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이젠 숨까지 헐떡대던 동욱이 별안간 앞으로 고꾸라졌다. 품에 안겨 있던 서하는 자연스레 소파에 등을 붙이고 드러누운 자세가 되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닿는 가죽 소파. 어찌나 거칠게 자빠뜨렸는지 뒤통수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동욱은 서하의 눈앞에 자리했다. 서하가 누운 자리 바로 위에 무릎을 대고 엎드린 자세이다. 우는 듯 화난 듯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는 양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힘을 줘 살짝 밀자 호리호리한 몸뚱이가 푹신한 소파 아래로 침잠했다.

“너.”

한참이나 주저하던 동욱이, 끝끝내 목소리를 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나 같은 놈이랑……. 그런 거. 하고 그러면.”

“그런 게 뭔데요?”

“……그걸 꼭 설명해야 하냐.”

물론,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서로 만나고……. 사귀고. 그러는 거.”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기나 할 뿐.

길게 한숨을 내쉰 동욱이 다시 물었다.

“후회 안 할 거야?”

음울하리만치 조용한 목소리로.

이번에도 서하는 답이 없었다. 이제껏 그러했듯 늑대를 가만히 마주 보기나 할 따름이었다. 시야 한가득 들어온 동욱은 저와 마찬가지로 다소 가라앉은 낯빛이었다. 검붉은 눈동자는 어딘가 진중했고, 어딘가 기대하면서도, 또 어딘가 체념하고 있었다.

항상 그랬다. 그는 꼭 상처받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굴었다.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건넨 친절과 호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한 것이다. 마치 자신에겐 그런 애정 따위 받을 자격이 없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것이 그 나름의 속죄인지, 조각난 자존감의 말로인지는 서하로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약간의 측은함, 그리고 답답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후회한다고 말하면 그는 그대로 수긍하겠지. 내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럼 권동욱 씨는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참 바보 같은 물음이었다. 싱긋 웃은 서하가 되물었다.

“저 놓치면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동욱은 눈을 껌뻑였다.

당돌한 이야기에 심각하게 굳었던 표정이 별안간 풀렸다. 조개처럼 다물린 주둥이가 슬쩍 벌어지곤, 진중했던 눈빛은 잠시 초점이 흐트러졌다. 아래로 접힌 세모꼴 귀는 다소 놀랐다는 듯 쫑긋 솟아오르기까지 했다. 허를 완전히 찔렸다는 반응이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보았다. 여태껏 항상 서로를 보긴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내숭과 민망함을 비롯한 이런저런 감정을 내려놓고 시선을 온전히 맞부딪힌 것이다. 소탈해도 진중한 마음가짐으로 서로의 내면에 자리한 감정을 엿본 것이다.

시선은 차츰 진득이 얽혀들었다. 뿌리 내린 나무와 같았고, 또한 깍지 낀 손과 같았다. 서하는 흔들림 없는 야수의 눈에서 수많은 것들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방금 건넨 물음에 대한 대답 또한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아니.”

그것은 눈앞의 늑대 또한 마찬가지일 터였다.

“평생 후회하겠지.”

대답을 찾은 동욱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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