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닌 사건이었다



무면허운전했다가 단속 걸린 사건


듣기만 해도 공소사실 인정하고 제발 선처해주셈 이렄케 싺싺 비러요 하면 집유 받고 끝날 사건이었다



이 아재는 내 앞에 앉아서 '저도 법을 알 만치 아는 사람이라,  변호사 안 사고 혼자 재판 나가도 끽해야 집행유예 받고 끝날 거 다 압니다. 의견서 쓰기 번거로워서 변호사님께 사건 맡기려는 거니까, 수임료 좀 저렴하게 해주시죠.'라고 꺼드럭댔다.


초임 때면 좀 긁혔을지도 모르겠는데, 짬이 좀 찬 지금은 오히려 저렇게 '내가 직접하기 번거로워서 변호사 찾은 것일 뿐'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반갑다.


변호사 수임료라는 게,  은연중에 330 정도가 하한선처럼 인식되고 있는 측면이 있어서 보통 '그럼 기본적인 수임료인 330만 받는 것으로 할게요' 시전하면 다들 불만없이 수임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편인지라, 어려운 사건 수임료 세게 받고 골머리 썩히느니, 그냥 관성처럼 서면 써서 내면 끝인 330짜리 사건이 속 편하기 때문임.


여하간 적당히 맞장구쳐주면서도 '말씀하신 부분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생각하시는 대로 실형선고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겠습니다.'라고 안내하고, 330에 약정서 쓰고, 수임료 입금 확인까지 시마이.


그 상태로 공소장 줘보라 해서 검토를 해보니


띠용 이 아재 23년 2월경에 음주운전 집유 판결을 받았었다.


"사장님, 23년 2월에 판결받으셨던 거 선고형량이 어땠어요?"


"아 그게 징역 1년에 집유 2년인가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  그럼 아직 이전 판결의 집행유예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이번 건으로 입건되신 거네요?"


이게 뭐가 문제냐...


이전 형사판결상의 집행유예기간이 만료되기 이전에 새로 범죄를 저지르고 입건되면, 그 신규건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면서 이전 사건 판결에서 실형 유예시켜줬던 걸 취소해버리기 때문임. 즉, 이 아재는 이번 사건 자체는 암만 잘 틀어막아도 이전 사건에서 유예됐던 실형선고분이 스노우볼처럼 굴러와서 감옥살이할 처지가 되어버린 거임.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서 겁 ㅈㄴ 줬고, 저런 결과를 피하려면 이런 저런 사유 들어서 재판을 지연시키고, 이번 사건 판결 선고일을 어떻게든 2025년 2월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말해줬다.


변호사를 사네 마네 하던 의뢰인이 변호사님 제발 도와주십쇼 하며 태세전환할 때의 쾌감은... 늘 ㅅㅌㅊ...


계약서 수임료액 550으로 얼른 고쳐적게 하고, 지금 당장 병원 가서 입원치료가 됐든 수술이 됐든 예약하고 의사 소견서 떼오라고 시킴.


그렇게 첫 공판기일 이틀 전 즈음에 '본 변호인이 오늘자로 사건을 수임하여 기록 검토 등에 시간이 필요한 뎃수웅'이라고 기일변경신청서 내서 공판 한 달 미루고, 그렇게 미뤄진 공판기일 전에 '피고인 본인이 지병력으로 말미암아 입원치료 중 or 수술을 앞두고 있어 재판에 출석하기 어려운 뎃수웅'이라고 기일변경신청 함 더 때리면? 12말1초는 법원휴정기, 1말2초는 법관인사이동시즌... 다음 공판은 빨라도 2025년 3월초에나 잡힌다.


그럼 우리 아재는 이전 사건 집유기간 만료되고 나서 이번 사건 판결을 선고 받게 되니,  실형선고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여하간 이렇게 아재와 나 모두가 만족스러운 낯으로 상담을 끝냈다.


본인... 주둥이 좀 털어서 수임료 이백 더 땡겼고, 아재... 자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실형선고각 회피무빙을 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렇게 아재를 떠나보낸 뒤에 법원에 꽃힌 빨대한테 연락해서 이 아재 이전 사건 판결 조회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호고곡 이 아재 자기가 선고받았던 형량도 잘못 기억하고 있었네?  징역 1년에 집유 2년이 아니라, 징역 1년6월에 집유 3년이농 ㅋㅋㅋ 즉, 아재의 이전 사건 집행유예 만료일은 2025. 2.가 아니라 2026. 2.였던 것이다.


판사가 대가리에 총 맞지 않는 이상 피고인놈 일신의 사정 때문에 재판을 일 년 넘게 미뤄줄 리는 없으니... 아재게이야ㅋㅋ 니가 바라는 실형선고 회피?  그런 건 절대 없다ㅋㅋㅋ


변호사는 늘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상담하는 중간중간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강조 또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