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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다 지나서 올리는 산중호걸 추석외전앱에서 작성

미몰렛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9.18 13: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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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오르는 산길.
신령이 된 이후로는 수도없이 많이 오르던 길이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두 손 가득 든 짐. 그리고 그 만큼이나 가득찬 나의 설렘.

오늘은 추석이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마 일주일전.
내가 저번 주말에 아직 설화각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굳이 본가에 내려갈 일은 없는것 같아요.”



“그래…? 아무리 그래도 추석인데, 간만에 가족들 얼굴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어…”




이번 추석에는 본가에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나.
내 말을 들은 태백 아저씨는 나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혹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날 보며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번 추석은 굳이 내려가고 싶지 않다. 
매일 주말에만 설화각에 머물던 나에겐 간만에 대학교 수업도 없는 쉬는 날이기도 하고,  5일동안이나 여유롭게 쉬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그렇게까지 마음 둘 곳은 없기도 하고.


차라리 태백 아저씨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게 나을 성 싶었다.




“아니에요. 작년에도 안내려갔지만 별 일 없었는걸요. 부모님이랑은 연락 꼬박꼬박 하고 있기도 하고, 어차피 바쁠테니 굳이 오라고는 하지 않더라고요.”



“...”



“그래서, 설화각에 이번 추석 내내 있을까 하는데… 아저씨는 어때요?”



“뭐, 좋을대로.. 하거라.”



어쩐지, 태백 아저씨는 그저 그런 반응만을 내 보였다.
분명 내가 오랫동안 머물면 좋아할거라고 생각한 나와 달리, 무언가 걸리는게 있는걸까.



“아저씨, 태백 아저씨.”



“응…?”



“무슨 일, 있으세요?”



“갑자기 왜 그러느냐.”



“아니, 제가 여기 있는다고 하니까 그닥 즐거워 보이지 않아서요.”



“무슨..! 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그게 말이다…그…



“...?”



마치 무언가 잘못한 어린아이 같은 반응.
나는 그 반응이 재밌어, 약간은 짓궂게 굴어 보기로 했다.



“그래요 뭐… 아저씨가 저랑 있는게 내키지 않는다면, 자리 비켜드릴게요.”



“뭐라??”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한숨을 쉬고 나서, 태백 아저씨가 들으라는 듯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내 말을 들은 아저씨는 이내 화들짝 놀란듯 보였다.

솥뚜껑만한 손을 갈 곳을 잃은듯 허공에 나부끼고, 차분하던 금안이 놀라 떨리며, 은은한 선홍빛이 도는 코와 귀가 이따금씩 떨리는 모습까지.
내가 일방적으로 골리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처량해보이기 까지 했다.

물론 그만큼 귀여웠지만.

500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에겐 한없이 휘둘리는 모습. 
정말이지 한때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산신이였다고는 믿지기 않는 모습이였다.



“... 정말, 내려갈 게냐?”



아, 못참겠네.

처진 귀와 함께 누가 들어도 실망한 듯한 목소리. 애써 들키지 않으려 애쓰지만 다 드러난 실망감. 
어린아이라도 알아챌 듯한 아저씨의 마음에, 나는 결국 두손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농담이에요. 어디 안 간다니까요.”



나는 태백 아저씨를 안심시키려 발을 옮겨 큰 품에 안겼다.



“아저씨 색시 어디 안 간다니까요. 말했잖아요, 그 오래전 천신궁에서.”



“....”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제가 추석에 여기 있는게 싫은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태백 아저씨는 무언가 조금 부끄러운듯 시선을 피하며 말을 얼버무리는 듯 했으나, 내가 계속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려 하자 아저씨는 옅게 한숨을 쉬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그냥, 실감이 안 나서 말이다.”



“뭐가요…?”



“... 나이가 많은 신령들에게 있어, 명절은 그닥 의미가 없는 느낌이지. 몇백번이고 되풀이 되는, 그냥 흔한 날 중 하나인지라….”



아저씨는 천천히 말을 이어가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내겐 더없이 특별한 이가, 나를 위해 남아준다는것은 처음이라서 말이다.”



“....”



“그것도 가족도 마다하고 말이지. 나로 인해 네가 가족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서 네게 폐를 끼치는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네가 날 위해 남겠다는 말을 그저 행복하게만 받아들여도 되는가 해서 그랬던 것이지, 별 다른 뜻은 없다.”


참, 볼수록 순수한 아저씨다.
그냥 내가 좋아서 여기 있겠다는데, 뭐 그리 걱정할 게 많은지…

그래서 좋아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 위로 손을 한참 들어 아저씨의 목 부분, 갈기털을 잡고 끌어내렸다.
내 악력이 강하지 않음에도, 아저씨의 고개는 힘없이 내려갔다. 나를 생각해서 일부러 져 준 탓이겠지.

그렇게 억지로 아저씨의 고개를 내려 나와 눈 높이를 맞춘 나는, 영롱히 빛나는 금안을 보며 말했다.



“뭐 그런걸 고민하고 그러세요 태백 아저씨.”



“...”



“제가 그냥 좋아서 있겠다는데, 다른곳에 마음 쓸 일이 있어요? “



“그건…그렇지…”



“그리고, 이제 산신도 아니신데 사리사욕좀 챙기시면 어때요? 500년간 참으셨으면 그만이지!”



“...그것도 그렇구나.”



“일요일마다 집 가려고 하면 항상 안보내주려고 안달이면서, 이번엔 새삼스레 왜 그런대요?”



“그건… 나는 오랜 세월동안 살아왔던지라 추석에 그닥 감흥이야 없다만, 너는 아니지 않느냐.”



“이번 추석만큼은 가족들도 만나고, 고향 집에 내려가서 쉬고 해야 너도…”



애써 본심을 숨기며 나를 위해주는 말.
오래전 신해 지대에서 봤던, 그 눈빛과도 동일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점은, 더이상 나와 산신님 둘 다 서로를 잴 필요가 없다는 점.  

나는 그 즉시 태백 아저씨의 얼굴을 당겨, 입맞춤을 했다.
입술과 입술이 살짝 맞닿은, 가벼운 버드 키스.
그러나 내 생각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어차피 저희 집 안모인지 꽤 됐어요. 만나면 매일 싸우기만 하는걸요.”



“그리고 평소에는 막무가내로 나오다가 항상 이런 가족 부분에서만 약해지신다니까요? 전 진짜 괜찮아요.”



“... 그러느냐.”



“네. 그러니까, 전 여기 있을거에요. 아까 전에 그러셨잖아요. 명절은 그닥 의미가 없는, 몇백번이고 되풀이 되는 흔한 날 이라고요.”



“그러니까, 이제부턴 제가 아니게 만들어드릴게요. 항상 아저씨 곁에 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평범한 날을 특별하게요.”



그 말을 들을수록, 아저씨의 눈에는 점점 기존에 있던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이 채워지는걸 볼 수 있었다.

죄책감이 아닌, 애정.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말했잖아요.”



나는 아저씨의 볼을 계속 잡고있던 손을, 자연스레 목 갈기로 옮겨 태백 아저씨를 끌어안았다.



“저는 아저씨 사랑한다니까요.”



“...그래, 고맙다 목영아.”



내 시선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있던 아저씨는, 내 등을 한손으로도 다 덮을수 있을법한 손으로 나를 안았다.



“.... 어르신, 사랑 싸움은 다 끝나셨어요?”



“!!!”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하고 심술이 난 듯한 목소리와 함께, 나와 아저씨는 무언가 나쁜 일을 꾸미던 아이들 같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 하랑아.”



“하랑이 형….”



우리 뒤에 있던 이는, 방금 막 퇴근했는지 흐트러진 셔츠와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하랑이였다.



“아니… 오늘 늦게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냥, 여기서 하려고 일거리 들고 왔어요. 저도 연휴엔 좀 쉬고 싶은걸요…”



한눈에 봐도 지쳐 보이는 듯 한 하랑은 방금 한 말을 뒷받침하듯 서류가 가득찬 가방을 들고있었다.

하랑은 이내 나를 발견하고선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띄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목영이 오랜만이네. 어서와.”



“형… 오랜만이에요. 최근에 보질 못했네요.”



“그냥, 일이 너무 많아서…”



“아…”



“이번 추석에 있을거지?”



“네. 할 일도 없고 여기서 있으려는데… 괜찮죠?”



“나야 항상 환영인데… 올해 추석은 괜찮으려는지 모르겠네.”



“네…? 왜요?”



“이번 추석에는, 손님이 올 것 같아서.”


 
“누가요?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인가요…?”



“그런 이도 있고, 아닌이도 있고…”



하랑은 마치 자기도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어르신이 산신에서 물러나고, 내가 산신이 되었다면서 축하한다고 이곳저곳에서 온다고 해. 주호네 아버님, 경호랑 세원이네, 내 동생 한명이랑 용왕님 천룡님 견룡님…”



나는 하랑의 말을 들으며 한가지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다.
솔직히, 이번 추석은 집안 잔소리 듣기 싫어서 가기 싫었는데….

여기선 그보다 몇배는 더 한 잔소리를, 참견을 들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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