그 화살은 내게 돌아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17년 동안 발전한 내 처세술의 결과이다.


“야.”


아쉽게도, 도련님의 오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언제 내 걸 남기라고 말했냐?”


자기 아랫사람을 다루는 모습을 보아하니 훌륭한 기사가 되기에는 한참 글러 먹은 듯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나는 또다시 바보처럼 겁먹은 표정을 지을 뿐이다. 저런 애들 장난 같은 짓은 언제든 넘어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마구간의 더러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사죄했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굵어진다면 진심이 하나도 묻어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무식하게 자라온 단순하고 무식한 도련님이 아니던가. 이런 내 모습에 또 기분이 풀렸는지 끔찍한 웃음소리를 몇 번 내더니 내 뒤통수에 침을 짝 뱉고는 마구간을 나가버렸다.


한참을 땅바닥과 이마를 맞대고 있던 나는, 발걸음이 더는 들리지 않자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그 지랄 같은 도련님이 사라졌다. 또 과자나 아작아작 씹어대며 뒹굴뒹굴하려 제 방으로 사라졌으리라.


나는 그제야 몸을 제대로 일으켜 마른 수건으로 뒤통수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는 반대쪽으로 뒤집었다.


이런 일은 익숙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이 찾아온 고아를 받아주어 일이라도 시켜주는 페스톤 백작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딱딱한 길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것보다는 도련님에게 욕을 먹어가며 짚단 위에서 잠드는 게 더 낫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했으니까.


말들의 갈기 정도만 수건으로 대충 닦아주면 금세 마구간의 일과가 끝나게 된다. 아직 일과는 끝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말들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빠르게 저택의 주방으로 달려갔다. 마구간에는 시계가 없다는 게 가장 커다란 흠이었다.


도련님 때문에 늦기라도 했으면 오늘 밥은 굶어야 한다. 다행히 도착한 주방은 아직 식자재를 준비하느라 바쁠 뿐이었다.


“빈센트! 빈센트 있나!”


“예! 방금 왔습니다!”


“쓸모없는 새끼! 뭐 하다가 이제야…. 아니다. 어서 씻고 설거지나 준비해라.”


주방장은 내 몰골을 보고는 단박에 그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 더러운 행색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면죄부가 생기는 건 아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빠르게 몸을 닦아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주방에서만 입기로 결심한 깔끔한 옷을 입은 채, 한가득 쌓인 그릇과 식기 더미를 보고 심호흡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17년째 하는 생각이지만, 중세풍 판타지는 어느 하나 좋은 게 없었다. 화장실도 양변기가 아니고, 수도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설거지하기 위해서 물을 몇 바가지를 떠 왔지만, 이 정도 양으로 모두 끝낼 수 있을까 진지하게 걱정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짝 소리가 나도록 양 뺨을 두들기고는 그릇을 집어 들었다. 잿물로 설거지를 하려니 21세기식 세제가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어릴 적부터 설거지를 거듭해온 손은 아이 특유의 부드러운 피부는커녕 흉하게 변한 지 오래였다.


그래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을 때는 내가 이 저택에서 설거지라도 하면서 남을 수 있는 게 누구 덕인가를 생각한다.


백작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리 큰 결심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깊은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설거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모두 끝낸 후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낮에만 하더라도 시끄럽게 움직이며 요리하던 사람들도 해가 지기 시작하니 모두 퇴근한 모양이다.


아이 혼자 맡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일인데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주방장의 생각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정말 기적처럼 남은 한 바가지의 깨끗한 물로 혹사당한 손을 닦아내고, 얼굴에 튄 잿물까지 모두 씻어냈다.


어느새 더러워진 옷에 얼굴을 박박 문질러 닦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쌓여있는 잉여 식자재에서 감자 몇 알을 집어 들었다. 이게 오늘의 점심이자 저녁이고 내일의 아침이다.


그래도 오늘은 다섯 알이나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텅 빈 물통에 감자 네 알을 집어넣고 한 개는 먹으며 주방을 떠났다.


달이 떠오르는 시간에 마구간으로 걸어간 나는 짚단 위에 걸터앉아 감자 두 알을 남기고 모조리 해치웠다.


종일 주린 배에 무언가가 들어오자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제대로 된 포만감을 느껴본 적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가.


벌레조차 잠에 빠져드는 깊은 밤이 될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혹사시키면 이런 일이 제일 문제다. 온종일 활성화된 정신이 도통 의식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억지로 예전에 살던 세상을 상상하며 잠을 청한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일어날 것이다.


늦잠 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더라도, 어차피 직장 없는 백수인 나는 침대에서 몇십 분을 뒹굴다가 일어나겠지.


더러운 중세식 화장실이 아닌 제대로 된 양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에서 씻고,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꺼내 오늘 뭘 시켜 먹을지 고민할 것이다.


친구…는 몰라도 소설 정도는 볼 시간이 있겠지. 주문한 음식이 오기 전까지 소설 10편 정도를 보면 배달원이 음식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그 배달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감사합니다.’ 하며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신나서 식탁으로 뛰어가겠지.


뭘 시켰을까. 치킨? 피자? 혼자 먹을 거니까 치킨이 더 낫겠지. 박스를 열기만 해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치킨이.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치킨 뒤적거려 다리를 찾아내면, 그대로 집어 입으로 가져갈 것이다.


바사삭, 하는 맛있는 소리가 들려오면 입안에는 육즙이 흘러 들어올 것이다. 어찌 보면 느끼하지만 어찌 보면 고소한 그 오묘한 맛을 느끼며 한참을 씹고 있겠지.


더는 씹을 게 없을 정도로 씹다 보면 목구멍으로 넘기고 곧장 한 입을 더 먹겠지. 다리를 다 먹으면 날개를 먹을 것이고, 날개를 다 먹으면 퍽퍽한 가슴살도 먹을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목뼈는 손도 대지 않겠지만, 지금 같은 때에는 모가지를 가져오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잠에 빠진 줄도 모르고 한참 치킨을 먹는 꿈을 꾸면, 문득 내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꿈에서 빠져나온다.


눈을 떠보면 빌어먹을 마구간의 천장이 보인다. 여전히 그 빌어먹을 소설 속 세상이다.


“씨발.”


나는 일어나 짚단을 정리한다. 양동이 몇 개를 들고 우물로 걸어가 물을 담고는 낑낑대며 마구간으로 다시 끌고 온다.


양동이를 저 구석에 치워두면 새로 들어온 사료와 짚단의 상태를 살펴보고 여물을 먹인다.


다를 것 없는 하루가 또다시 시작됐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마구간에서 말을 관리하다 도련님에게 화풀이나 당할 것 같은 그런 하루.


어째서인지 아침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가 마구간까지 퍼진 걸 제외하면 말이다.


끼리릭.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름 돋는 소리에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말의 갈기를 정리하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빗을 내려놓았다.


원래라면 마구간에 수레 소리가 들릴 일은 거의 없다. 짚단을 더 쌓아둔다면 지게를 쓰고, 새로운 말이 온다면 말을 끌고 오겠지.


나 또한 3년 전에 만물상이라며 고물을 잔뜩 실은 수레와 함께 무단으로 들어온 정신 나간 영감탱이를 제외하면, 마구간에서 수레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무시할 수 없을 일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말들이 갑자기 겁에 질린 듯이 연신 울부짖기 시작했다.


“야. 너네 왜 그래?”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녀석들이다. 처음에 왔을 때나 긴장하지, 그것도 일주일 정도만 보살피면 잘 적응하는 게 말이라는 동물이다.


그런 말들이 갑자기 공포에 질린 듯이 울부짖는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으스스한 한기에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린다.


끼릭거리는 수레 굴러가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마구간을 뛰쳐나갔다.


기사들이 수레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감싸진 무언가가 수레 위에서 날뛰고 있었다.


“어어! 움직이지 마!”


기사 하나가 수레 위에 올라가 머리로 짐작되는 부분을 후려치자 더욱더 거세게 반항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거칠게 흔들리는 무언가의 몸을 따라서 검은 천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튀어나온 그것의 일부. 커다란 구멍이 몇 개 뚫린 거대한 날개였다.


“아오, 씨발!”


도통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 기사가 신경질 내며 검을 꺼내 들었다. 곧장 모가지라도 잘라낼 속셈인 듯싶었다.


“야! 저 새끼 막아!”


기사 몇몇이 칼을 빼든 기사를 막아서고, 나머지가 마저 그것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열 명이 넘게 달려들었는데 제압하지를 못한다고?’


억눌렸던 호기심이 폭발했다. 기사들이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는 지금, 홀린 듯이 그것에게로 걸어갔다.


그래도 보기만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가짐을 품은 채로.


눈치채지 못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녀석이 더욱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자신을 제압하려는 사람이 줄었다는 걸 눈치챘는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몸부림치던 녀석이 결국 검은 천을 완전히 걷어냈다.


“키야아아아아악!!”


제한적인 자유를 얻어내고 제 몸을 펼치는 녀석의 모습은 도저히 동물이라고 할 수 없었다.


도마뱀을 닮은 머리에 구멍이 뚫린 날개.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비늘, 그리고 악어보다도 두꺼운 듯한 꼬리.


초라하지만 장엄한 그 모습에 견딜 수 없던 나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씨발! 빨리 술식 켜!”


위엄있는 포효를 내뿜은 녀석이 그대로 경직하더니, 온몸의 힘이 다 빠진 듯이 축 처진 채 쓰러져 버렸다.


쓰러지는 도중에도 애처로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동자에 홀려 한동안 멍하니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이봐. 괜찮아?”


넋을 놓고 저 괴생명체를 바라보는 내 어깨를 툭, 건드리는 기사가 있었다. 도저히 목소리를 낼 자신이 없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겁지겁 마구간으로 뛰어갔다.


“허억…. 허억….”


조금 전에 대체 뭘 본 걸까. 내가 봤던 건 헛것이 아니다. 기사들이 그걸 제압하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을 봤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마주친 그 애처로운 눈빛은 도저히 헛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애상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씹….”


다르게 말해, 불쾌했다. 17년 동안 온갖 정성과 노력은 전부 들여 드디어 안정적인 일상을 쟁취해냈다.


아무리 괴롭힘당하고 매일같이 혹독한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사실은 내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길거리로 나앉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제는 제목과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 속에 빙의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기 마련이다. 적응만 한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분명히 용이었지. 아니, 드래곤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알기로 용은 동양의 신성한 동물을 뜻하고, 드래곤은 서양의 거대하고 불 뿜는 도마뱀을 의미한다. 조금 전에 본 녀석은 박쥐 같은 날개에 도마뱀 같은 머리를 갖고 있었으니, 따진다면 드래곤일 것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이 어지러워 한 번 고개를 흔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말 몇몇이 투레질하며 내 손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협이 가셨다고 생각하나 보다.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빗을 집어 들어 말의 갈기를 빗었다. 기분이 좋다는 듯 고개를 살짝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는 걸 보았어도 내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으레 판타지 세계라면 드래곤 정도는 있을 테고, 난 이 세계가 판타지 세계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을 뿐이다.


그럼 기사들은 대체 왜 드래곤을 잡은 걸까. 문득 생각난 의문이 머릿속의 모든 잡생각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몸은 저절로 움직여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성과…는 아니겠지. 재산이 넘쳐나는 페스톤 백작가에서 돈이 쪼들린다고 이미 검증된 기사들한테 실력을 증명하라면서 억지를 부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뭘까. 자기과시? 그것도 백작령의 기사 대부분이 모여서? 모르겠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의문은 꿈에서까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 *


“오, 빈센트냐?”


“오랜만입니다. 기사님.”


멋들어진 콧수염이 일품인 알프레드가 아침 일찍 마구간에 와 있었다. 꽤 초라한 몰골로 늠름한 기사를 맞이하자니 양심이 불편했다.


“괜찮네. 그냥 말이랑 산책이나 하고 싶을 뿐이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이 알프레드는 자기 말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말에게 가벼운 무장까지 시키는 걸 봐서는 도저히 산책이라 보기 어려웠다.


혹시 알프레드가 무장하는 이유가 어제의 그 드래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갑자기 든 생각에 입이 근질거려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기사님. 혹시 어제 다른 기사분들이 끌고 온 게 뭡니까?”


“뭐, 따지고 싶은 거냐?”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존재 자체로 위엄있는 짐승은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하하하! 농담이네. 하긴, 그런 걸 보기가 힘들긴 하지.”


역시 드래곤인가. 머릿속의 가설이 조금씩 들어맞는 듯했다.


“그런 걸 왜 끌고 온 거랍니까? 날개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상처 입은 걸 봐서는 꽤 격렬한 싸움일 것 같은데….”


“기사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너무 기사들을 물로 보는 게 아니냐?”


“그런가요?”


“잘 훈련된 기사 한 부대면 나라 하나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한 거냐?”


“제가 워낙 촌놈이라….”


“쯧. 이왕이면 백작령 밖으로 나가기도 해봐라. 다른 사람들은 다 쓰는 휴가도 너 혼자만 안 쓰잖냐.”


“그건….”


막연한 두려움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판타지 세계에 어린 몸으로 떨어졌다는 그 미지의 공포가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신을 옭아매고 있으니.


휴가를 쓸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내가 백작령에서 일하는 건 시종으로서 일하는 게 아니니까.


부모 하나 없는 고아라는 측은한 배경으로 백작령의 기사에게 주워진 나는 백작가에 ‘마구간 관리인’으로 고용됐다.


몸이 자라기 시작한 이후로는 주방일도 하고 싶다고 사정사정한 끝에 설거지도 도맡고 있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노예 따위가 아닌 자유인이다. 백작가 도련님이 날 노예처럼 부린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차피 바깥에 아는 것도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나중에 술집이라도 가보는 게 어떠냐? 곧 성인이니까 말이야.”


“술이라….”


확실히 이 세계에서 본 적이 없는 것 중 하나였다. 호기심이 들기는 했지만, 그 뒷일을 감당하기는 싫었다.


“나중에라도 해보죠.”


거절이다.


“그래. 혹시 누가 날 찾으면 산책하러 나갔다고 말해다오.”


“아, 기사님.”


“왜?”


“굳이 드래곤을 잡아야 할 이유가 있던 겁니까?”


“…뭐?”


“아니, 백작님이 성과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게 아닙니까?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백작령을 지키라고 고용한 기사들이니까요.”


“지금 무슨 말을….”


말에 올라타려던 알프레드가 도로 말에서 내려왔다.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갑자기 드래곤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그야 어제….”


“어제?”


알프레드가 잠시 어제의 일을 생각하더니, 탄식을 내뱉었다. 짜증이 몰린 것 같은 얼굴에 살짝 측은함이 물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백작령에 드래곤은 없어.”


“예?”


“네가 어제 본 건 드래곤이 아니야. 와이번이지.”


“와이번…이요?”


“그래. 애초에 다리가 두 개 밖에 없지 않더냐?”


“그…런가요?”


“드래곤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들이 가끔가다가 착각한다고는 들었지만…. 정말로 착각할 줄은 몰랐다.”


“그, 그럼 와이번은 대체 왜 잡은 겁니까?”


“도련님 때문이지.”


갑자기 그 새끼가 왜 나오는 거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부벨 페스톤이 왔는지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도련님이 와이번을 잡아 오라고 했다고요?”


“그래. 귀족 영식 사이에서는 와이번 경주 같은 게 있다고 하더라고.”


기사 여럿이 고생해야 하는 와이번을 가지고 경주한다니. 대체 귀족이란 뭐길래 그럴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그 와이번을 누가 키운다는 겁니까?”


“그걸 알면 나는 기사가 아니라 집사겠지. 안 그런가?”


그의 이름에서 박쥐의 집사를 생각했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문이 모두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알프레드는 말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드래곤이 아니라 와이번….’


알프레드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하긴, 대부분 판타지에서 나오는 용은 하나같이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곤 했었지. 도저히 수레 위에 실을 수 없을 테니까.


기지개로 찌뿌둥한 몸을 펴고는 쌓여있는 짚단을 여물통에 가득 담으며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백작령에서 드래곤을 잡든 와이번을 잡든 내가 키우지 않는 한은 나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니 말이다.


* * *


“지금 뭘 키우라고 하신 겁니까?”


“와이번.”


“아니, 그래요. 아니지, 와이번을, 제가 말입니까?”


“그래.”


“저는 어제 와이번을 처음 봤는데요?”


“네가 마구간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뭐라고 말했지?”


“어…. 그건 엄청 옛날 일이니까 당연히 기억이….”


“말은 처음 본다, 시키기만 한다면 열심히 하겠다.”


페스톤 백작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자기 아들과는 다르게 노련한 느낌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부벨 페스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조선시대 탐관오리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페스톤 백작은 왜적을 때려잡으며 승진을 거듭한 전설적인 무관 같았다.


“…저는 제가 한 소리가 말에만 해당하는 의미였다고 생각하는…합니다.”


“그럼 와이번을 이제 말로 취급하면 되겠군.”


“아니,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어. 자네 말고는 이 영지에서 동물과 친한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돼지 같은 부벨 페스톤이 돼지랑 더 친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백작의 표정에서 더는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전문 와이번 사육사를 고용하면 되는 게 아닙니까?”


“….”


“…설마.”


백작이 대답을 망설인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둘 중 하나로 야기됐을 것이다. 페스톤 백작가가 파산 직전으로 몰렸거나, 와이번을 불법으로 들여왔거나.


“황궁에서 파악하지 못한 와이번 둥지가 있더군.”


역시나.


“기사들을 그쪽으로 파견시켜서 사로잡을 수 있었지. 깨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알이 있는 걸 봐서는 어린 개체였고.”


“어미는 어디 갔는지 어떻게 알고….”


“죽었을 테지.”


“…어째서 그렇다는 겁니까?”


“한 달을 매복시켰어. 아무리 장수종이라고 해도 한 달은 외출이라고 해도 너무 긴 시간이지.”


“그렇지만 너무 위험한 일인데….”


“내게 남은 유일한 핏줄이야.”


도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백작의 눈에서 도무지 정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진한 그리움과 후회스러움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어미까지 잃어버린 아들을 위한 선물이라면, 내 목숨이라도 내놓아야 하지 않겠나?”


“….”


저는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라며 말하기에는 너무 거북한 분위기였다.


“그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사육사로….”


“그러니까 자네를 부른 걸세.”


“….”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백작이 겨우 마구간 관리인인 나를 신뢰한다는데, 내가 뭘 어쩔 수 있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와이번 관리 일까지 허락받았다. 그것 때문에 주방일과 공짜 감자는 포기하게 돼버렸지만 말이다.


‘이제는 돈 주고 밥을 사 먹어야 하나.’


백작가에서 일하기만 한다면 공용 식당에서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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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기 세보여도 실제로는 멘탈 약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11/04 - -
공지 최신 트렌드 뉴스를 한눈에! 디시트렌드 운영자 24/11/06 - -
2258852 아 염병 내일 약속잇는데 이게 얼마만의 약속인데 나머하냐 [1] DongTan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7 0
2258850 때 아닌 새벽에 사기공명 머임 삐리릭빠바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0 0
2258849 작년 12월 썰을 지금 꺼내는건 일부러 그러는게 아닐까 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6 0
2258848 그림을 잘그리려면 ㄹㅇ 뭔가 뇌에서 소중한걸 하나 포기해야하나.. [2] 루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1 0
2258846 나도 일러비 100만원 사기 당한 적 있다 ㅇㅇ [3] 이시하º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99 0
2258845 치코리 진짜 욕나오네 ㄹㅇ 데부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4 0
2258844 근데 이 저주 되게 풀기 쉬운... [6] 설아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7 0
2258842 치코리 모두가 방심하고있던 찰나에 날카로운 훅- 하루한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2 0
2258840 왜 발암썰에 드레싱을 뿌리십니까 칠사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7 0
2258839 근데 아트머그가 뭐임?? 진짜모름 DongTan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4 0
2258838 나도 3성인자 드디어 뽑았네ㅋㅋ [2] 아니야왜냐하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5 0
2258837 진짜 대문호는 다르구나.......... ㅇㅇ(211.117) 22.08.11 25 0
2258835 사건의 시작.jpg [8] 히메사카노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18 9
2258834 아니 칙오리는 왜 썰마다 발암물질임 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7 0
2258833 저도 근데 초딩때 포켓몬팔아서 돈벌때 20만원사기당함 DongTan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7 0
2258830 애초에 여우가 카톡으로 야짤을 보낸게 잘못 아님? [5] ㅇㅇ(118.235) 22.08.11 109 13
2258828 솔직발언) 나도 아트머그에서 떼먹힌 적있다 [18] 칙허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14 7
2258827 근데 당장 카톡정지되면 ㄹㅇ 어케사냐??? [6] 바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5 0
2258826 묘우 나한테 짤도그려줫는데 며칠전에 DongTan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4 0
2258825 생각해보니깐 소설이나 만화 빌런들도 마음이 약했음.... [1] ㅇㅇ(211.117) 22.08.11 14 0
2258824 그래서 커미션 짤쟁이가 피싸개임? [3] 설아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6 0
2258823 cj택배갤보고 마음 좀 가라앉음 [4] 삐리릭빠바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8 0
2258820 여우가 엮이는 사건은 볼때마다 어지럽네 진짜 [3] 에수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50 0
2258819 ㅋㅋㅋ 놀리고 싶은데 너무 심각해서 놀릴수가 없네 ㅇㅇㅇ (49.142) 22.08.11 30 0
2258818 이거 떡밥이었네 ㅇㅇ(1.177) 22.08.11 32 0
2258817 본인이 갤 보면서 덜덜떨고있는 묘우면 개추 ㅋㅋ ㅇㅇ(121.133) 22.08.11 62 8
2258815 악마적 쿠팡박스 해체쇼 끝났다 [2] 부지튀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4 0
2258813 판갤 까불지마!!!!! 데부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4 0
2258812 묘우 단가가 어케됨 [1] 히메사카노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64 0
2258811 떡밥 지켜보고있는 나 [6] 칠사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7 0
2258810 진짜 커미션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금 생겨나네... [1] 마교졸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3 0
2258809 반응은 ㄹㅇ여린마음인데 아니야왜냐하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4 0
2258806 새벽떡밥 재밋네.. 니에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4 0
2258805 구글에 묘우 검색하다가 심연을 들여다본거 같은데 [2] 설아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96 1
2258804 3일 정지라 괜찮을줄 알았다 << 이게 존나 웃김 ㅋㅋ 콥등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6 0
2258802 외주 두개 밖에 안해본 사람은 서러워서 쓰나... [2] 위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8 0
2258801 여우떡밥 어지럽네... [2] 마교졸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6 0
2258800 cj택배갤이왜있는데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 [4] 삐리릭빠바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4 0
2258799 걍 찌른 이유가 ㄹㅇ 피분수 그자체라 존나웃김 데부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5 0
2258798 이스탄불 지하철 십창인 이유 좀 재밌네 ㅋㅋ 김해비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7 0
2258796 내가 그냥 최대한 담백하게 사실만 적고 끝내는게 낫겠음 [31] 건전여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1500 32
2258795 나정도면 정신병 상위티어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4] 박수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46 0
2258792 저희 소드우커 할까요? [9] 당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7 0
2258791 근데 왜 머땜에 묘우라고 하는거임?? DongTan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3 0
2258789 묘우가 누군지 구글검색을했더니 [2] 히메사카노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76 0
2258788 3일정지는 괜찮다는 그 마인드가 ㅈㄴ 웃기네 ㅋㅋ [2] 바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58 1
2258787 장담하는데 cj택배아니었으면 늦어도 어제 도착했음 삐리릭빠바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1 0
2258786 이사람이라고? [2] ㅇㅇㅇ (49.142) 22.08.11 77 1
2258785 김치찌개 << 이거가성비 존나좋은거 계속 끓이면 [1] DongTan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23 0
2258784 여우 ㄹㅇ 썰 개꿀잼이네 데부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11 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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