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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ㅅㅂ 무안공항이 지어진 이유와 참사 발생 과정
179명의 사망자를 내며, 즐겁게 여행길에 오른 여행객들과 가족들을 비극으로 끌고 들어갔고, 이태원 댄스파티와 더불어 국제사회에 비치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꼬라박게 만든 무안공항 제주항공 추락 참사... 이 끔찍한 사고가 어째서 벌어졌을까? 우선 무안공항이 건설 된 배경에 대해 알아보자.. 무안공항은 다들 알다시피 홍어때 계획되었는데, 이를 추진한 인물은 홍어의 비서, 한화갑이라는 새끼였다. 이새끼는 노예의 섬 신안에서 태어났고, 4선 기간동안 벌인 주요 업적은 노무현 탄핵 찬성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위원직 상실 등이 있다. 무안공항은 기획 자체부터 말이 안 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미 활성화 된 다른 공항들이 근처에 있었으며, 위치부터가 뻘밭으로, 철새들의 주요 도래지 중 하나라서 버드스트라이크 위험 등으로 인해 기획 당시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등 토지보상 문제로도 많은 잡음이 발생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이를 묵살하고 신규 국책 사업으로 밀어붙혔다. 김대중이 이런식으로 진행한 또 다른 대표적 프로젝트에는 "여성부 설립"이 있다. 아무튼 당시 대통령이 밀어붙히겠다는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 무안공항의 건설은 확정이 났고, 여기에 현대, 삼성 등 쟁쟁한 건설사들이 입찰했으나, 지역 밀어주기를 위해 금호 컨소시엄이 낙찰되었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닌게 실제 시공 하청은 당시 전라도 출신 국토교통부 장관 안정남이 자기 동생 회사가 받아 진행하도록 손을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뭐 잡혀가거나 하진 않았고 건설비용 동생이랑 잘 노나먹고 끝남 ㅋㅋ 참고로 이번 사고의 원흉인 둔턱은 이때 만들어졌다. 이 공항은 애시당초부터 그냥 전라도에 국제공항 하나 짓고싶어서 억지로 진행한 프로젝트라 당초 계획한 목표인 연간 992만명 이용객의 2%에도 지나지 않은 인원만이 이용했고, 단 한번도 흑자전환이 된 적 없는 세금먹는 코끼리 같은 공항이었다. 아무튼 공항 지어줬으니 이쪽 지역에서는 "한화갑 공항" "김대중 공항" 이라고 이름잣자며 아주 잔치가 벌어짐 김대중이 다른 당 소속이었다면 각종 언론사에서 "김대중 공항 참사" 라며 어그로 끌었을 듯. 아무튼 무안공항의 짧은 활주로와 철새 문제는 건설 직후부터 계속 대두되어 왔고, 이명박 정부 때 국제선 대형 여객기의 이착륙을 금지시킨다. 무안공항의 병신같은 활주로는 전라남도 공무원들 마저 일을 하게 만들었는데, 전남측은 국토부에 활주로 연장을 계속해서 건의 해 왔으나.. 이새끼가 씹어버린다. 이새끼는 그것도 모자라 국제망신 잼버리로 유명한 새만금에 8천억 꼬라박아 "공항을 또" 짓는다 ㅋㅋㅋㅋㅋ 거기다가 무안공항에 편성된 재난비도 삭감시킴 ㅋㅋㅋ 결국 이걸 윤석열 정부 들어서 활주로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려고 시도했는데, 당연하다시피 민주당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었다. 아, 한가지 빼먹었는데 둔덕에 공구리도 문재인 정부때 쳤다. 문 정부 주특기가 비전문가 주요직에 앉혀놓기인데, 문제인이 앉혀놓은 제 4대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 아줌마가 공구리 갖다박았다고 한다 ㅋㅋㅋㅋ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거점공항인 무안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바꾸는 것이 이재명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계획된 이용객의 2%도 안 되는 숫자만 사용하는 공항인데 국제공항화 해서 세금을 더 꼬라박으시겠단다. 하지만 윤 정부때 너무 위험하다며 활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옴. 하지만 무안공항측은 이를 묵살, 그러다 12/7 계엄령으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탄핵되었고, 민주당 측은 이때다 싶어 곧바로 무안공항 국제선 운행을 개시한다. 결과는 21일만에 참사 발생. 어떤 당의 병신같은 정치쇼 때문에 무고한 여행객들이 몰살당한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의 2대 정당 홈페이지 가보면 이렇게 되어있는 상태이다. 이악물고 무안공항 참사의 책임을 회피해야만 하는 상황.... 참고로 병신 공약 밀어붙히다가 참사 발생시킨 이분은 본인이 죽인것이나 마찬가지인 피해자들 유족 찾아가 또 쇼하고 있다....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아직 한 발 남았다... 기대하시라.... "흑산도 공항"이 온다... https://m.dcinside.com/board/singlebungle1472/201049 싱글벙글 4000명을 위해 1833억을 꼬라박기 - 싱글벙글 지구촌 마이너 갤러리니들 홍어의 본고장 흑산도 알지?거기가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사는 섬 중에서 제일 오지인지라교통편이 씹창이라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르는' 곳이다.그래서 30년 전에는 한 번 경찰이 맘 잡고 흑산도 술집들 털어보니까흑산m.dcinside.com참고로 과거 흑산도 공항 건설에 반대하던 환경부 차관을 흑산도 주민들이 납치해 폭행한 사건이 있기도 했다.. End...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동독에서 수중으로 탈출하기
동독에서 물 밑으로 탈출하는 방법1. 1968년 Bernd Boettger 의 자체 제작 수중스쿠터Boettger는 수상스포츠를 좋아하는 엔지니어였는데, 1967년 7월 7일 그의 특기를 살려 수영으로 동독을 탈출하고자 했지만 실패했음.국경수비대에 붙잡혀 슈타지에 넘겨졌지만 동독에서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중요했기에 1년만에 풀려날 수 있었음.그는 다시 한 번 치밀한 수중 탈출 계획을 세웠고, 가솔린 동력 자전거의 2행정 엔진을 이용해 약 10kg 정도의 가벼운 수중 스쿠터를 제작함.잠수복은 서독에 있는 이모를 통해 구했고, 스노클은 직접 제작함.시험운행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1968년 9월 8일 단 한 번의 시도로 해안경비대의 감시를 뚫고 25km의 수중 항해를 통해 탈출 성공함.목표로 하던 스웨덴이 아니라 덴마크 쪽으로 표류하는 사소한 찐빠가 있었지만, 어쨌든 덴마크 등대선에 구조되어 서독 언론의 주목을 받음.2. 1969년 Manfred Burmeister 의 수중 스쿠터프라하의 봄 사태 소식을 들은 Burmeister은 동독 탈출을 결심함.하지만 그는 베를린 레이더 공장의 기술자로서 해상 탈출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음.그래서 그는 자동차, 모페드(소형 모터사이클) 등의 배기관과 모터를 이용한 수중 스쿠터를 제작함.내륙의 호수에서 성공적으로 시험 항해도 마쳤고, 덴마크로 탈출할 수 있었음.3. 1976년 2월 엘베 강의 유보트1967년 동독의 한 부부는 동독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함. 남편은 숙련된 열 공학 엔지니어였고 엘베강을 통한 탈출을 목표로 했음.부부는 잠수정을 제작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엘베강의 생태까지 연구하며 탈출 경로를 모색함.그가 잠수정을 제작하면서 특수용접 등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새로운 열공학 발명품이라는 핑계를 댔고,동독 경찰과 정보기관 슈타지도 이들 부부의 탈출 계획을 전혀 감지하지 못.그렇게 1975년 제작이 완료된 잠수정의 길이는 7m, 무게는 3,820kg, 직경은 0.87m 였으며,트랙터와 저상 트레일러로 엘베강까지 이동시키는 데도 성공했고, 서리가 내려앉은 새벽 1시 탈출을 시작함.하지만 여기서부터 불행이 시작됐음. 트레일러에 실린 잠수정의 밧줄이 풀리면서 너무 빠르게 입수해버렸고,부부가 닻을 내리는 것도 깜빡해서 잠수정은 표류하며 부부의 시야에서 사라져 감.다행히 부부는 200m 떨어진 하류에서 얼음 사이에 표류한 잠수정을 발견할 수 있었음.하지만 남편은 잠수정이 충돌의 충격으로 잠수도 안 되고, 조종기능이 고장나고 모터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함.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부부는 얼음을 깬 뒤 표류하는 잠수정에 올라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녹이며 무사히 탈출할 수 있기만을 기도했음.어둠을 이용한다면 표류하는 것만으로도 무사히 국경을 건널 수 있었겠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시간이 너무 지체됐기에 아침이 밝아왔고,결국 그들은 수로 건설 노동자들에게 발견되어 슈타지에게 넘겨졌음.슈타지는 잠수정을 꼼꼼히 조사해본 결과, 부부가 만든 잠수정은 최대 1시간 동안 30m까지 잠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고장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 없이 엘베강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음. 슈타지는 조사를 마친 후 잠수정을 폐기함.불행 중 다행으로 1979년 부부는 동독 건국 30주년을 기념으로 석방됐고, 결국 1982년 동독을 탈출할 수 있었음.4. 1980년 Walter Gerber 의 잠수함선박 전기 기술자였던 Gerber 는 집 차고에서 폴리에스터를 이용해 잠수함을 제작함. 잠망경, 다이빙 탱크, 호흡 장치 등 갖출 건 갖추고 있었음.1980년 8월 12일 그는 잠수함을 이용해 동독을 탈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잠수함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그는 해변에 배를 버리고 며칠 후에 체포됨.동독에서 감시하는 방법동독 해상 탈출을 막기 위한 군사적 책임은 퀼룽스보른(Kühlungsborn)에 주둔한 제6해상국경여단(6. Grenzbrigade Küste)에 있었음.이들은 동독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군견, 탐조등, 감시탑, 순찰선, 헬기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의심스러운 부유물을 감시하고 사격함.(아래 경비대 교육자료, *시체 사진 주의)군사적 감시 외에도, 시민들의 감시와 신고가 주효하게 작동했음.매년 발트해를 방문하는 수백만 명의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 역시 보트나 다이빙 장비 사용 및 야간 해변 산책이 금지되었고,숙박 시설의 방문객 등록 의무가 엄격하게 적용됨. 수상구조대는 깊은 물에서 에어 매트리스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막았음.또 국경경비대에 협조하는 자원봉사자들은 관광객이나 주민으로 위장해서, 보트를 띄우려는 사람이나 다이빙 장비를 운반하는 사람 등의심스러운 사람들을 감시하고 국경 무선송신 시스템 'Grenzmeldenetz'에 신고함. 이 자원봉사자들은 매년 240마르크의 수고비를 받았음.이렇게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약 40년 동안 대부분의 해상 탈출 시도는 이미 해변이나, 내륙의 기차역에서 저지당하기 일쑤였음.기발하고, 어떻게 보면 기이하기도 한 열정과 노력으로 동독을 물 밑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극소수였음.대표적으로, 바다를 통해 동독을 탈출하려던 사람들은 약 5609명에 달했지만 대부분 해변이나 내륙에서 체포되었음.그들 중 오직 913명만이 탈출 성공할 수 있었고, 180명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됨.출처 : H I Sutton - Covert ShoresMit dem U-Boot durch die Elbe - BundesarchivBaltic Border Tower Denkmal und Begegnungsort in Erinnerung an die deutsche Teilung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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