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난쟁이 새끼들……."
대장은 이를 꽉 물며 등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그것을 잠깐 바라보다가 바닥에 내팽개치자 헤르마가 다가왔다.
"괜찮나, 대장?"
대장은 약한 빈혈을 느꼈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피가 흐르는 양에 비해 빈혈이 너무 빨리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른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갈증……."
그는 갈증을 느끼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눈을 붙이기 전에도 수분을 섭취했고 코르라는 지형 자체가 자연적으로 습기가 많아서 밤사이 땀으로 말미암은 수분증발이 일어날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난쟁이 아니랄까 봐 지들같은 기술은 잘도 만들어 냈군."
"대장! 이제 피하셔야 합니다!"
"응, 그래야지. 차단기를 사용하도록!"
용기있는 싸움과 무모한 싸움은 다르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척후 활동. 더 이상의 전진은 무모하다고 판단했다.
헤르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킷 주머니에 있던 신비로운 모양의 상자를 꺼낸 뒤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순간 작은 인영들이 일제히 멈칫거렸고 대치 중이었던 자이언트들은 멈춘 상대를 향해 죽일듯한 눈빛으로 쏘아보면서 그들과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다.
엘프의 마을 필리아. 예전에 그곳은 카루같이 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거대한 숲이었다. 그런 숲이 어느 순간부터 엘프들이 정착하는 마을을 중심으로 우연한 일치인지 사막화가 시작되었고, 그들은 이 현상을 의아해하면서 터전을 옮겼다. 긴 시간이 지나서 콘누스 대부분이 사막화가 되었다. 엘프도 생명체인 이상 수분을 섭취해야 했고 바닷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절망하던 차에 얼마 전 터전을 찾으러 떠난 엘프 한 명이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 사막화가 되긴 했지만 거대한 오아시스가 있는 필리아 협곡은 그들에게 기적과도 같은 장소였다.
모든 엘프가 필리아로 가서 먼저 한 일은 호수 한가운데 메모리얼 타워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 타워를 통하여 엘프들은 기억을 유지하며 공유할 수 있었고, 이것의 관리는 관례에 따라 엘프 족장이 맡아서 했다.
엘프를 메모리얼 타워라 할 수는 없지만 메모리얼 타워를 엘프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메모리얼 타워가 그동안 살았었던 모든 엘프들의 기억과 역사, 기술 등이 담겨 있는 엘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엘프 족장의 임무 중 하나가 이런 내용을 관리하여 종족 구성원이 알아서 썩 유쾌하지 못한 내용을 보지 못하게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족장들은 메모리얼 타워에 연결되있는 엘프의 기억을 추가하거나 없앨 수 있다. 이 말은 한 인격체의 인생을 송두리째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대 족장들은 이러한 능력을 사용하여 '썩 유쾌하지 않은 진실'에 접근하는 엘프들을 사전에 차단해 왔다.
엘프와 메모리얼 타워의 연결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 순간 기억상실이 올 수 있고, 심각하면 기억을 통째로 날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메모리얼 타워와 멀어질수록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메모리얼 큐브였는데, 이것은 타워처럼 많은 수의 인원을 관리할 수는 없었지만, 무전기처럼 채널을 맞추면 짧은 거리 내의 같은 채널의 엘프들과 메모리얼 타워같이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고, 큐브를 통해 전달된 기억들이 누적되어 수시로 메모리얼 타워로 송신해주기도 하였다. 이 메모리얼 큐브는 제1차 장기전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개발되었다.
메모리얼 타워의 기억상실은 타워와 엘프 사이의 거리 때문이었는데 메모리얼 큐브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서 몸에 밀착되었고, 기억상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획기적인 물건에도 약점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콘누스의 모래였다. 보통 메모리얼 큐브를 사용하는 이들은 필리아를 벗어날 일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중 콘누스에 묻힌 유적들을 찾기 위해 발굴 작업을 하다가 개미지옥에 빠져서 사막 한가운데 묻힌 엘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모리얼 큐브가 모래에서 알 수 없는 자기가 일어나 엘프와 큐브 사이의 통신을 꼬아버렸고,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길잃은 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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