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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첨 알았다 김성근과 변도사

우기우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9.11 15: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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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과 변도사

김성근 감독을 흔히 ‘데이터 야구의 달인’이라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미지일 뿐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실제로는 데이터라 할 만한 것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데이터보다는 ‘감’을 더 신뢰하는 게 김성근 감독이 해온 방식입니다. 징크스에 예민하고 정신력, 극기 등을 강조하며 은근히 미신적인 믿음을 고수하는 것도 특징. 김성근의 미신 숭배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로 고 이종남 기자님의 [인천야구 이야기]에 실린 ‘변도사’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좀 길지만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내용 중 PJ는 이종남 기자님 본인을 지칭하는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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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이 태평양이 아닌 MBC 청룡으로 갔다면?

1989시즌을 앞두고 태평양이 오대산 극기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뚱딴지 같은 가정법이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김성근이 태평양 대신 MBC를 택할 수도 있었다. 1988시즌 전반기를 꼴찌로 마친 MBC 구단은 모처럼 정식감독으로 모신 유백만이 리더로서 신임을 받지 못하자 김성근에게 후임 자리를 제의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김성근은 ‘한 지붕 두 가족’의 이웃방으로 건너가 주구장창 아웅다웅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프런트 사람들과 사이가 나쁘긴 했지만 OB는 그래도 체계가 그 중 잘 갖춰진 구단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MBC는 조직이 엉성하고 프런트의 지원도 별로 기대할 바가 없다는 게 중평이었다. 전임감독들의 입을 통해서도 그런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그러나 김 감독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B라는 사람이 MBC행을 권했더라면 김성근은 두말 않고 MBC를 택했을 것이다. B가 “서쪽으로 가시오” 하는 말에 태평양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B는 김성근에게 오대산 극기훈련을 권유했다. 만약 그가 우악스런 훈련 대신 리듬체조를 권했다면 태평양 선수들은 따뜻한 실내체육관에서 겨우내 리듬체조를 했을 것이다. 만약 김성근이 MBC행을 택했더라면 오대산에서 눈밭을 뒹굴고 얼음구덩이에 풍덩 몸을 던져야 했던 선수들은 태평양이 아닌 MBC 선수들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B를 ‘변도사’ 라고 불렀다. 정식 이름은 변영호. 계룡산 입구 충남 성환에서 태어났다. 1950년생.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외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혁운스님이라는 도인을 따라 입산수도의 길에 들어섰는데 스무살이 될 때 까지 도가(道家) 선가(仙家) 수행을 했다고 한다. 무상심법(無常心法)이라는 정신수련과 금불도(金佛道)라는 체력단련술을 익혔다는 변도사. 아무리 못해도 미들급이나 라이트헤비급 이상 가는 복서처럼 당당한 체격을 갖춘 그는 상대가 누구건 한 번도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그와 가까이 지낸 윤동균 전 OB감독의 증언.)

그리고 대만에서 동양의학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한다. 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약 몇 첩으로 거뜬히 살려놨다는 얘기가 있고,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자마자 “낙태수술을 두 번 받으신 적 있으시죠?” 하며 대답하기 곤란한 것까지 척척 캐내는 신통한 솜씨가 있는가 하면, 사주팔자까지 정통으로 알아맞히는 예언가로서의 신통력까지 가졌다는 소문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의 말을 절대 신봉하는 스타일이다. 가족병력상 간장 계통이 나쁘기 때문에 평소 건강관리에 무척 신경을 쓰는 김 감독은 건강에 좋다는 것이라면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김성근에게 태평양행을 권하고 오대산 극기훈련을 권한 것은, 이제 누구나 다 눈치챘겠지만 바로 변도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왜 변도사에게 홀딱 빠지게 됐을까? 그 계기는 계형철의 발목 부상이었다. 계형철은 1988시즌 개막을 앞두고 공을 잘못 밟아 발목을 삐는 통에 김 감독에게 야단을 맞았는데 완쾌되려면 한 달은 좋이 간다는 진단과 달리 계형철은 열흘도 안돼서 멀쩡한 몸으로 나타났다.

“벌써 다 나았다구? 거짓말하지 마라.”

김 감독은 도무지 믿지 않았으나 계형철은 4월9일 삼성과의 시즌 1차전에 선발등판을 자청, 5.1이닝을 2안타 5사사구 3실점으로 막아내 윤석환이 구원승(4–3)을 따내도록 발판을 놓으면서 완쾌를 입증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변도사라는 분이 고쳐주셨습니다.

그게 누군데?

계룡산 정기를 받은 도사입니다. 못 믿겠으면 한번 직접 만나보십시오.

만났다.
어허, 감독님은 간이 안 좋으시군요.

얼마 전에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증상을 겪으셨군요.

호오~~~~~~. 호오~~~~~~.

족집게 진단이었다.

제가 약 한 제를 지어 드릴 테니 드셔 보십시오.

이런 고마울 데가.

돈 걱정은 마십시오. 감독님에게는 돈 안 받겠습니다.

약값을 안 받겠다는 의사에게 기어코 돈을 주겠다고 덤비는 것도 큰 실례다. 증세가 위중한 재벌급 환자로부터는 약값을 비싸게 받는 대신 주머니가 얇은 사람은 무료로 진료해준다는 것이었다. PJ 역시 계형철의 소개로 변도사를 만나 진맥도 받고 약도 지어받은 적이 있다. 김 감독과 마찬가지로 공짜로. 그래서 김성근 감독이 얼마나 약효를 보았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지는 PJ가 몸으로 체험한 바나 다름없다.

김 감독과 변도사가 밀착관계에 들어갔음을 알려주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OB구단에서 그동안 일해온 트레이너를 제쳐두고 변도사가 직접 그날의 선발투수의 몸을 만져주기 시작한 것이다.(축구의 트레이너는 훈련을 담당하는 코치를 가리키지만 야구의 트레이너는 마사지 등으로 몸을 관리하거나 물리치료를 맡는 직책이다.) 경기 시작 두어 시간 전에 선발투수를 매트 위에 눕혀놓거나 엎어 놓고 온 몸에 기를 불어넣으면 승리를 거두게 된다고 했다.

몇몇 타자들은 변도사로부터 기를 받은 덕에 홈런을 쳤다고도 했다. 신통방통했다.

남에게 기를 넣어주다 보면 변도사는 기진맥진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계룡산에 들어가 온몸에 산의 정기를 보충하고 돌아온다고 했다. PJ도 그런 변도사의 말을 신기해하며 믿었다. 윤동균 감독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바로는, 변도사 자신은 축지법을 연마한 적이 없지만 축지법에 도통한 도사가 얼마 전까지도 몇몇 있었는데 어느 도사는 축지법을 쓰다가 제동을 잘못 거는 바람에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추락해 죽었다는 것이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는 하지만 PJ는 그 말도 믿었다.

김성근은 변도사를 신봉했다. OB 구단과 지긋지긋한 신경전을 벌이며 가슴 폭폭한 나날을 보내던 김 감독은 변도사라는 카운슬러를 곁에 둔 것이 여간 큰 위안거리가 아니었다.

“서쪽으로 가시죠.”

김 감독이 진로문제를 놓고 고민하자 변도사는 점괘를 짚어보고는 그렇게 조언했다.
서쪽이오? 그리 가라면 가야지요.

김성근으로서는 따지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 1989년 1월10일부터 6박7일 일정으로 오대산 극기훈련이 펼쳐졌다. 1988시즌을 마치고 치른 마무리훈련도 힘겨운 강훈이었다지만 이번 극기훈련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OB 계형철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변도사를 따라 오대산을 다녀왔는데 너무너무 성과가 좋더라는 말을 전해듣고 김 감독은 ‘오냐, 그렇다면 우리 팀은 전원이 다녀온다’ 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몇몇 선수들은 엉뚱하게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된 계형철이 ‘때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을 것이다.)

‘오대산 교육대’ 라는 이름 아래 전체 선수단을 8개조로 나누어 조장을 임명한다, 조별 MT를 갖는다, 하며 준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신병훈련소에 입대하는 장정 같은 모습으로 출발한 선수들은 오대산 숙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짐을 풀고 30분 만에 연병장에 집합, 곧바로 냉탕 입수에 돌입했다.

때마침 오대산은 이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폭설을 뿌리면서 기온을 영하로 곤두박질시켜 극기훈련을 하기에 최적인 환경을 만들어냈다.

냉탕 입수? 계곡에 얼어붙은 두께 30cm의 얼음을 곡괭이로 깨부수고 그 밑으로 흐르는 물속으로 풍덩 몸을 담그는 것을 말한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주장 김일권이 시범적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1초 만에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야 이 씹 쌔 꺄!”

그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여보세요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라는 말이 너무 춥다 보면 입이 얼어서 그렇게 발음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되찾은 김일권은 사약을 받는 신하처럼 다소곳한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얼음물로 입수, 규정된 15초를 의젓하게 버티고 나왔다.

그 뒤로 임호균, 양상문을 비롯한 투수들을 앞세워 전체 선수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나왔는데, 표현이 다소 부드러운 양상문의 입수 소감을 들어보자.

“처음 물 속에 들어가 찬물이 몸에 닿는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단 들어갔다 나오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절로 생겼고 힘도 불끈 솟는 것 같았다.”

뭐든지 처음이 괴롭고 힘들지만 차차 길들여지면 재미마저 느끼는 법. 냉탕 입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까짓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급기야 얼음구덩이를 크게 파서 여럿이 한꺼번에 물에 들어가 때아닌 ‘번데기떼’ 의 노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남들은 어김없이 거시기가 번데기 처럼 오그라드는 데 반해 J만은 오히려 그것이 주먹만큼 부풀어올라 즉각 ‘ㅈ도사’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는 그들 풍토에 맞는 독특한 야구기법을 개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문화에 걸맞은 야구를 개발해야 하며 저도 거기에 일조 하고 싶습니다.”

무상심법과 금불도가 한국야구 발전과 어떤 연관을 갖고 어떻게 공헌하게 될지 아직은 그 누구도 이렇다저렇다 단언하기가 곤란한 가운데 변도사에게 일가견을 펼쳐볼 기회를 준 김성근 감독. 문제는 오직 김 감독만이 풍덩 입수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남들에겐 피가 거꾸로 솟는 짜릿한 맛을 ‘건강에 좋은 보약’ 이라고 추천하면서 그 자신만은 보약 들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숙소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감독에게 그런 것을 불공평하다고 성토하고 나설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이번 오대산 훈련을 기획한 변도사조차 “감독님이 빠지시면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는 데요” 하고 고언하지를 못했다.

그럴 때 주인욱 박사가 나섰다. 변도사가 출현하기 전,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김 감독의 건강을 챙겨오던 오리지널 주치의. 현재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설립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김 감독에게 할 말, 못할 말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감독님, 얼음물 찜질이 간에 아주 좋다는데요. 그 좋은 걸 놔두고 그냥 방구석에 누워 계시면 어떡해요?”

“으엉, 그래?”

바로 그날부터 김 감독은 얼음구덩이로 뛰어드는 단골 멤버가 됐다나.

6박7일의 일정이 물론 냉수찜질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총 5장으로 돼있는 금불도를 겨울산의 자연을 이용해서 가르쳤다. 10km 산악구보, 50km 산악행군, 극기체조, 맨발로 눈길걷기, 동물행동 흉내내기 등. 하나하나가 눈물 콧물이 쏙쏙 빠지는 것들이었다. 단전호흡법도 있다. 몸과 정신 호흡 행동을 일치시켜 근육과 내장기능을 발달시킨다고 했다. 무상심법도 그냥 놀지 않고 야간참선, 야간담력훈련 때 유용한 가르침을 주었다.

새벽 4시부터 나대기 시작, 하루종일 냉탕에다 쪼그려앉아뒤로걷고옆으로걷기, 눈밭맨발행군 등등··· 매만 맞지 않았지 삼청교육대보다 더한 닦달을 당하면서(“이게 도대체 사람이 할 짓이냐?”) 짧은 해를 서산에 넘긴 뒤 숙소로 돌아와 8개조가 제각기 요리솜씨를 발휘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면 하루 일과 끝이냐?

천만에. 오대산 계곡의 매서운 칼바람 앞에 옷깃을 꽁꽁 여미는 게 아니라 그래, 네가 매서워 봤자 얼마나 매서우냐 내 온몸으로 맞서보리라 하면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30분간 무상심법 좌선.(“이게 도대체 사람이 할 짓이냐?”)

‘금불도나 무상심법이 야구기술 증진에 미치는 영향’ 에 관한 연구논문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연구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태평양 선수단의 오대산 극기훈련은 야구계에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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