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부터 아는 여후배를 소개받았다

평소 여자에 대해 별 관심은 없었는데 친구가 하도 부탁하길레 한번 자리에 나가봤다


분명 친구한테 듣기론 여후배가 내 사진을 보고는 마음에 든다며 소개시켜달라 했단다

그런데 막상 카페에 앉아있는 나를 보는 여후배, 이제부터 그녀라고 하겠다, 그녀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난 그녀와 눈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에 그녀 얼굴에 써진 실망감을 보았다

하지만 애써 모르는 척 했다

그녀도 곧바로 그 실망감을 감추어주는 예의를 보였으니까


그런데 난 애를 쓰고 싶어졌다

여자에 별 관심 없던 나에게 보인 여후배의 얼굴은

내가 언젠가 꿈에서 본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갑자기 나의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하지만 그녀 얼굴에 비친 그 찰나의 실망감에 내 마음엔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만 더 꾸미고 나올걸...머리 손질도 더 제대로 해서 나올걸...'


커피가 나오고 진부한 이야기 몇마디가 오갔다

나는 대화를 이끌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단답 또는 마지못해 내 말을 흥미있게 듣는 척 되묻는 정도였다

이대로 애프터 신청을 해봐야 거절당할게 뻔했다


난 화장실에 가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화장실에 갔다온다고 하며 테이블 구석에 둔 핸드폰을 집었다


테이블 구석에 핸드폰과 마비노기 자캐 굿즈(키링)를 두었는데, 그녀는 그걸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핸드폰을 집으니 그녀의 시선도 테이블 구석으로 향했고 나의 자캐를 보게 됐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잠깐만요, 그거 마비노기 아니에요?'

'네...맞는데요'

'어...혹시 그거 '워로드' 인가요?'

'아니요, '태달검' 이에요'


그러자 그녀의 얼굴엔 옅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저...정말 죄송한데요.. 혹시 대미지를 봐도 돼요?'

'아...네! 그러세요, 근데 이거 디버프 안들어간건데 괜찮으세요?'

이 말을 하고나서 순간 그녀가 디버프가 뭔지 모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밝은 미소로 '네! 괜찮아요' 라고 하며 자기 핸드폰에서 태달검이 뭔지 검색했다


앗, 혹시 사냥세팅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괜찮으니 그냥 보여 달라고 했다

그녀에게 핸드폰을 주며 얼핏 보니 다행히 사냥세팅인것 같았다


그녀가 나의 태달검을 구경하며 머리를 넘길 때 은은한 향수냄새가 내 코에 들어왔다

나의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태달검을 보는 그녀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얼굴을 보니 꽤나 만족스럽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태달검을 보다 약간 멍한듯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3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핸드폰을 내게 주고는 '죄송해요, 너무 오래 봤죠?' 리고 했다

나는 '괜찮아요, 더 보셔도 돼요' 라고 했다


'저...혹시 있다가 밥먹으면서 마비노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나는 5초 정도 멍해지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 네...네! 그렇게 해요'

그러자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내게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무슨 정신이였을까

정말 순간적으로

'연지씨랑 먹는거면 다 좋아요' 라고 해버렸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더니

'저...이거 애프터 신청인건 아시죠?' 라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이게 바로 그녀, 지금 내 아내와의 첫만남이였다

가끔 아내와 사소한 일로 싸우고 나면 난 토라진 아내를 위해 최적의 세팅을 해둔 태달검을 가진 캐릭터를 빌려주며 사과를 하곤 한다

아내는 태달검을 든 내 케릭터로 쌀먹을하며 이런말을 한다

뱃속의 아이도 이 태달검을 물려 받을 수 있겠지?


'자기, 지금 무슨 글 써?'

'음...나의 life saver를 만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