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에서 정년퇴직이 가능할까? 일반 대기업에선는 정년이 55세다. 늦은 곳은 60세도 있지만 점차 월급이 깎이는 제도가 있어 퇴사를 종용하는 느낌이다.
넥슨이 진행하는 NDC 2022 3일차에는 코빗의 백영진씨가 이 내용을 다룬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현재 국내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빗(korbit)에서 기술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2021년 12월 던전앤파이터를 서비스하는 네오플에서 16년간 근무 후 정년퇴직했다. 네오플에서 던전앤파이터 게임을 오픈 베타부터 참여해 16년간 서버 프로그램을 해 온 개발자로서 그동안의 개발 경험과 경력관리, 배운 점, 느낀 점 등을 솔직하게 털어 놨다. 1961년생 베이비부머 세대인 그는 어떻게 게임회사에서 정년퇴직에 성공했을까? 짧지 않은 세월 어떤 인생 인사이트를 얻었을까?
코빗(korbit)에서 기술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백영진씨
그는 취업에 실패, 삼촌의 권유로 구로공단에 있는 공장에서 월 10여만 원을 받고 주야간 2교대로 공돌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술을 먹고 이렇게 밑바닥 생활을 하느니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급여를 탈탈 틀어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애플2 컴퓨터를 샀다.
베이직은 재미있었고, 컴퓨터 관련 일을 찾던 중 애플2를 샀던 가게 사장에게 취업을 부탁했고, 결국 소위 말하는 '용팔이'가 됐다. 컴퓨터를 팔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3년 뒤 컴퓨터 학원에서 강사 일을 시작했다. 또 친구들과 소프트웨어 회사도 창업했다. 또 토목회사에 취업,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며 3년을 지내고 나왔을 때가 1991년. 이 정도면 그가 짧은 세월 얼마나 많은 곳을 전전하며 헤맸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그는 블루오션이었던 PC 온라인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는 국내에서 PC 게임이 막 시작되는 단계였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졌다. 간단한 PC게임을 습작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마흔, IMF라는 격변의 시기에 게임업계에 진출할 기회가 생겼다. 2000년은 프로그래머라면 무조건 취업이 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초기에 들어간 회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몇 개월 다니다 이직을 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친구의 추천으로 네오플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던파를 막 오픈베타하고 있던 참이었다. 사장이 "꿈이 뭐냐"고 물었고, "이런 게임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사장은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입사 전 던파를 해 봤는데, 이 게임이 성공한다고 봤다.
입사 초기 던파 서버를 혼자 개발했고, 주 단위로 패치해야 할 콘텐츠도 개발해야 했다.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는 던파가, 아니 개발진들이 최고가 되는 순간을 맛 봤다. 행복했고, 그는 꿈을 이뤘다.
위기도 있었다. 팀장 생활을 오래하다 적합한 인물을 팀장으로 앉히고 팀원이 됐다. 그랬더니 사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고, 그 때문에 퇴사를 망설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나갈 수는 없었고, 개발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협업하면서 오해를 풀고,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협업 부분에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했던 것. 서버 쪽 주장만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났던 것이다. 권위적이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새로 입사한 젊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팀원과 20년 차이가 났지만 MZ세대와 같이 일하다 보니 오히려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던파 탐험 퀴즈의 세계 이벤트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퀴즈의 세계 방이 열리고 입장하면 OX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던파 안의 또 하나의 던파였다. 인기가 좋아 패킷의 한계로 구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퀴즈가 있는 날이면 동접 그래프는 송곳날처럼 우뚝 솟았다. 백영진씨는 "개발자는 자신이 참여한 게임 콘텐츠를 이용자들이 재미있게 즐겨줄 때 참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것 같다. 그 맛에 게임 개발을 하나 보다"고 했다.
던파 탐험 퀴즈의 세계 이벤트, 사진=던파 공식 홈페이지
과거에는 C++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파이선이나 코틀린, 러스트, 고 같은 뛰어난 언어로 게임개발이 가능해졌다.
백영진씨는 PC온라인게임을 C나 C++로 개발해 왔다.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필요한 어플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고, 모바일게임도 만들어보긴 했으나 빠르게 변화는 게임 플랫폼과 개발 언어를 모두 익힐 수는 없었다. 관심을 가는 트렌드에 대해서 습작을 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본에 충실하라고 한다. 기본을 익히고 통달하면 변화하는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이 쉬워진다는 것.
조직문화와 관련, 백영진씨는 최근의 '님' 문화는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봤다. 능력이 되면 누구나 팀장, 파트장이 될 수 있고,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팀장, 파트장에서 내려와 물러날 수 있는 그런 조직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 생각에 그는 팀장 시절 개발을 놓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최근 개발자의 연령은 점점 높아져서 40, 50대 개발자도 늘고 있다. 이들은 정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대부분의 개발자는 정년퇴직이 아니라 40, 50세가 되기 전에 게임업계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 이직을 밥 먹듯이 하는 게임 업계의 특성상 앞으로 1,2년 후를 내다볼 수 없는데 정년퇴직을 꿈도 못 꾸는 개발자도 많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고 개발 능력만 된다면 정년을 넘어서 계속 회사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게임회사에서 정년연장가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이 컴퓨터 앞에서 개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영진씨는 커리어 관리를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리어 관리가 됐다. 게임 개발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힘든 일을 견디다 못해 치킨집을 했을 것이라고. 또 커리어 관리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목표는 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는 암 환자의 투병기를 적은 블로그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남은 인생이라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는 "직업을 선택하다는 것은 건강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시간을 선택한 직업과 맞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좋아하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겠냐고 했다.
백영진씨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게임회사에서 정년퇴직이 가능했던 것은 팀장에서 팀원으로, 낮은 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또 하고싶은 일을 했던 것이 지금의 백영진씨를 있게 했다.
그는 영화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의 인생 영화는 빠삐용이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옥했지만 실패하고, 마지막에는 탈옥한 친구와 무인도에 갇혀 산다. 빠삐용은 친구와 탈옥하자고 하지만 '넌 죽을 거야'라는 말을 하는 친구를 두고 홀로 탈출한다. 용기 있는 자가 자유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백영진씨는 "꿈은 용기 있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 인생과 맞바꾸는 일인데 실패할 이유가 없지 않나? 건투를 빈다"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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