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를 보면 싸커킥을 갈기는 사람은 나뿐인가? 사실 나는 축구에는 무서운 동급생들에게 시달린 끔찍한 추억밖에 없지마는 종종 민들레를 세게 차고는 한다. 그건 눈사람을 보고 파괴 충동을 느끼는 불완전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하이얀 파티클이 휘달리는 특수효과가 좋다. 

하지만 민들레를 차는 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기도 하다. 들바람이 자연스레 실어다 줄 씨앗을 내가 약간 먼저 건드릴 뿐이라는 거다. 민들레는 번식을 성공하고 나는 자그마한 쾌감을 얻는 윈-윈이다. 세상에 이런 기특한 폭력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오늘 민들레는 발로 휙 걷어찼음에도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하고 씨앗은 단단하게 붙어만 있었다. 다시 보니 아직 탈모가 덜 진행되어 불투명하지도 않은 애기 민들레였다. 나는 졸지에 미숙아를 폭행한 파렴치한이 되어버렸다. 내가 공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발길질은 그저 퇴근길의 기구한 화풀이가 되어버렸다. 약간 분했다. 분해서 엘레베이터 탈 때까지 민들레 생각만 했다. 뭔가 어떻게 어떻게 민들레가 밉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녁을 배불리 먹은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축구 생각을 하니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른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 중 하나는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내 앞에 공이 굴러왔을 때인 것 같다. 어렸을 적 그런 경험이 많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운동장을 피해서 혼자 등하교하면서도 제기랄 축구공은 자꾸만 내 앞으로 굴러왔다. 그럼 나는 발로 차서 다시 돌려줘야 하는데 항상 기묘한 방향으로 뻗어져나가 괜히 일을 키워버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인사이더 (발을 가로로 눕혀 차는 정확하지만 소심하기 그지없는 방법) 로 짧은 거리를 전해다주고 찜찜한 시선을 받는 정도로 끝냈었다. 그것도 어렸을 때나 그랬지, 어른이 되어서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정말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리라. 상상만 해도 두렵다. 내가 두문불출하는 이유 중 하나다.

환상수첩 몇장을 보고 필받아서 쓰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