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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서 촉빠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jpg
삼국지는 주로 연의, 일본 코에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촉빠'로 입문하는것이 국룰인데나관중의 촉 분량 몰아주기와 소설에서 묘사되는 물러터진 유비의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조조를 신봉하는 '위빠'가 되는 경우도 많다.그럼에도 왜 '촉빠'가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1. 조조20세기 들어 빌런인 조조에 대한 재평가가 촉구됐지만 21세기 들어 정사 속 조조의 만행들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당대에는 역적, 후대에는 싸이코패스라는 여론이 다시금 굳어졌다.실제 정사에서 민간인 십수만을 학살한 서주대학살.자기세력 영끌해 절대자 만들어준 순욱을 본인이 황제가 되기를 간접적으로 반대하자 쥐도새도 모르게 숙청시키는등조조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근거들은 차고 넘친다.사료들을 읽으며서 소설로 각색하던 나관중도 혀를 내둘렀는지오히려 삼국지 연의에서 조조의 악행들을 상당부분 축소시켰다.2. 마오쩌둥위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마오쩌둥이 있다.'조조'는 지금의 중국을 만든 마오쩌둥이 가장 리스펙하는 인물로 드러났으며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인데 그 수가 무려 32회에 달한다.그리고 그 마오쩌둥의 의지는 시진핑 주석이 계승했으며 '조조의 의지'는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3. 쥐새끼촉의 '제갈량'이 행정력 max 를 찍었다면오의 '육손'은 군사능력 max 찍은 정사공인 0티어급 명장이다.정사에서 당대 군재로 이름좀 꽤나 날리던 유비,관우를 간단하게 패버린 능력자인데 모든 스탯이 육각형인데다인성까지 상당히 우수하여 수많은 오빠들을 양산하기 적합했지만이들의 리더인 손권이 서열 2위인 육손에게 '겐세이'를 마구 놓다 결국 홧병으로 사망케 했다.불패신화를 이룩하던 육손이었지만 아쉽게도 자신의 주군에게 1패후 1데스.비평가들은 이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어 결국 '손권의 노망'이라 정의했다.오빠들은 존재하지만 오의 실질적 전력인 '육손'을 따잇해버린 손권을 도저히 올려칠 수없어 팬덤의 수가 위,촉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다.4. 따잇의 따잇의 따잇조예의 총애를 받았던 사마의는 결국 고평릉 딸칵한번으로 조씨 일가를 몰살시키고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킨다. 그 과정에서 사마의는 위대한 성군이신 '왕망,동탁,조조와 같이'망탁조의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하사받았다.사마의가 뒤지고 그의 후손 사마씨 일가는 사치와 향락으로 점점 나라를 씹창내기 시작한다.당시 이 진나라가 얼마나 개막장나라였는지는 비평가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하다 지형적 관점에서 위,진은 고구려에게 숙적같은 존재였고 백제 입장에선 겉으로는 웃지만 뒤에선 칼꼽는 날만 기다리는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라 할 수있었는데위나라 따잇 이후 사마씨의 진나라도 얼마못가 개박살이 나자마침내 고구려는 '전성기 초입부'에 돌입하게 된다.5. 대갈량 촉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제갈량은고대부터 현대까지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데유비에게 황제권유와 절대권력을 약속받고도 유비의 어린 아들을 친아들처럼 보필했으며망하기 직전이었던 촉을 북벌이 가능한 나라로 끌어올렸다.더욱이 전장에서 54세에 과로사한 제갈량과 아들에게 제갈량을 친아비처럼 섬기라고 했던 유비의 군신관계는당대 후대 동서고금 통틀어 상당히 고평가 되고있는데실제로 조선에선 삼국지 연의를 소설이라 좋지 못한 시각으로 보았으나제갈량만큼은 대부분이 리스펙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일련의 사례로 위나라를 먹은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왜 X발 나는 제갈량같은 부하가 없냐"고 탄식할 정도.결국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인성 글러먹은 조위, 사마진을 빨긴 그렇고힙스터병으로 오를한번 빨아볼까 하다 손권의 이궁의 변을 맛보고다시금 제갈량의 원맨쇼인 촉으로 회귀하는 것이정통 삼국지를 즐기는 한국인들의 불문율로 남고 있다.좋은 글이면 개추
작성자 : MB고정닉
싱글벙글 덕수궁 석조전 관람기
덕수궁 시청 광장 바로 옆에 있는데 한번도 들어가본적 없었음 이번 기회에 한번 들어가 봄 투어가 9시 반인데 이때가 9시 25분인가 그래서 궁궐은 후다닥 사진만 찍고 바로 넘어감 석조전과 뒤에 보이는 현대 건물의 조화가 제법 볼만하다 석조전은 미리 홈페이지로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고 하루 심화 투어는 오전 20명 오후 20명 딱 2번 하는데 예약이 제법 치열함 이날도 예약 안하고 들어오려고 했던 아줌마, 외국인 등등 죄다 컷 당함 들어오자마자 중앙홀에서 보이는 고급 탁자 금박 다리에 대리석 몸을 가진 딱 봐도 비싸보이는 탁자인데 원래부터 석조관에 있던 것이고 이 책상을 배경으로 영친왕이 사진 찍은 게 있어서 석조관 재현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진이랑 책상 비교해서 주변 사물들 비율이나 수치를 계산해놨다고 함 책상 주변 물건들은 모두 재현품이다 그래도 정말 격조있게 잘 재현해놨음 귀빈대기실 벽난로와 라지에이타가 보인다 벽난로는 연돌이랑 연계해서 실제로 때울 수 있게 재현해보고자 노력해봤지만 실패했다고 함 벽난로 말고도 증기 라지에이타도 있긴 했지만 온돌에 익숙했던 한국인에겐 부족했는지 영친왕이 일본에서 귀국한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귀국하기도 전에 우선 라지에이타를 풀로 돌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맨 오른쪽 뒤에 있는 의자랑 투명 유리창 달린 전시장은 원래부터 있었던 가구라고 하고 나머지는 재현품이다 거울이 사람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당시는 거울이 고급 장식품같은 물건이었기 때문에 거울에 커튼이나 바깥 풍경이 비치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그렇게 배치했다고 함 석조전 100분의 1 모형 석조전은 영국인 건축가 하딩이 설계하였는데 건축 전 나무로 10분의 1 모형도 만들어진 적 있었지만 유실되었다고 함 그리고 의외로 철골 콘크리트 건물임 전쟁도 이겨낸 건 이유가 있다~ 이거야 남아있는 도면 건축 때 쓴 건 아니고 1930년대 일제시대에 석조전이 영친왕 숙소에서 미술관으로 전환되었을 때 일본측에서 측정한 것임 일본 지방 도서관에서 소유중이고 반환은 거절하고있다고 함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의례를 설명해주는 방 황제 접견실 제법 아우라가 넘친다 이 접견실에서도 실제 석조전에 있었던 물품은 의자랑 협탁 몇개 뿐이고 나머지는 재현품이라고 함 그래도 사진 보면 알겠지만 분위기 오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대리석이 정말 아름답다 올라갈 때 안전상 이유로 황동제 손잡이는 잡는 걸 허용해주는데 석조전에서 유일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물이다 그래서그런가 다들 꼭 쥐고 올라감 ㅋㅋ 고종의 생애를 소개시켜주는 방 고종 여자가 5명이나 있었냐?;; 처음알았음 흥선대원군, 고종, 순종 세면대와 욕조 주변에 수전이 하나도 없어서 좀 의아했는데 사용하지도 않을 욕조때문에 수도관을 따로 빼는건 좀 아니다싶어서 없다고 한다 고증상 욕조가 있어야할 곳에는 다 욕조가 있다고 함 황제 침실 아무래도 황제 침실인만큼 사진이 남아있지는 않아서 재현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저기 침대 옆에 보이는 옷장은 영국 가구회사인 메이플사 제품인데 그 메이플사의 당시 최고급 카탈로그를 참고해서 재현했다고 함 침대는 원래부터 있던 건 아니고 메이플사 앤티크 제품을 수입해 온 것 침대가 상당히 작아보이는데 이건 서양에서도 18세기 침대는 1인용 주문제작품이었기 때문에 모두 치수에 맞춰 제작되서 작았고 또 당시 귀족들이 기본적으로 베게 위에 몸을 올리고 앉은상태로 잤기 때문에 작다고 함 제정신인가?;; 전체적인 모습 황제 서재 황제가 책을 보거나 잘 아는 사람을 맞이할 때 쓰던 곳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방 중앙에 위치한 회전식 책장이 돋보인다 준공 당시 가구가 제일 많이 남아있는 방인듯 함 뒤에 있던 벽난로 황후 거실 황제가 쓰던 공간과는 주된 색상 배치가 조금 다르다 정확히는 거실이라기보다는 당시 서양 귀족/왕족이 쓰던 Boudoir (부드와르) 라는 개념의 방이라고 한다 양식 변기 재현품이지만 실제 당시 석조전에 양식 변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제법 신기했던 모양 황후 침실 황제 침실과 마찬가지로 사진이 안 남아있어 역시 메이플 사 카탈로그를 바탕으로 재현했다 황제 침실에 있던 쪼매난 침대가 여기서도 보인다 고급스러운 모습 중앙홀 바로 위 2층 영친왕의 사진 자세가 왜 이런가 하고 한참을 보고 있으니 가이드가 당시 영친왕 나이가 중학교 2학년이라고 설명해줬다 바로 이해함 중앙홀에서 나와 발코니에서 자유롭게 사진찍을 수 있는 시간을 줬다 기둥 사이로 석조전 별관과 궁궐을 찍음 기둥 사이로 배재중고등학교가 보이는데 배재터들이 석조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남아있었다 ㅋㅋ 마지막 장소인 대식당 행사 후 만찬하던 장소라고 한다 12인석인 이유는 대한예전에 남아있던 사료를 바탕으로 재현해서 그렇고 아쉽게도 사료에 어떻게 생겼었는지까지 서술되어있지는 않아 영국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현했다고 함 대식당 한 켠에는 마감되지 않은 석조전 건물의 내부를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 있다 붉은 벽돌을 써서 건축하는 것이 당시의 트렌드였다고 함 다 보고 나온 석조전의 웅장한 정면 모습.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프랑스에서 본 베르사이유 궁전의 내부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럽게 재현되어있어 조금 놀랐음 그럼과 동시에 당시 빈곤하던 대한제국의 백성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고급스럽게 꾸미는 것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이드도 설명하면서 정확히 그렇게 언급하며 당시 신생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국제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무리해서 고급스럽게 꾸밀 의미가 있었다면서도 결국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준공, 다시 말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완성되고 제대로 쓰이지도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한제국은 실패의 역사고 이러한 실패의 역사를 직면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큐레이팅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다. 석조전 옆에는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있는데 정말 아쉽게도 이날은 휴관이었다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이렇게 찍어놓으면 무슨 미국이나 유럽의 건물 같이 보인다 거의 뭐 백악관인줄 석조전 관람 이후에는 돈덕전, 중화전, 정관헌, 함녕전 등을 관람하고 퇴장함 덕수궁 석조전 관람은 무료 덕수궁 입장료는 24세 이상 성인 남성은 1000원이다 시간 부자인 싱붕이들은 꼭 가보는 걸 추천함
작성자 : 기신고래(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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