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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흙수저점갤러소설.....................3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7.30 22:11:24
조회 514 추천 19 댓글 7

그리고, 과제 시작.


표현은 거창해도 내용은 별것 없었다. 자료조사 조금 하고, PPT 파일을 만들도, 프레젠테이션을 확인하며 대본을 작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전에 학교에서 발표 주제를 미리 정해둔 덕분인지, 예상보다도 작업 속도가 확연히 빨랐다.


유일한 조원인 최호범은 의외로 진도를 착실히 따라와 주었다. 몇 분 만에 싫증을 내며 수행평가고 나발이고 죄 내던질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찾아달라는 자료는 곧잘 찾아주고, 타자는 느려도 대본도 열심히 쓰고, 중간에 딴짓도 안 하고.


많이 어설프긴 했어도.


PPT 저장을 마지막으로 피로한 눈가를 주물렀다. 한 시간 가까이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 보려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서너 시간 동안 피시방에 틀어박혀 게임에 집중하는 친구들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족속인지. 새삼 신기할 지경이었다.


피곤한 것은 최호범 또한 매한가지인 듯싶었다. 널따란 책상 옆자리에 엎어지다시피 한 호랑이 한 마리. 고통스러운 듯 찡그린 눈매, 한숨이 푹푹 새는 입가. 이따금 뒤척거리는 팔다리만 아니었어도 나는 녀석이 영락없이 잠들었으리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대본을 출력하면서 주변을 흘끔 둘러보았다. 거의 10년 만에 들르는 것이었음에도 뜻 모를 친숙함이 느껴지는 녀석의 방. 짙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벽지와 큼지막한 침대.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 책장엔 예전과 다르게 별의별 트로피가 꽂혀 있었다.


검도 상패, 태권도 메달, 축구 클럽 트로피.


스포츠 영재라도 되는 걸까. 따위의 농이나 읊조리며 시선을 떨어트렸다. 트로피 아래쪽 공간엔 이런저런 책이 쌓여 있었다. 학습만화로부터 시작해 교과서라든지, 소설책이라든지, 동화책이라든지. 펼쳐본 지 오래된 모양인지 하나같이 먼지가 수북했다.


“왜?”


멍하니 책장만 바라보던 내가 어깨를 움찔했다.


고개를 든 최호범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꼴이 덩치와 영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떼 많고 심술 많았던 어린 호랑이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냥…….”


괜스레 머쓱해진 나는 고개나 까딱했다. 녀석의 시선이 내가 턱짓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책, 한 권 없는 것 같아서.”


책장 맨 아래에 꽂힌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를 향해서.


분홍빛에 가까운 색감을 지닌 동화책 시리즈였다. 각 표지에는 해당 동화의 대표적 장면을 표현한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떤 순서로 나열했는지는 딱히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흥부와 놀부 다음이 백설 공주고, 백설 공주 다음은 또 우애 깊은 형제고.


내가 가리킨 것은 그중 7권과 9권 사이였다. 장장 40권에 달하는 세트 중 오직 8권만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어릴 땐 40권 전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녀석이 읽었을 리는 없을 테고. 친구랑 갖고 놀다가 실수로 찢어버리기라도 했나.


한편으론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책장 한구석에 처량하게 처박힌 책더미가 내 관심을 끈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까닭이다. 동화책이나 읽을 나이는 진작에 졸업했을 텐데. 화려한 부잣집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에 묘한 동질감이라도 느낀 걸까.


“너 줬잖아.”


막상 녀석에게선 다소 뜬금없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응?”

“견우와 직녀였나……? 아마, 음. 그럴걸.”


뒤통수를 긁적이며, 최호범이 말을 마쳤다.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과거를 되짚었다. 확실히 비스름한 기억이 남아 있긴 했다. 침수 피해가 복구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던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서 내 손목을 붙잡고 못 떠나게 막던 최호범. 끝끝내 동화책 한 권과 함께 웅얼웅얼 건네던 한 마디.


‘안 오면 죽을 줄 알아.’


그게 저거였나.


“……그랬었지, 참.”


어설픈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득한 기억을 들춰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더랬지. 어림해도 10년은 지난 일인데 그걸 용케 기억하고 있네. 그걸로 모자라 무슨 책이었는지까지 생생하게 알려주다니. 나한테 주기는 좀 아까웠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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