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할순 없으나 언젠가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잇다.
"누구의 인생에나 잇어서 적어도 한번정도는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꿀수잇는 순간또는 기회들이 꼭 찾아온다. 성공이란 게임은 바로 이러한 순간들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종종 결판이 나곤한다."
분명 좋은 글귀 엿으나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나에게 잇어서 이글귀는 그저 좋은 글귀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엿다.마치 좋지만 공감이 안되는 많은
글들의 하나였다고 나할까.
고등학교 시절은 나의 더이상 물러날수 없었던 , 중학교 때 까지 "그저 그런" 학생이엇던 나의 마지막 보루이자 "내가 진짜로 열심히 하면 이놈들보다 더
잘할수 있다는" 근거 없이 그저 믿고 싶엇던 내 변명의 첫번째 싸움이자 마지막 기회의 장이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내가 생각 하던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왓다.
"**중학교 김진수, **중학교 이상수 .. **"
귓가에 들려오는 생소한 이름들. 그리고 곧이어 웅성대는 아이들. 이 기억이 바로 고등학교로 시작되는 내인생의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었다.
나는 오늘날 까지도 이 신입생 의무 소집일날 아무런 느낌없이 갓다 나자신에대한 부끄러움과 화섞인 믹스된 감정들로 가득차 집에 돌아온 날을
기억한다. 이 이름들은 바로 고등학교 사이에서 종종 운영하는 "특별반 야자학습반"에 미리 선발된 중학교 내신 상위 2%이상의 각 중학교에서
굴러 들어온 애들의 이름들이었다. 그렇게, 고착 7~8%의 중학교 내신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다짐햇던 고등학교 생활에 벌써 한발짝 뒤처져
간다는 생각에서 오는 낙담과 나태했던 자신에대한 분노로 인해 고등학교 첫날부터 나는 전속력으로 나의 꿈들을 향해 질주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근 3년동안의 유학생활동안 한 공부량을 다더한 것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한공부량이 더 많앗던것 같다.
여담이지만 매일 아침 7시부터 일어나 저녁 11시 야자 학습을 마치고 집에돌아와 다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면 잤던 나였기에 미국온후 첫달 오후 3시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오는 일상이 무척이나 "weird" 느껴졋엇다.
그렇게 시작된 고등학교 생활은 나에게 지식 다음이나 중요한 인생의 레슨이라면 레슨인 교훈을 남겨 주엇다. 뭐 남들이 다 하는 말이지만 성공이라는
것은 "준비" 라는 바탕 위에 "운"이라는 요소가 가미 됫을때 찾아 온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나는 이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는 것에 무척이나 감사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이 하루 하루를 내가 평소에 해야될 자기 개발에 소홀하거나 해야되는 일들에 게을리 한지 않고 뜻박에 찾아온 행운이 불러다줄
큰 성공이라는 빙각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고자 노력한다.
아무튼 이런 뜻밖에 찾아온 "운"과 나의 조그만한 "노력"에 힘입어, 내 첫학기 시험성적들은 내신 올1등급에 두번의 모의고사 모두 470~80대를 육박했엇다.
처음 모의고사 시험을 치고 체점을 하는도중 마지막 2가지 답에 햇갈려 찍엇던 문제들을 맞췃을때 느꼇던 그 유쾌햇던 쾌감은 마치 축구 후반전 인저리 타임
에 동점골 또는 역전골을 넣거나 스타크래프트의 긴 장기전의 혈투속에서 결국 승리를 거뭐지는 뭐 그런 느낌들과 아주 유사 했었다.
그리고 이 반년은 내인생에 잇어 마치 손을 대는 것마다 황금을 변했다고 나 할까? 지금 돌아 봣을때 웃으며 돌아 볼 수있는 추억의 한편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이 반년의 "성공"은 나로 하여금 좀더 내 자신에 떳떳하고, 매사에 잇어 좀더 내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있는 사람으로 거듭나
게 하였다. 아마 이런 자신감이 나를 좀더 큰세계에서 더 큰 꿈을 동경하게 만들었던것 같다.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보던 그 어둡고
넒은 밤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되고 싶은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의 수많은 내또래 들의 아이들이 가질법한 꿈은, 내에게도 예외는 아니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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