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Mnet) 걸그룹 서바이벌 오디션 <걸스플래닛999-소녀대전>이 방영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방영 전부터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화약고로 거론되었던 '중국 리스크'가 결국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걸스플래닛>은 한·중·일 3국의 아이돌 지망생 소녀들을 모아놓고 'K팝 걸그룹'을 뽑는 서바이벌을 표방했다. 최근 한일관계-한중관계가 모두 정치적으로 모두 민감한 상황에서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굳이 외국인 연습생들을 K팝의 울타리 안에서 키워줄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이 적지않았다.
하지만 엠넷은 조작논란으로 추락한 <프로듀스> 시리즈의 사실상 부활, 글로벌 시장에서의 팬덤 확장이라는 확실한 계산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실제로 <걸스플래닛>은 국내에서의 시청률만 보면 대단히 저조하지만, 중국-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오히려 갈수록 더 큰 화제를 모으며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중국 쪽에서 발생했다. 사실 <걸스플래닛> 기획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국내 팬들의 여론은 일본(J그룹)보다는 중국 출신 연습생들(C그룹)에 대하여 더 민감한 분위기가 강했다. 일본 연습생들의 경우 큰 화제를 모았던 <프로듀스48>을 통하여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되었을 만큼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긴 바 있다.
<걸스플래닛>의 일본인 연습생들 중에는 이미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능숙하거나 '친한'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시작부터 호감을 산 인물이 다수였다. 카와구치 유리나, 에자키 히카루, 사카모토 마시로, 노나카 샤나 등 기량과 스타성면에서 한국 연습생들(K그룹)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았고, 정치적 발언이나 개인적 구설수도 없었던 클린한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일본 연습생들에 대하여 국내에서도 우호적인 반응이 갈수록 늘었다.
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지난 몇 년간 중국 정부의 정치보복인 '한한령'으로 한류에 미친 피해, 한국에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중국인 아이돌들의 연이은 중도 계약해지와 '중국런' 사태, 노골적인 친중 언행 등으로 인하여 이미 국내에서 반감이 크게 높아진 상태였다.
여기에 <걸스플래닛>에 참여한 중국 연습생들의 개인적인 문제도 많았다. 몇몇 상위권 멤버들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한국과 일본 연습생들에 비하여 실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한국어 구사나 오디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듯한 참가자들이 많았다. 또한 몇몇 출연자들은 이미 방송 출연전에 '항미원조지지' 선언 등 중국측의 시각에서 한국의 민감한 역사문제를 왜곡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팬들의 보이콧 명단에 오를 만큼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엠넷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당시부터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중국 시장으로의 확장성'이라는 목표가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사실상 무산될 상황에 놓였다. 중국 정부는 최근 사회 기강 확립차원에서 연예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금지시키고, 한국 연예인 팬클럽 활동 정지를 통하여 한류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한 규제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자국 프로그램과 연예계 스타도 정부의 눈총을 받으면 하루아침에 퇴출되고 있는 중국의 내부 상황을 고려할 때 당분간 K팝과 한류가 다시 중국 주류 시장에 설 만한 자리는 없어보인다. <걸스플래닛> 오디션에서 중국인 멤버가 데뷔조에 뽑힌다고 해도 중국에서의 팀활동은 어려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엠넷이 중국인 연습생을 활용하는 기회주의적인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엠넷표 서바이벌의 트레이드 마크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악마의 편집'이었다. 의도적인 편집으로 출연자의 이미지나 사실관계를 교묘하게 왜곡하여 자극적인 화제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작 <프로듀스> 시리즈에서도 이해인-허찬미 등 수많은 피해자와 빌런(악역)을 양산해낸 바 있다. 그리고 <걸스플래닛>에서는 중국 연습생들이 사실상 악편의 집중 타깃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방송 초반부터 <걸스플래닛>에서 모든 논란의 중심에는 거의 항상 중국 연습생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푸야닝은 첫 회에서 나이나 경력상으로 모두 대선배인 최유진을 상대로 '디스랩'을 했다가 뭇매를 맞았고, 3회에서는 '전야'팀의 리더를 맡았다가 팀내 갈등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편집을 다른 방향에서 했거나 푸야닝의 입장에서 보자면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었던 내용이었다.
특히 중국인 연습생들을 향한 악마의 편집은 2차 경연 '콤비네이션 미션'이 그려진 6~7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왕야러는 '우리집' 팀의 리더를 자원하며 자신만만해했으나 연이은 실수로 중간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했고, 'VVS'팀의 량지아오는 부족한 실력에도 개인연습만 고집하여 팀원들을 힘들게했고 이채윤은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차이빙은 'Salute'팀의 리더를 맡았으나 중간평가에서의 실수와 혹평에도 불구하고 킬러파트를 양보하지 않았고, 연습에서는 "내가 리더니까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다", "더이상 의견을 내지 말라"며 팀원들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행동으로 미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인성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사실상 각 팀마다 실력이 떨어지거나 분란을 일으킨 것으로 묘사된 것은 중국인 연습생들이었다. 정작 이들이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고 다시 팀워크를 다졌는지를 보여줄 만한 장면들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인연'팀의 션샤오팅-수루이치나 '마피아'팀의 푸야닝처럼 다행히 악편을 피하고 팀도 승리한 중국인 멤버들도 있지만, 정작 한국이나 일본 연습생들에 비하여 활약상이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수혜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2차 경연 내내 김보라-김다연-정지윤-강예서 등 한국인 연습생들의 실력과 인성이 호평받는 장면들이 대거 부각되었고, 일본인 연습생들의 경우에는 분량은 많지 않아도 최소한 팀에 피해를 주거나 부정적으로 보일 만한 장면은 거의 없었던 것과 대조된다.
시청자들은 어디까지나 제작진이 취사선택한 장면밖에 볼 수 없는 만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왜곡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일부 중국인 연습생들의 경우 명백히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몇몇 출연자들은 대놓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몰아가려는 듯한 의도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뜩이나 시작부터 <걸스플래닛>의 인기가 저조하고 중국 연습생들에 대한 호불호도 엇갈리던 상황에서, 마침 중국의 '연예계 통제'까지 본격화되자 엠넷 제작진이 이미 활용도가 떨어지고 팬덤의 영향력도 미약한 중국 연습생들을 악편의 타깃삼아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애초에 각종 논란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중국 연습생들을 오디션에 받아들인 것은 엠넷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데뷔조 여부를 떠나서 참가자 개개인을 끝까지 최대한 보호하고 케어해줘야하는 것도 제작진의 의무다. 어떤 연습생들을 지지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지만, 방송은 시청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활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중국 연습생들을 '빌런화'시켜서 자극적인 방송의 소모품으로까지 전락시키는 것은 제작진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물론 K팝의 일원이 되기에는 실력이나 인성 모두 명백히 부족해보이는 일부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중국과 일본 연습생 역시 결국은 국적을 떠나 한국 연습생과 똑같은 청춘들임을 먼저 기억해야한다.
K팝 걸그룹이 되고싶다는 자신의 꿈을 쫓아 낯선 타지에서 어려운 도전을 선택한 소녀들이, 경쟁의 스트레스도 극심할 상황에서 방송에서의 단편적 모습으로 대중의 비난까지 감수해야하는 상황은 국적을 떠나 안타까운 장면이다.
시청자들이 느낄 정도로 국적과 출연자에 따른 노골적인 차별과 편가르기가 부각된다는 것은, <걸스플래닛>의 '글로벌 K팝 걸그룹 탄생'이 실패한 기획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자백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만만한 악편의 대상'이 <프로듀스> 시리즈의 한국 연습생에서 <걸스플래닛>에서는 중국 연습생으로 바뀐 것뿐, 엠넷의 정체성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775240&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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