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등(back)을 맡긴다는 것은 그 상대를 향한 강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흔히 행해지지 않는 일이다. 룩백을 보는 관객들은 만화를 그리는 후지노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는 후지노의 뒤(back)에서 후지노가 그리는 만화의 배경(background)을 그리는 쿄모토의 시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후지노의 환상인지, 아니면 너의 이름은처럼 평행세계가 서로 이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후지노에게 구원받은 세계선의 쿄모토가 그린 4컷 만화의 제목은 後ろを見て!(뒤를봐!)라는 제목이다. 이 만화를 본 후지노는 닫혀있던 쿄모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쿄모토가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의 흔적들과 후지노가 그린 만화들이 몇 권씩 쌓여있었다. 그리고 쿄모토의 방문에는 그녀가 후지노와 처음 만났을 때 쿄모토가 자신의 등(back)에 받은 후지노의 사인이 적힌 옷이 걸려 있었다. 이 장면에서 크게 감탄한 것이, 자신의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쿄모토의 등 뒤에는 항상 후지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쿄모토가 밖으로 나갈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후지노의 이름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룩백을 보는 관객들은 앞에서 봤던 장면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후지노가 쿄모토에게 건넨 "너도 내 등을 보고 성장하는구나."라는 말을. 창작물에서 어떤 인물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의 성장, 혹은 그 성장의 계기를 의미한다는 것은 흔히들 알고 있는 연출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그 흔한 연출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쿄모토가 학보에 그림을 투고하기 시작한 것은 후지노의 만화를 봤기 때문이었다. 쿄모토가 집 밖으로 나온 것도 자신의 집에 찾아온 후지노 때문이었다. 시내로 나가 여러 경험을 하게 된 것도 후지노가 쿄모토를 밖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쿄모토의 성장에는 언제나 후지노가 있었고, 그녀가 좇는 것은 언제나 후지노의 등이었다. 반대로 후지노의 경우, 학보에 올라온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그림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다. 좁혀지지 않는 쿄모토의 그림과의 격차에 좌절하고 그만두기도 하였으나, 쿄모토의 칭찬에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등(back)을 좇은 것이다. 두 사람은 항상 서로의 등을 보고 있던 것이다.
영화 후반부, 만화적 연출로 표현된 장면에서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건네는 질문이 있다. "후지노는 왜 만화를 그려?" 그 질문 뒤에는 후지노와 쿄모토, 두 사람이 지금까지 함께 만화를 그려왔던 추억이 파노라마의 형태로 재생된다. 그녀가 보는(Look) 과거(Back)의 회상, 거기에는 항상 쿄모토의 모습이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후지노가 다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여러 단편을 그려내며 만화가로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항상 쿄모토가 그녀의 뒤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니까. 그녀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쿄모토의 존재인 것이다.
영화는 후지노가 다시 만화를 그리는 모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길게 비춰주다가, 늦은 밤 그녀가 작업실에서 나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때 관객들이 바라보게(look) 되는 것은 그녀의 뒷모습(back)이다. 이것은 과연 관객만의 시선일까. 저 모습을 쿄모토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내가 쿄모토의 시선으로 후지노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과연 나만의 착각일까.
1회차 때는 다른 세계선의 쿄모토가 미대에서 그리고 있는게 무엇인지 보지 못했는데, 2회차 때 확인한 결과 닫힌 문이었다는 것도 참 흥미로웠음. 아마 자신의 방문을 그린 게 아닌가 싶은데, 회색 베이스로 몽환적이지만 음침하다고도 느껴지는 분위기로 그리다니... 초등학교 때 후지노와 만나지 못해 후지노의 사인이 적힌 옷이 걸려있지 않은 쿄모토의 방문이란... 그 세계선의 쿄모토에게 집 밖이란 항상 불안이 도사리는 세계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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