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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감상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10 17:10:54
조회 168 추천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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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 이거 세카이계 아님??



미리 하나를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피와 기름>은 맘몬이 다시 쓴-아마도 묵시록일까?-위경에 가깝다. (아니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정론>일수도-믿음과 돈과 물질이 모두 분간하기 힘들 수준으로 서로 뒤엉켜 예수가 황야에서 굶주리던 시절 떠올리던 빵과,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목격한 빛과, 개개인이 도저히 부품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없이 정교하게 짜여진 현대 속에서 짓뭉개졌다가 빠르게 치워지는 시체와, 도저히 관측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빠르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다가 어느 순간 어느 한쪽으로-치솟거나, 쳐박히거나-튀어오르는 그래프가 이 안에서는 모두 같다. 그래서 위대하신 주님의 자연 속에서 강물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가 구원받은 일과, 개입할 수 없게 빽빽하게 정렬된 도로 위에서 차량의 격류가 서로 뭉개지는 일과, 흐름을 알 수 없이 미친듯이 흘러가는 도박에 참여하는 일이 모두 같다. 제정신으로는 그 모두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같다는 데에 동의하자.


최우혁은 신성한 기적을 목격한 자로서, 그런 이유로 도박과 교통사고에 심취해 있다. 도박중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간은 매번 무언가를 딸 수 있는 기회비용의 순간인데, 정작 그 시간의 흐름은 그 어떤 단위로도 제대로 쪼갤 수 없는 완비체에 가깝다. 1시간 단위로 거래할 수 있는 것과,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 거래가 가능한 암호화폐를 생각해보라. 시간이 얼마나 잘개도 쪼개지며 1분 동안에 기회비용이 얼마나 거대해질 수 있는지! 그 생각이 가득한 머릿속은 환각 가득한 대환난 그 자체일 테다. 그렇기에 그는 (도박중독자의 시선에서) 현실 일상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고 (신비체험자의 시선에서) 세속 현실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는다. 그를 눈뜨게 만드는 건 오직 무언가 신성한 일 뿐인데, 도박을 위한 동전이 뒷면으로 떨어졌다가 신성한 손이 외적으로 개입해 이를 앞면으로 되돌려놓는 일이나, 금속으로 된 차량의 물결이 서로 부딪히며 대분쇄되는 다중 추돌 사고는 그 좋은 예시다. (그걸 떠올리며, 자신을 구원한 소년을 떠올리며 자위하는 모습은 J. G. 밸러드의 <크래시>를, 손의 개입을 묘사하는 방식은 브레송의 여러 영화를 대놓고 연상시킨다)


그런 상징으로서의 신성함과 별개로, 신성한 심판을 내리는 이도유가 있다. 이 소년은 1999년 12월 31일에 신성한 심판을 내릴 예정인 감독이었고, 세상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한에서 미래를 보거나 누군가를 되살리는 기적을 선보일 수 있다. 그의 존재는 세속에서 유일하게 신성함을 공급하는 원천이나 다름없으며, 현실은 말 그대로 그를 착취해 새로운 자원, 신성의 원천으로 활용한다. 이 발상은 본디 그 자리에 스스로 앉고 싶어했던 조강현에 의해 제시되었고, 이후 주인공 최우혁에 의해 실현된다. 100명 이상의 교통사고 사망자를 대낮에 되살리는 기적은-<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맥락에서-대심문관의 빵이 되었고 세상은 큰 의미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어쨌든, 여전히 세상은 좋은 삶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착취하는 삶이라는 원죄를 안고 있으며-선진국의 삶이라는 것이 신학적 의미에서 그 자체로 죄악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건 그리 어렵진 않을 듯하다-그 가운데에 주식 종목을 추천하는 소년 이도유가 있든, 예수주의라는 요상한 종교를 퍼뜨리게 된 삼십대 최우혁이 있든 큰 차이는 없다. (둘 다 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 속 한 장면, 마약중독 촉수괴물이 마약중독 소년을 화간/강간하며 삶을 약탈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감이 있다)


반면 최우혁과는 다르게 반응한 조강현이 있다. 그는 경건한 도덕주의로 무장한 신정주의자로, 이도유의 기적과 돈의 힘으로 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엄밀히 말해 그는 이 주님의 도덕을 아버지의 법처럼 받드는 고아에 가까운데, 고아로 태어나 시설에 살며 다른 무엇보다도 조씨 성을 가진 아버지를 원하던 조강현이 이 새로운 하나님 아버지의 언어를 흉내내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라캉의 맥락에서. 우혁과 함께 철학 동아리에 있었던 인물 '김 형'의 존재는 어쨌든 조금 노골적으로 소설에 철학적 도식을 삽입하는 역할을 하는 감이 있는데, 이는 혹시라도 조세희에 대한 라캉적인 서술을 독자가 따라오지 못할까봐 살짝 길을 깔아주는 배려, 라면 배려고 약간은 작위적일수도 있는 장치다) 그러나 흉내는 흉내일 뿐이며, 그는 결코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도, 이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저 자유주의자-혹은 이를 흉내내는 슈미트 풍의 카테콘-의 입장에서, 이를 완전히 모사하는 체계를 자신의 외부에 구축하는 것으로 이런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을 뿐이다. (나는 이를 소설의 다른 언어인 경영/경제의 어휘를 빌려 일종의 테일러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이 광적인 신성의 세계에서 한발짝 물러난 현실주의자-라고 하기에는 전향자에 가깝기는 하다만-김 형이 살며시 소설의 무게추를 잡으며 균형을 잡는다. 그는 우리가 신성한 것도, 현실적인 것도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매우 제한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늘 강조하며, 이도유가 내리는 심판의 책임을 누구도 대신 질 수 없음을, 최우혁의 현실도피성 경향과 조강현의 경건주의적 의지를 동시에 어른-곧, 사회인-이 되지 못한 유아적인 태도라고 지적한다. (언어와 태도의 진정성을 마지막으로 논한 것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의 근대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김 형은 참으로 현대인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우혁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면서도 의식적으로 속세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하며, 대환난 같은 환각 체험과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간다. 그의 태도는 우혁이 삶을 책임진다는 최후의 결정을 내리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신성을 공급하는 원천으로서든 어떻든 간에 우혁은 카이사르의 세상에서,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주며 살아가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사용되는 소품이 신학과 현대 영미 그로테스크 계보를 결합한 데에 반면 서사 도식은 오히려 90/00년대 일본 판타지/SF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느냐-혹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느냐-마느냐를 정하는 것이 이도유라는 소년 하나의 등에 달려 있는 것과, 이를 구하기/실행시키기 위해 이도유를 데려가는 우혁,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정의 책임을 우혁이 느끼게 되는 것까지. 그로테스크의 꿈틀거리는 살점을 전부 떼어낸 채 유골만을 화석으로 만든다면 미래 세대는 <피와 기름>을 세카이계라고 부를 것이다. 그 점에서 참으로 의아한 것은 이 모든 책임이 서로 맞물려 있는 세 사람-최우혁, 이도유, 조강현-이 모두 남자라는 점인데, 이 셋이 서로 매우 끈끈한 애증 관계를 이루며 이도유는 최우혁 속에 녹아들고, 조강현은 마지막에 적당히 모르는 척할 것은 모르는 척 넘어가는 친구로 남는 것은 <피와 기름>을 동성애의 맥락에서 보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상하지는 않다만, 최소한 내 지식으로는 그래보인다) 덕분에 작가의 말에서 윤리학, 신학, 정치철학, 시장 등이 징그럽고 무섭다고 말한 것처럼, 나 역시 BL과 세카이계가 징그럽고 무섭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요는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훨씬 더 매끈한 형태로 선보인 적이 있다. 소설 <인버스>는 여자 주인공-처럼 보이지는 않지만-을 내세워 맘몬의 권세를 어디까지나 상징의 영역으로만 남겨둔 금융신학 소설로, 화자가 극한의 상황에서 겪었을 대환난은 거의 표현되지 않되, 현대에서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안고 살아야 하는 돈/원죄의 역학, 자신이 살기 위해 삼킨 누군가의 살점을 훨씬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허나 <피와 기름>에서 그 개인에 대한 동정은 사실상 세계라는 보편성의 이름으로 사라져버리며, 어떤 의미에서는 오직 피학적인 자기학대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선진국의 삶이 피해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그게 나쁘지는 않고 신학이 삶을 원죄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을 설명하기에 그럭저럭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 공감이 어디까지나 독자를 한정했을 때에야 상호 동의 가능한 영역에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되는 감이 있다. 나는 그 영역 안에 있으며, <피와 기름>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러나 그 상상되는 바깥이 약간 무섭다. 그냥 그 정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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