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싫어. 덥잖아.”

“그럼 겨울은?”

“야. 내가 고민할 거리를 물어봐. 당연히 싫지. 춥잖아!”

“그럼 봄은 황사 때문에 싫겠네.”

“오. 이제야 감 좀 잡았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민했다.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가을은 어떠냐 하면 분명 싫다는 대답이 나올 듯했다. 그렇다면 맞춰보고 싶었다. 애는 왜 가을을 싫어할까? 매년 가을이라도 탔을까?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럴 리가 없지.

머리를 퍽 오래 굴렸는데도 모르겠다 싶어 말했다.

“가을은 왜 싫은데?”

“음, 여름이 멀잖아!”

김지오는 그렇게, 여름이 멀기 때문에 가을이 싫다고 말했다. 마치 크리스마스 다음 날 며칠이 지나야 다시 크리스마스가 오냐고 묻는 어린애 같았다. 이상한 건 어린애는 크리스마스를 사랑하지만, 지오는 여름을 싫어한다는 것.

“여름은 싫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그런 게 있어. 누가 나 만나러 온다고 했거든.”

지오는 수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휴.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껏 떠들었던 게 다 나를 놀리려고 한 거였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런 대사를 입에 담은 적이 있었다. 작년 여름, 나랑 지오는 연극을 했다.

둘 다 1학년인데도 소질이 있었던 건지, 그게 아니면 우리 얼굴이 반반한 덕이었는지 동아리 선배들은 흔쾌히 주연 자리를 밀어주었다. 장르는 로맨스. 여대였던 탓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남장을 했고, 지오에게 구애했다.

연극은 즐거웠다.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할 때면, 그 장면에 본디 인물이 느껴야 할 감정이 내게 딸려왔다. 평소 덤덤하게 살았던 내게는 짜릿한 경험이었기에 진심을 담았다.

“너를 이 지구의 크기보다 더 사랑해.”

지오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연극 할 때에 나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다.

“너 그거 도대체 몇 달 째야? 대체 언제까지 그거로 나 놀린 건데. 야. 네가 그러면 나는 뭐 써먹을 거 없을 거 같아?”

아아.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평소보다 음계를 족히 3개는 높인 다음 말했다.

“지구보다? 그러면 나는 우주보다도 너를 사랑해.”

나는 쌍심지를 키며 지오를 노려보았다. 내게 공격 당한 지오가 어찌 반응할까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예쁘장한 눈이 곱게 휘고, 입꼬리가 양 끝으로 치솟았다.

“고마워.

라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