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클링겐베르그(fritz klingenberg, 1912~1945)
1912년 메클렌부르그 로베르샤겐에서 태어난 프리츠는
집안의 지원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 로스토크 대학교에 진학하여 역사와 과학을 공부했지만
1934년, 당시 엘리트주의 분위기 덕에 대학생들에게 인기있던 SS 친위대에 혹해서 대학을 중퇴하고 입대해버렸음
병신
쨋든, 입대 후 SS 전문 교육 기관인 SS-융커슐레른에서 교육을 받은 후 수습생으로 SS-VT(무장친위대의 전신, 당시엔 나치당의 치안ㆍ경호 전담)에 배치되었음
1939년, 전쟁이 발발하자 무장친위대가 본격적으로 발족
이후 프랑스 침공부터 대대적인 확대 개편되자 프리츠 또한 제2SS기갑사단 "다스라이히"에 배치되어 전선에서 구르기 시작함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도 참가한 프리츠는, 이전의 전공 덕분에 중대장으로 진급한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전설을 찍음
바로 단 6명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따먹은 것
전말은 이랬음, 당시 독일군은 대소 공격인 바르바로사 작전을 앞둔 만큼 속전속결로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하는 걸 목표로 뒀는데
당연히 베오그라드는 방어가 강력할 것으로 판단, 굳이 베오그라드 점령에 열중하는 대신 각지에 분산 배치된 유고군 전력 짤짤이에 집중했음
그러나 프리츠는 이런 수뇌부의 결정에 불만을 품었고, 코앞의 베오그라드를 두고 멍 때리는 걸 원치 않았기에 본인이 직접 나서기로 결정함 바로 자기 중대원 6명 데리고 베오그라드로 침투한다는 것
사실 당시 유고군은 초반 독일군의 기습 공세로 제대로된 사단들은 대부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전선에서 갈려나갔고 그나마 남은 사단들 또한 크로아티아 반란으로 발을 묶인지라 베오그라드는 2선급 징집병들이 방위하던 상황이었음
그래도 6명은 좀 어이없긴 한데 쨋든 프리츠는 호다닥 침투함
그리고 성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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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이럼
베오그라드 근처에 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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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방어가 드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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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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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군 만나면 "곧 우리 대군이 여길 들이닥친다"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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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힘, 유고군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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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한 유고군 몰고 다니며 모랄빵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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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유고군 대부분이 항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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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시청에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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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바글한 인원에 놀란 시장이 시청 열쇠를 주며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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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베오그라드 점령 성공
당연히 이런 대전과로 프리츠는 일반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인 기사십장 철십자상을 수여 받았다고 함
참고로 독소전엔 참전하지 않았음, 유고슬라비아-그리스 전투 이후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괴츠 폰 베틀링헨 사단으로 전속되었기 때문
전쟁영웅 보호 차원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쨋든 독소전이란 똥밭을 피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서부전선이 개막
1945년, 대령으로 진급한 후 자르브뤼켄 전투에서 미군 전차부대를 상대로 88mm 포로 열심히 싸웠다가 미군 전차 포탄에 정통으로 맞아 흔적도 남지 않고 사망함
운은 없었나 봄
끝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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