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조선 숭정 연간 원릉대왕 때의 일이라.
충청도 태안군 사는 개불동이는 그 고을 양반집 남양 홍씨 집안의 노(奴)였는데성격이 게으르고 둔해서 일을 하기 싫어하더라. 김을 매라 하면 바닥에 주저앉아서 개미가 잡초를 타는것만 구경하고 비가 궂어 도랑을 내려 하면 도랑에 들어가 물장구나 치기 일쑤여서 댁에서는 개불동이에게 일을 시키려 하지 않더라. 그러나 일을 시키지 않으니 행랑채 문을 열고 멍하니 하늘이나 바라보거나 담벼락 밑에 난 풀을 뜯어 쓸어 놓은 마당 바닥에 흩어놓기나 하고 있으니 이는 또 집안 종들이 보기 고까운지라 댁의 어르신이 이를 두고 걱정하였는데.
조정의 법도가 지엄하니 노둔한 아랫것을 따끔하게 가르쳐야 했으나 워낙에 뾰족한 수가 없다 보니 대부인과 유모와 집사는 물론이고 다른 종놈에 심지어는 온 마을사람들도 개불동이 천성을 고치려면 죽이거나 내쫓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더라. 그러나 차마 다섯 대를 이어 댁에서 종살이한 정이 있는데다가 아비와 어미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니 그 정을 보아 종놈을 죽이거나 내쫓지는 못하고 다만 새벽닭이 울면 늙은 소 한 마리를 주어 치도록 하고 해가 떨어진 뒤 한 각이 지난 뒤에야 들어오도록 쪽문을 열어 주니 그나마 게으름 부리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라 여기더라.
하루는 여름날 소나기가 내리고 개불동이가 소를 몰고 언덕에 올랐는데, 비가 내려 천지 사방이 축축하게 젖어 흙탕물 투성이가 되었으므로 마음껏 누워 잘 데가 없자 언덕 위 너럭바위에 자다가 해가 떨어지면 그제서야 소를 몰고 집으로 갈 셈인가 하였는데.
젊은 종놈은 소야 너는 참말로 좋겠구나. 마음껏 풀이나 뜯어먹고 오너라 하고는 너럭바위에 널브러져 잠을 자는데 절기로는 한여름 복날이요 천기로는 비가 그쳐 해가 마치 화로 속 숯덩이 돌덩이 같은지라 땀으로 목욕을 하고는 자다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머리에 불빛이 번쩍 하길래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았더니.
"말세로다, 말세야!"
하여 보니 개불동이를 때린 것은 삿갓 쓰고 장삼 걸친 것이 영락 없는 중놈인데 오른손에 커다란 명아주 나무에 옻칠을 하고 지팡이로 삼은 꼴이 그 두툼한 지팡이로 개불동이를 때렸나 보다.
개불동이가 머리에 난 혹 쓰다듬으며 소리치기를
"네 이놈 무슨 일로 멀쩡한 사람 머리 이 골로 치었느냐?"
하니 중놈이 대답하는데
"동방 인의국에 도덕이 높아 위아래 구분이 지엄하거늘 어찌 종놈이 밭도 아니 갈고 김도 아니 매는데 그렇다고 주인 댁 마당이라도 쓸지 아니하느냐?"
하였다. 개불동이가 대들며
"중놈아 말 잘한다. 위아래 구분하되 나는 종놈이고 너는 중놈인데 종놈이나 중놈이나 반상 갈라도 그 안에 낄 데 없으니 천하기 매한가지라, 어찌하여 중놈이 종놈을 함부로 치느냐?"
누더기 입은 종놈 말 치고 반듯하여 중놈이 깔깔 웃으며 말하기를
"종놈도 말 잘 하누나! 중놈이나 종놈이나 천하기 하나이되 종놈 본일은 주인을 받들어 노고하여 일함이고 중놈 본일은 석씨를 받들어 노고하여 염불함인데 종놈 때린 중놈은 석씨 모셔 염불하나 중놈 맞은 종놈은 복날 땡볕에 낮잠이나 자고 있거늘 종놈 중놈 차이가 듣기에는 비슷하나 하는 일은 다르기가 하늘과 땅 같으니라."
개불동이가 대뜸 소리쳐
"중놈 삿갓 썼다고 앞까지 안 보이느냐? 내가 누웠다고 어찌 일을 아니 하였겠느냐. 옛부터 사람이 뜻을 품으면 안방에 누워서도 천하를 굽어 살핀다 하였거늘 하물며 언덕에 앉아 코 앞의 소를 풀 뜯게 살피는데 비록 누웠으나 어찌 내가 일을 아니 하였다 하느냐?"
하고 사방 팔방 고개를 돌려 소를 가리키려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어이쿠, 큰일 났네! 풀 뜯던 주인마님 누렁 황소 어디 갔누! 이를 어쩌나, 이를 어째! 낮잠 자다 소를 잃었네그려!"
하는데 중놈은 깔깔 웃으며
"종놈 하는 짓이 참 우습다! 뙈약볕에 낮잠 자다 중놈에게 얻어맞고 일한다 우겼으니 참으로 소를 치고 있었으면 주인 댁 가서 경을 칠 일이요, 혹은 낮잠이나 잤으면 변명이 치졸하구나!"
하였다. 개불동이는 중놈 하는 말을 들을 새가 없어 이리저리 날뛰며 소야 소야 불러댔으나 날뛰어도 방 백보요 불러도 소가 말을 할 줄이나 아나. 개불동이는 땀만 빼고는 중놈 앞 너럭바위에 털썩 쓰러지는데 그 소리 크기도 해라, 중놈이 듣고서는 "예끼, 복 떨어진다." 하고는 껄껄 웃더니
중놈이 개불동이 보고
"종놈이 이제 큰일이 났구나. 지팡이 한 대 맞았다고 없는 소 찾으러 헐레벌떡 뛰어다니지는 않으리라. 그래 이제 어떤 낯으로 주인 댁 돌아갈꼬?"
"제에기 모르겠다. 나는 왜 종놈으로 태어났누! 차라리 소였으면 여름에는 파리 쫓으며 풀이나 뜯고 겨울에는 뜨뜻한 외양간서 엉덩이 지지며 놀 것을! 내가 전생에 공덕이 모자라 왕후, 장상 말할 것 없이 양반도 못 되었거늘 오히려 부족하여 마소로 났으면 공연히 주인 마님 일 나와 소 잃고 경 치지는 않았으리라!"
하였는데 개불동이 하는 소리가 재미있는지라 중놈이 개불동이 놀려먹을 심산으로 깔깔대며
"종놈 이제 보니 불심이 깊다. 기왕 이리 된 거 날 따라 머리 깎고 내 사미(沙彌) 됨이 어떠하뇨?"
하였으나 개불동이 일 없다 하자 다시 말하길
"내 일 않는 종놈 괘씸해 큰 벌 주려 하였으나 네 불심이 깊은지라 어여삐 여겨 오십 년 닦은 수도에 도력이 무학대사에는 못 미치나 대사님을 소에 대어 보면 쇠꼬랑지 만큼은 쌓였으니 내 신통력을 베풀어 그대를 소로 만들어 소원 하나 들어줌은 가하겠느냐?"
하니 개불동이는 깜짝 놀라며 말하는데 그 말투가 아까와 달리 사뭇 공손한지라
"스님이 참말로 그런 신통력이 있단 말이오?"
하니 중놈이 과연 그러하다 하였으나 단서를 붙이되
"한옛날에 혼돈씨가 태극을 낳되 음양과 오행이 순환하기를 우주 만물 중생 중에 인간이 총명하거늘 하필이면 소가 되길 바라는고?"
개불동이 대답해 말하기를
"인간이 총명하다 하나 씨를 잘못 태어나 왕후, 장상 되지 못하고 종놈으로 타고난 총명함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저 양물이 달아나도록 일이나 해야 하니 차라리 마음 편히 놀고 먹는 마소가 나은지라 그리하길 바랍니다."
하였다. 중놈이 깔깔 웃는데 참으로 즐거워 보이는지라 오냐 그러마고 등짐 풀어 누르께한 바가지 하나를 꺼내는데 개불동이 자세히 보니 바가지가 아니라 소 대가리 되게 깎은 탈인데 한쪽에 커다란 뿔이 난 것이 영락없이 숫소인지라 개불동이
"스님, 그 탈은 숫소 탈이 아니외까."
하니 중놈이 그럼은? 하고 되묻는데 개불동이 말하기를
"숫소는 일 년 삼백 육십 날 뙈약볕 아래 쟁기 지고 밭 갈고 멍에 메고 달구지 끄니 그 팔자 종놈보다 나을 게 없소. 하려거든 숫소 말고 암소 탈로 주사이다."
하였다. 중놈이 다시 깔깔 웃고 종놈 참 아까부터 말 잘 한다 하고는 숫소 탈 내려놓고 암소 탈을 꺼내고는 개불동이 얼굴에 덮었는데 소 대가리가 사람 머리 다섯 개 들이이니 머리 위로 암소 탈 덜렁덜렁 하는 꼴이 우스꽝스러워 개불동이도 낄낄 웃고 있으니 중놈이
"세상에 큰일 날 일이로다. 소새끼가 뒷발로 서 걸어 다니느냐."
하자 개불동이는 좋다고 낄낄 웃으며 네 발로 엎드려 음메 하고 소 울음 소리를 내고는 중놈 하는 꼴 보니 봇짐에서 커다란 쇠가죽이 나오자 속으로 생각하기를
"참으로 중놈 짐이 신기하다. 저 조그만 짐에 어찌 이런 물건들이 나온단 말이냐?"
하는 동안 중놈은 엎드린 개불동이 등에 쇠가죽을 덮어 씌우며
"소 꼴이 참으로 불쌍하다. 가죽은 어디 가고 맨몸으로 다니는고?"
하며 개불동이 엉덩이를 철썩 때리니 개불동이는 왜 자꾸 때리시오 속으로는 말하려 했으나 입으로는
"음머~!"
하는 소리만 나오자 개불동이 깜짝 놀라 참으로 소가 된 줄을 알았다. 중놈이 소가 된 개불동이 코뚜레를 잡고
"등허리가 잘 빠지고 궁둥이가 커다란 것이 필시 다산(多産)하는 암소인데 주인 잃고 떠도니 소 임자는 얼마나 슬플꼬? 내 비록 석씨를 모시는 중놈이나 소 잃은 임자 달램도 중생 구제 술수로다."
하고는 개불동이를 끌고 남양 홍씨 기와집 앞에 찾아가서
"이리 오너라"
하여 부르고는 말하길
"중놈이 역마살이 끼어 절간에 얌전히 있지 못하여 산천을 유람하되 어찌하여 좋은 소가 임자를 잃고 풀밭에 떠돌고 있으니 혹시나 이 댁의 소가 아닌가 하여 끌고 왔소이다."
하자 홍씨 대감이 문 앞까지 나와
"마침 우리 종놈이 소 치러 나가 해 지고 한 시진 때가 이미 술시인데 평소에 태둔하여 소를 끌고 도망쳤다 여겼거늘 종놈은 어쩔 수 없는 것이로되 소라도 건졌으니 선사께 입은 은혜 면이라도 대접해 갚으오리다."
하였으나 중놈은 정중히 거절하며 오직 말하기를 세상 법도에 임자 잃은 물건은 찾아 주는 것이 마땅할 뿐이거늘 저녁 한 끼 얻어먹으려 한 것도 아닌데다 술시 늦은 밤에 부엌데기 깨워다가 아궁이 불 지피고 상 차리라 하는 것이 석씨지도 따르는 자 염치가 아닙니다 한 가지 당부하되 저 소를 먹일 때는 무 청은 주지 말라 신통력으로 살펴 보니 소 팔자가 무 청을 삼키면 그 날로 죽을 팔자라 중놈 말을 들은 홍씨 대감은 고맙다고 거푸 말하고는 종놈 시켜 돈을 닷 냥이나 쥐어주어 돌려보내니 홍씨 대감은 참으로 삼 년이 되도록 소를 키우는데 무 청은 주지 않아 삼 년에 송아지를 꼭 다섯 마리를 쳤더라.
개불동이는 소 거죽을 뒤집어 쓰고 삼 년 동안 송아지를 네 마리를 낳았는데 새끼를 배고 갖은 고생에 낳을 때도 힘이 빠지고 뼈가 빠지는 것이 숫소 되어 밭 갈기보다는 나으나 차라리 소 거죽을 쓰지 않았으면 하여 다섯 마리 째 송아지를 순산하고 나서 중놈 하는 말 들은 바가 있어 무청 널어놓은 것을 한 됫박이나 삼키니 암소가 죽었는데 개불동이는 죽지 않고 암소 가죽을 벗은지라 기뻐 날뛰더라. 구경하던 무리가 신기하게 여기되 낯을 붉히므로 개불동이도 제 몸을 살피는데 암소 탈 쓰기 전 사내 몸뚱이가 아니라 계집 몸뚱이가 되어 있는데 손이야 사람 꼴을 갖췄다만은 발에는 소 귀며 발굽이 그대로 붙어 있고 쇠꼬랑지도 쇠뿔도 떨어지질 않았더라.
개불동이는 기절하고 온 집안이 뒤집혀 마을에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므로 홍씨 대감은 개불동이에게 사정을 듣고는 괴이하게 여기되 주변의 소문이 음험하므로 개불동이의 이름을 쇠꼬랑지[釗尾]라 붙이고는 첩으로 들여 얼자 셋에 얼녀 다섯을 두고 살았는데 실록에 '태안군 노 개불동이가 소가 되었다가 계집이 되므로 상께서 기이하게 여겨 관찰사 인명(寅明)으로 하여금 소상히 사정을 밝히게 하셨다'는 기사가 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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