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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이재명·김문수·이준석 3파전
- 이준석 채널A 인터뷰 “당선 시 합리적 의원들과 함께 할 것” Q. 내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됩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모시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현장 연결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준석 후보님 지금 계신 곳이 어딥니까? A. 지금의 부산에 와서 부산시청에서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Q. 첫 질문부터 좀 그렇긴 하지만 아 지금 지지율만 놓고 보면 쉽지 않은 선거 같아 보인다. 뭐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경험이고 다음이 진짜다 뭐 이런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목표가 당선이 맞습니까? A. 제가 정치를 좀 어렵게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국민의힘에 당대표에 도전할 때도 경험 쌓으러 왔느냐 이런 말을 듣기도 하고요. 동탄에서 국회의원 당선될 때도 이번에 드디어 이준석이 정치 인생 마감하는구나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선거에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다 아시는 것처럼 결과는 항상 선거 기간이 시작되면 제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승리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저희는 당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이길 생각이신 건가요? 그러니까 뭐 대표적인 필승 전략 두세 가지 정도만 소개를 해 주시면 뭐가 있을까요? A. 결국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진정성이 보여야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거대 정당처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고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지역별로 맞춤 공약이라든지 아니면 아주 신선한 선거운동 방식 이런 것들이 돋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Q. 승리를 하려면 강력한 후보 이재명 후보를 이겨야 되는데 이 3자 구도 하에서 이재명 후보를 이길 비책 같은 게 있을까요?A.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민주당의 정책에 공감한다기보다는 국민의힘의 정치 행태에 너무나도 실망했기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가 상당합니다. 제가 그 동탄에 출마하자마자 저의 정책 비전에 공감하는 분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또 국민의힘은 절대 못 찍겠다는 분들이 합쳐져 가지고 제가 1등 하면서 당선된 것이거든요. 결국에는 동탄 모델이라는 것이 저는 이번에도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양자 구도에서는 정책이 좋고 이런 것보다 국민의힘이 너무 싫고 과반 이상의 국민들이 국민의힘을 안 찍기 때문에 저는 양자 구도를 자꾸 제안하시는 분들에게는 동탄 모델을 한번 들여다봐 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Q. 이준석 후보님 같은 경우에는 김문수 후보와는 단일화를 안 할 건지 절대 안 할 건지 빅텐트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으신 건지 이것도 궁금합니다. A. 그분이 최근 한 10년 동안에 해온 정치 양태를 보면은 결국 태극기 부대 중에서도 전광훈 목사와 연계 가능성 같은 것들이 계속 얘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전광훈 목사와의 연계성 때문에라도 김문수 후보와의 연계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 외에도 제가 생각하는 과학기술과 그리고 젊은 세대가 바라는 그런 미래 지형을 구축하는 데 있어가지고 김문수 후보와 이야기할 지점이 많지 않을 것이다. Q. 후보님께서는 국민의힘 전 대표도 하셨고 범보수 진영에서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3자 구도가 되면 이재명 후보의 독주 대세론을 오히려 더 도와주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 뭐 이런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 후보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A.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가장 도운 사람들의 이름을 대자면요. 뭐 윤석열과 윤핵관 쌍권이라고 하는 분들 뭐 이런 분들이 이재명 당선을 위해 가지고 이번에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공신록 맨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와서 이준석이 3자 구도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해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고 이렇게 주장하시는 그것은 사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면피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Q. 그 말씀은 이번 대선 끝까지 완주할 거다. 그러니까 국민의힘 복당 가능성은 제로다 뭐 이렇게 저희가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A. 국민의힘의 기록상으로는 저는 국민의힘에서 대선과 지선 승리를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무혐의로 판단되었지만 어쨌든 성상납 혐의로 자신들의 윤리위에서 쫓아낸 그런 당대표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국민의힘에 어떤 눈길도 줄 이유도 없고요. 그들이 저한테 한 행동을 이번에 그대로 또 다른 사람들한테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본질적으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말씀이 나왔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있었던 국민의힘 내홍 사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결국엔 윤석열이라는 지금 대한민국의 큰 혼란을 만든 사람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놓치지 않고 어쩌면은 한 정당의 경선 결과까지 뒤엎으려고 했던 그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지금 저는 저 이준석은 적어도 대권 승리를 위해서 이재명을 꺾기 위한 방법을 매일 고심하고 발로 뛰고 있는데 국민의 힘에 있는 분들은 명백하게 지금 당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진짜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이재명 후보를 꺾고 싶은 유권자가 계시다면요 지금 대선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당권을 잡기 위해서 이전투구 벌인 세력이 어디 있는가 이 정도는 구분하실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Q.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되기에 아직 이준석 후보 좀 어린 거 아니냐 그리고 방금 말씀 주시긴 했지만 예의가 좀 없다 뭐 이런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후보님이 생각하시기에는 이런 어떤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A. 실제로 뭐 좋든 싫든 간에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로 하고 있어 때 그 큰 당을 이끌어 가지고 대선 승리와 지선 승리까지 완벽하게 이루어냈고요. 이준석이라는 그 당시 30대였던 사람이 이끌던 정당에 비해서 지금의 국민의 힘은 못한 정당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분들 이 저한테 뭘 못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저는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지금 나이 60이 넘은 윤석열 대통령이 나라를 거의 망가뜨리지 않았습니까? 보수 세력에서 계속 이준석은 어려서 안 돼 기다려야 된다 이런 말을 하면 할수록 젊은 세대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겁니다. Q. 개혁신당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정말 수권 능력이 있느냐 뭐 이런 것도 조금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이준석 후보님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답을 주시겠습니까? A. 제가 당선되는 순간부터 정계 개편이 일어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당과 국민의 힘을 가리지 않고 합리적인 의원들이나 이런 분들은 다 받아들일 생각이고요. 이준석을 뽑아주시고 이준석이 정계 개편을 통해서 일정한 의석수로 국가를 운영하다가 내년에 만약에 이준석의 비전이 옳았다 판단하시면 지방선거에서부터 큰 힘을 몰아주시고 그다음 총선에서 큰 힘 몰아주시면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이준석은 의석이 적어서 안 돼라는 말을 계속 믿으신다면은 지금같이 그런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처럼 정말 의석수는 많지만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는 정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해서는 대한민국 정치 절대 안 바뀝니다. Q. 이준석 후보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나는 이것만큼은 난 정말 뛰어나다 뭐가 있겠습니까? A. 저는 적어도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후보에 비해서 월등한 장점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요.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법조인 출신들을 계속 이렇게 지도자로 만들다 보니까 그분들이 할 수 있는 건 뭐냐 상대를 나쁜 사람 만들어 가지고 감옥 보내기 아니면 나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방탄하기 이런 것들로 대한민국의 중요한 시절이 지금 3 4년 낭비돼 가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Q.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뭐 조금 전에 말씀해 주신 것 같기도 하지만 이준석에게 꼭 투표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A. 저 이준석 지금까지 정치하면서 정말 항상 쉬운 길을 마다하고 올바른 소리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어렵게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저는 위험한 지점을 경고했었고 제발 그것이 바로 잡히길 바라는 마음에 이야기했었고 국민의 힘이라는 당의 한계점을 느껴가지고 저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조금 더 용기 있는 도전을 하겠다 그랬을 때 결국 지금 개혁신당은 계엄에서도 자유롭고 이재명 후보의 파퓰리즘에서도 자유로운 유일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준석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것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도 가는 겁니다. 저는 이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은 하지만 세상은 좀 더 빨리 바뀔 것이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리겠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308335
작성자 : ㅇㅇ고정닉
(스압) 싱글벙글 GOAT급 밴드 레드제플린에 대해 알아보자
영국의 레전드 록밴드 레드제플린에 대해 알아보자글을 시작하기 앞서 첨부된 곡들은 잠깐이라도 들어주길 바람원래 레드제플린은 야드버즈라는 밴드에서 시작됬음야드버즈는 1963년에 결성된 밴드인데 에릭 클랩튼과 제프 백이라는 빅네임드들이 몸을 담고있던 밴드였음그렇게 잘 나가던 야드버즈는 시간이 흘러 에릭 클랩튼과 제프 백이 탈퇴하고 인기가 시들어짐그렇게 야드버즈는 지미페이지와 창립 맴버인 크리스 드레야만이 남게 되었음지미페이지는 밴드를 이어가기 위해 여러 음악가들을 영입했고 그 과정에서 영입된게 보컬의 로버트 플랜드, 드럼의 존 본햄, 베이스의 존 폴 존스임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미 페이지와 함께하던 크리스 드레야가 탈퇴하게 됨그렇게 결성이 되고 밴드 명을 뉴 야드버즈로 지었는데 드레야가 너무 밋밋하다는 이유로 밴드 명을 바꾸길 요구했고그래서 나온게 레드 제플린임그리고 드디어 1969년 1월 12일 1집인 Led Zeppelin이 발매되었음1집에서 보여준 헤비 블루스 사운드는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됨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받는 평가와 다르게 평론가들과 동료 뮤지션들에겐 좋지 못한 평을 받음그래도 미국 리스너들은 레드 제플린을 반겨주며 멤버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을 생각하게된 계기가 되었음레드 제플린은 미국에서의 인기에 북미 공연이 지속되었고 결국 1969년 10월 22일 미국에서 2집 Led Zeppelin II가 발매되었음반응은 역시나 인기 폭발이었고 선주문만 무려 40만장을 돌파하게됨하지만 2집은 시기상 별로 좋지 못했는데, 엄청나게 성공한 두 앨범인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와 비틀즈의 Abbey Road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었음그래도 결국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꺾고 빌보드 1위를 차지해 7주간이나 1위를 기록하게됨이렇게 레드 제플린은 세계 최정상의 위치로 향하고 있었음그러던 1970년 4월 8일 최정상의 밴드 비틀즈가 폴 매카트니의 탈퇴로 해체되었고, 롤링 스톤스, 더 후, 핑크 플로이드, 같은 엄청난 네임드들이 주도하는 록의 전성기가 이어지게됨그렇게 1970년 8월부터 레드 제플린의 미국 투어가 시작되었음9월 4일 로스엔젤레스에서 Led Zeppelin III에 수록될 곡들이 연주되었고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뜨거웠음그렇게 1970년 10월 5일, 미국에서 3집이 발매되었음우리에겐 토르 ost로 알려진 immigrant song으로 시작되어 뒷부분으로 갈수록 브리티시 포크 록 사운드가 나는 앨범에 리스너들은 당황했지만,역시나 반응은 좋았고 평론가들의 평도 좋았음3집은 의외로 상업적으론 실패한 앨범임 1971년 가장 잘팔린 앨범이었지만 1500만장이나 팔린 2집에 비하여 700만장 가량 팔렸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상업적 실패였음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는 4집은 헤비 메탈과 하드 록에 가까운 분위기로 구성하기로 하였음둘은 4집 구상을 위하여 웨일스의 브로니어 별장으로 떠났고 Stairway to Heaven과 같은 명곡이 구상되기도 함그렇게 1971년 11월 8일 가칭 Led Zeppelin IV가 발매되었음이 앨범이 가칭인 이유는 정확한 이름이 없기 때문임지미 또한 앨범이 제목이 없는 '무제'임을 강조했음4집은 총3700만장을 팔아치웠고 레드 제플린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한 앨범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여섯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며, 록 장르 음반 중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또한 헤비메탈, 포크 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임1972년 10월 뭄바이를 떠나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 투어를 나섰음원래는 싱가포르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지만 당국에서 좋지 않을 영향을 우려하여머리를 다 깎아야만 공연 허가를 해준다는 말에 일본의 부도칸에서 공연을 하게됨당시 멤버들은 여느 록밴드처럼 코카인을 즐겼는데, 레드 제플린의 한 관계자가 일본 투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오던 멤버들의 경유지였던홍콩에서 운반책의 실수로 코카인 대신 헤로인이 전달되는 불상사가 벌어졌고 그로인해 지미는 8년간 만성적 헤로인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음1973년 3월 28일에 발매한 5집인 Houses of the Holy는 전작의 하드 록을 그대로 계승했다함로버트 플랜트의 하이 톤 보컬의 최전성기를 보여주기도했음전작이 대흥행하여 정상급 밴드가 되었기에 미국에서만 1100만장이 팔리는 흥행을 이룰수 있었음빌보드200에서 1위를 차지하고, UK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음이로인해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인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UK차트 1위를 실패하기도 했음1975년 2월 24일 6집인 Physical Graffiti가 발매되었음레드 제플린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의 더블 앨범이기도 함한편 계속된 투어로 로버트 플랜트의 목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음그리고 6집의 성공과는 반대로 멤버들은 방탕에 찌들어 점차 망가지고 있었음지미는 헤로인에 완전히 중독되었고 존 본햄도 각종 괴상한 마약들에 중독되었음존 폴 존스는 멤버들과 겉돌면서 팀과 어우러지지 못했고 플랜트와 지미는 아랑곳 않고 친목질을 했음이렇게 멤버들은 완전히 맛이 가버리게 됨1976년 3월 31일에 7집인 Presense가 발매되었음이 앨범은 레드 제플린의 하락세를 알리는 앨범이자 전작에 가려져 범작 취급을 받는 불운의 앨범임그래도 레드 제플린의 이름 답게 전체적인 퀄리티도 좋은편임전작의 대성공과 투어로 인해 멤버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였음당시 영국은 무려 수익의 95%를 세금으로 걷어갔는데, 이 떄문에 멤버들은 유럽을 돌아다니며 세금을 도피하기도 했음이러던 와중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서 로버트 플랜트와 그의 가족이 타고있던 차가 절벽으로 떨어짐지미는 투어 메니저 리처드 콜에게 전화하여 영국 최고의 의료진을 보냈고, 플랜트는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 로저 워터스의 별장으로 옮겨짐이러한 악재로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스튜디오 사용이 2주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밴드는 엄청난 속도로 제작에 들어감그래서 앨범의 전체 사운드는 5, 6집에 비해 통일성 있는편임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멤버들과 관계자들은 마약에 빠지기도 함1979년 8월 15일 8집 In Through the Out Door이 발매되었음이 앨범은 실질적 마지막 앨범인데, 정규 9집 Coda는 밴드 해체 이후 미공개곡들을 모아 낸 앨범이기 때문임멤버들은 전작의 실패가 홍보 부족이라 생각하고 투어를 돌아 미시간주 공연에선 무려 76000여명의 광객을 동원해 자신들의 최다 기록을 깨기도 했음그러나 투어에서 지미는 헤로인 중독으로 기타도 못칠정도로 살이 빠졌고, 플랜트도 다친 다리로 인해 진통제를 복용하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음심지어 투어 도중 플랜트의 아들이 사망하기도 하여 투어 종류 후 플랜트는 자택에 무기한 칩거하게 됨1년이 지나 플랜트는 돌아왔지만 존 폴 존스를 제외한 멤버들의 상태는 심각했음그로인해 플랜트가 존스가 함께 주도적으로 곡을 작업하였음당시 지미는 작곡은 물론 기타도 연주하기 힘들어했기 때문에 8집의 수록곡들은 기타의 비중이 적은편임또한 존스와 플랜트가 중심이 되어 All My Love처럼 지미가 작사 작곡에 일절 참여하지 않은 곡들도 있음1980년 9월 25일 존 본햄이 사망하게됨1980년을 맞이한 투어를 리허설 한뒤, 지미의 집에서 파티를 열었음본햄은 늘 그랬듯이 보드카를 폭음하였고 본햄은 자면서 구토를 하여 토사물이 목을 막아 질식하게 된거임당시 흑마법에 빠져있던 지미는 본햄을 살려보겠다고 흑마법 주문을 읽기도 했지만 통할리가 없었고이후 지미는 흑마법에 관심을 끊어버림이후 레드 제플린은 해체되었고 1982년 마지막 정규앨범 Coda를 발표하기도 함그후 제플린은 실망스러운 행보를 걸었고 1995년 1월 12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그러던 2005년 자선 공연 라이브8이 열렸고, 여러 뮤지션들이 참가했지만 핑크 플로이드가 가장 주목받게됨무려 55억명이 인터넷으로 바라본 공연에서 열정적으로 공연을 펼쳤음그 공연을 감명깊게 본 플랜트는 레드 제플린의 재결성을 결정하게 됨2007년 12월 10일 재결성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무려 2000만명이 이 공연을 예매시도하기도 했음그 후 12년도까지 재결합 하지 않고 함께 해나갔고 14년도에 재결성은 결렬되었음이후로는 로버트 플랜트, 지미 패이지, 존 폴 존스 모두가 자신의 활동을 이어나가는중임 처음 써보는 장문이라 부족함이 많았음글에 부족한 점이라거나 부가할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적어주셈그리고 궁금한 밴드나 뮤지션이 있다면 다음 기회에 글로 적어보겠음
작성자 : 바나나너무좋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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