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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4

Jube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1.03 18: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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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그거
· 그거 3





 뚜르르르ㅡ



“...아.”



 먹다남은 맥주캔을 손에 쥔 채로 퍼뜩 잠에서 깬 A가 앓는 소리를 냈다. 숙취는 아니었지만 왠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A는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심호흡을 고르고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6시. 약속 시간이었던 7시까지는 그럭저럭 여유가 있었다. 



“어후, 맥주 냄새… 이는 닦고 가야겠네.”



 푹 내쉰 숨결에서 역한 알코올 내음이 진득히 배어나왔다. 원래라면 아랑곳도 않을 문제였지만 지금은 만날 사람이 있지 않은가.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도 적잖이 있었지만, 낮술이나 즐기는 나태함 역시 들키고 싶지 않았다.


 A는 혹여 늦을 새라 바삐 몸을 움직였다. 치약을 두어번 짜올려 송곳니를 번질나게 닦고, 그마저도 역력찮을까봐 서랍을 뒤져 싸구려 향수를 분무기처럼 뿌려댔다. 입고 나갈 옷이야 변변찮은 것 밖에 없었지만, 형편없어보일지언정 추위에 떨 일은 없을 듯 했다.



“7시가 딱 퇴근시간이라고 했으니까, 도착해서 전화하면 되겠지?”



 부모님과의 연락밖에 없는 기록부를 보던 중, A가 이름 없이 저장되어있는 한 전화번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B가 몸 담고 있는 헬스장의 전화번호였다.  


 …그런데, 번거롭게 왜 굳이 헬스장 전화번호를 준 걸까? 요즘 시대에 휴대폰이 없는 것도 아닐테고. 어차피 PT하면서 이래저래 연락할 일도 많을텐데, 이거 여러모로 심란하네…


 A가 석연찮은 눈치로 입맛을 다셨다. 저야 이래저래 B와 엮이는 일이 있어도 크게 상관 없었지만, 어째선지 벌써부터 무언의 벽이 세워진 것 같아 영 께름칙했다.



“...뭐,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알겠지.”



 덜커덕, 녹슨 현관문을 열어젖힌 A가 적막한 밤의 길거리로 나섰다. 여전히 쓸쓸하고 무언의 불안이 서려있는 길목이었다. 이를 증빙하듯 도로는 재떨이 마냥 꽁초로 허옇게 얼룩져있었고, 이따금씩 크게 점멸하며 행인을 놀래키는 고물 가로등은 제 역할은 커녕 없느니만 못한 수준이었다.


 …부모님께 빌어먹고 사는 놈팽이에게는 썩 걸맞은 곳이라 할 수 있겠지. 


 한참을 그리 상념하며 걸음하던 A의 앞에 익숙한 건물이 나왔다. 아침에 전단지 호갱을 잡힌 그곳. 바로 B와 처음 마주했던 그 건물 앞이었다. 어쩌다보니 덜컥 약속을 잡게 되었다지만, 막상 아침의 그 활기찬 늑대를 다시 마주하자니 왠지 모르게 망설임이 일었다.


 

지금 부를까.



 시간은 6시 50분. 약속보다 10분 이른 시간 탓에 불러내기가 썩 껄끄러운 구석이 있었다.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선 A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기대되면서도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밥은 뭘 먹자고 할까. 술은 한다는데, 얼마나 마시려나. 같은 생각 따위가 마구 맴돌았다.


 A는 시시각각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에 귀를 바짝 세웠다. 그러면서도 타이머라도 맞춰놓은 듯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7시라는 종이 땡 치면 당장에라도 저 계단 위에서 B가 뛰쳐나올 것만 같아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던 탓이었다.


 1분 가량이 남았을 때는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고. 7시가 지나고 3분 가량이 흘렀을 때에는 조급함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시간은 흘러만 갔고, B는 도통 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꺼내들었는지, 휴대폰의 전화버튼 위를 맴도는 손가락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떨리고 있었다.


 

“뭐하고 있는데 안 오는 거야… 벌써 20분이나 지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자세히 보니 저장하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그만큼 반겨운 번호도 없었다. 걸려온 전화는 다름 아닌 헬스장의 번호였으니까. 아마도 등록할 때 기입했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 듯 했다. A는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꼴깍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그러니까 그… A회원님 맞으시죠?”


“네, 네! 맞는데요…”


“죄송합니다. 오늘 사정이 있어서 B녀석이 조금 늦을 것 같은데, 혹시 지금 어디시죠?”


“헬스장 건물 바로 앞인데요.”



 그 답에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두려웠다. 설마 이대로 20분을 더 내리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 경우의 수를 생각하니 온 몸의 털이 찌르르 곤두섰다. 원래 자신이 이렇게 약속 시간에 박했던가, 싶기까지 할 정도로.

 


“아, 그럼 올라와서 기다리시는 게 어떠세요? B가 지금 막 씻고 있어서,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씻고있다고요?”



 시간이 지체된 것에 불만이 섞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과장 좀 보태어 2M는 되어보이던 늑대가 지금 헐벗은 채 몸을 축이고 있다는 것에 문득 침이 고인 까닭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화 너머의 상대는 A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으로 답해왔다.



“죄송합니다. 7시에 약속이 있다는 걸 듣기는 했는데… 일이라는 게 같이 하다보니까 알게 모르게 늦어지더라고요.”



 그걸 지금 핑계라고.



 짐작컨데 단번에 몰린 일을 저 혼자 처리하긴 귀찮아서 B의 손을 빌린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따따부따 따질 수야 있나. 20분. 되돌아보면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말이다. 



“네, B녀석 씻기는 금방 씻으니까 얼마 안 걸릴 겁니다.”



 믿을만한 구석이 있을 만큼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아, 네… 그럼 지금 올라갈게요.”



 건물은 상가가 가득 들어차 있어 퍽 빛나고 있었다. A는 속으로 건물의 값어치를 매기며 계단을 올라갔다. 헬스장은 문 너머로도 퇴근길에 들린 손님들로 북적이는 것 같아 괜스레 부담이 들었다. 철기구들이 동작하는 소리와 수컷들의 거친 숨소리가 그 메인이었다.



“저, 아까 통화한 A인데요.”



 카운터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소 수인이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선 늑대와 다를 것 없는 쾌활함으로 A를 맞이했다. 오늘 오픈부터 회원들이 꽤 몰렸다니, 갑자기 저녁 때에 사람들이 붐벼서 손이 열개였어도 모자랐다느니. 그런 시시껄렁한 말을 뱉으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그나저나, B씨는 어디계세요? 혹시 벌써 다 씻었나?”



 은근한 기대가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기껏 걸음해서 20분이나 마음을 졸였으니 하다못해 B의 속옷차림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음흉하기 그지없는 그런 기대가.



“아뇨, 이제 막 들어갔습니다. 직원 샤워실은 카운터 안쪽에 있어서, 저기서 조금만 기다리심 금방 나올겁니다.”



 암막커튼 같은 가림막을 걷은 소 수인이 한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안에서는 물줄기가 튀기는 소리가 나즈막히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 B가 이제 막 몸을 축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소 수인이 다시 가림막을 치자, A는 B와 직원실에 단 둘이 남았다는 것에 괜히 가슴이 뛰었다.


 용기내어 들여다 본 샤워실은 칸칸이 나뉘어져있는 개개인의 형태였다. 그 중, 딱 한 곳에서만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희뿌연 수증기에 가려져 구름처럼 희미했지만, 샤워실 칸을 가득 채우는 덩치를 보아하니 B가 한창 몸을 씻어내리는 중인 듯 했다.



 똑, 똑.



“저기… 저 왔어요. B씨.”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옹송그린 A가 수줍게 B를 불렀다. 그 부름에 음색이 들음직했던 늑대의 콧노래가 멈췄다. 일순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내 거품을 씻어내려는 듯 샤워기가 물을 뱉는 소리가 몇번 더 들렸다. 그리고는.



“선배! 오셨습니까!”



 순간, B가 알몸의 차림으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



 알몸의 B를 맞닥뜨린 A가 말문을 굳혔다. 아니, 굳히기 보다는 막힌 것에 가까웠다.



“응? 왜 그러세요, 선배?”



  그 쪽 자지가 훤히 드러나 있어서요.



 A는 그런 노골적인 시선을 들키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아무리 같은 수컷이라지만 너무 무신경한 거 아닌가 싶었다. 안면 튼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알몸까지 깐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나 반가웠던 걸까.



“아, 아니에요. 그냥 기다려도 안 오시길래…”


“관장님께 늦을 거 같다고 선배한테 전화 좀 부탁드렸는데, 그새 까먹으셨던 모양입니다. 하하…”



 B의 몸에서는 못 다 털어낸 물방울들을 후두둑 쏟아지고 있었다. 조각진 몸을 따라 흐르는 물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또 뭐가 그렇게 좋은지, 털이 아래로 가라앉은 꼬리는 A에게까지 물기를 튀길 정도로 연신 호를 그리며 퍼덕이고 있었다.



“아직 덜 씻으신…거죠? 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에이, 거의 다 씻었습니다. 아마…도”


“아마도요?”



  B가 멋쩍게 뒷통수를 긁적였다. 무언가 말하려는 셈이 있다가도, 도로 거두어 들이려는 모양새였다. 마치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물건을 대신 집어달라는 듯한 기색이었다. 뭐, A가 손을 번쩍 들어야 겨우 머리에 닿는 거구가 그런 부탁을 할 리는 만무했지만.



“아닙니다. 그냥, 등을 씻은 지가 꽤 오래 되어서… 좀 찝찝하달까요.”


“등? 등이 왜요?”



 A에겐 마냥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등을 씻지 못한다니, 무슨 연유가 있어야 그런 괴짜같은 문제를 앓고 있다는 말인가. 겉으로 보기에 B는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한 수컷일 뿐이네.



“그게… 저희처럼 운동하는 사람들은 근육 때문에 등까지 손이 안 닿습니다. 누가 대신 닦아주지 않는 이상은 꼼꼼하게 씻을 수가 없는 지라…”



 대신?



“그러면 그냥 제가 해드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A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답했다. 문제가 뭔가 했더니, 고작 근육 때문에 등에 손이 안 닿을 뿐이었다니. 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몸이었다.



“그렇긴 한데… 으음…”



“...또 왜요?”



 이번엔 정 반대로 B가 A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대놓고 자지를 흘끔거려도 모를 만큼 눈동자가 바닥을 기고 있던 것이다. 대체 뭐길래 저렇게나 망설이고 있는 건지, 그냥 처음부터 자신한테 부탁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부끄럽잖습니까. 그런 거.”



 풋.



 A가 저도 모르게 물 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덩치에 맞지 않아서 귀엽다고나 할까. 동시에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저 혼자 씨름하던 게 퍽 우스운 면이 있었다.



“고작 그거 부끄러워 하면서, 낮에 제 몸은 어떻게 벗기신 건데요?”


“그거랑 이건 다른 문제란 말입니다…”



 약점을 잡힌 B가 끙 앓는 소리로 불평했다. 그런 B를 달래고 어루어 다시 샤워실에 밀어넣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좁은데 늑대와 함께 들어와 있으니 아주 갑갑할 따름이었다. 


 샤워실은 아직까지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몸에 치덕였던 것인지, 달큰한 샴푸향이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곧 샤워기를 집어든 A가 늑대의 등에 물을 축였다. 털 구석구석을 훑으며 물을 적시고 있자니 B의 탄탄히 짜인 근육이 자연스레 살갗에 닿았다. 말랑말랑한 제 몸과는 다르게 콘크리트 위에 털이 자라난 것만 같이 딱딱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직이 들려오는 한 마디.



“뭘 이런 걸로요. 별 대단한 것도 아니구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겁니다.”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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